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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중증 정신질환 치료 중요성 몰랐던 가족… 약 끊는 순간 참극 시작 [심층기획-망상, 가족을 삼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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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4-10-28 06:00:00 수정 : 2024-11-03 15:3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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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10년 존속살해·미수 판결 분석

당사자·가족·전문가 등 84명 밀착 취재
환자들 병식 없어 약물 복용 거부 많아
약 복용 중 발생한 사건은 6%에 불과

“가짜 아빠” “날 죽이려 해” 망상·폭력
절반이 범행 이전 전조 증상 보였지만
가족들 정신병원 꺼림칙해 ‘반항’ 치부
10명 중 1명 진단조차 받아본 적 없어

동거하던 늙은 부모 상대 범행 대부분
정신질환자 돌봄부담 떠안는 현실 반영

부모를 죽이려 한 이들은 누구인가.

 

세계일보는 27일 최근 10년(2014~2023년)간 존속살해와 존속살해미수 혐의로 진행된 판결 823건(열람제한 제외 전수)을 분석했다. 그 결과 10년간 벌어진 존속살해·존속살해미수 사건 386건(1심 기준) 중 54.7%(211건)는 정신질환과 연관돼 있었다. 재판부가 정신질환으로 인한 심신미약을 인정하거나, 질환과 범행의 관련성을 분명히 언급한 경우다. 망상에 의해 엄마를 죽이려 한 이현우(가명·27)씨와 같은 사건이 해마다 최소 20여건씩 발생한 셈이다. 국내 언론에서 10년치 존속살해·존속살해미수 사건을 전수 분석해 정신질환과 관계를 확인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비극의 원인은 무엇일까. 중증 정신질환 당사자와 가족, 의료진과 전문가 84명의 이야기를 들었다. 최근 존속살해·존속살해미수 혐의로 진행된 5개 사건 가해자 5명과 피해자 3명, 사건 주변인 5명을 직접 만났다. 사건을 수사해 재판에 넘긴 경찰과 검찰 7명, 피고인의 변호사 16명과 재판을 맡았던 판사도 취재했다.

 

사건의 공통점은 크게 3가지였다. 이 고리를 끊어내면 비슷한 비극을 막을 수 있다는 얘기다. 또 다른 가해자와 피해자가 나타나는 일을 막기 위해, 이들의 사연을 전한다.

◆“치료거부는 위험 신호인데”

 

첫 번째 공통점은 피고인의 정신질환 치료가 중단됐다는 점이다. 정신질환자는 다른 환자와 다르게 ‘병식(현재 자신이 병에 걸려 있다는 자각)’이 없어 약물 복용 등 치료에 반감을 갖는 경우가 많다.

 

10일 오전 11시15분 울산지법 301호 대법정에서 부친을 존속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는 김윤희(가명·27)씨에 대한 재판이 열렸다. 올 1월12일 울산에서 조현병을 앓던 김씨는 도청기가 설치돼 있다며 집 안 거실에 있던 의자를 부쉈다. 이를 본 김씨 부친이 ‘이런 식으로 하면 병원에 입원해야 한다. 마음을 고쳐먹고 정신을 차리라’는 취지로 나무랐다. 아빠가 가짜라고 생각해 온 김씨는 이젠 자신을 병원에 가두려 한다고 생각하곤 부친을 흉기로 찔렀다.

 

김씨의 국선 변호사는 “피고인이 상당 기간 조현병을 앓고 있었으나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치료를 제대로 받지 못했고 내면에서 정말 ‘가짜 아빠’에게 괴롭힘당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최근 10년 존속살해·존속살해미수 1심 사건 211건 가운데 35.6%(75건)에서 피고인은 ‘단약(약물복용 중단)’ 중 범행을 저질렀다. 약을 복용하던 중 벌어진 사건은 12건(5.7%)에 불과했다. 약 복용 여부를 확인할 수 없는 123건을 제외하면, 단약 중 발생한 사건의 비율은 84.3%로 훨씬 커진다.

 

대부분의 중증 정신질환자는 약을 먹으면 망상 증상이 완화된다. 환청이나 환시는 남아 있을 수 있지만, 적어도 자신의 병 때문에 벌어지는 일이라는 인식이 생긴다.

백종우 경희대학교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2014년 영국에서 진행된 연구 결과를 보면 조현병이 폭력성과 연관될 때는 오직 치료가 결여되는 상황이었다”고 설명했다. 반대로 약을 먹지 않으면 망상은 순식간에 커졌다. 김씨와 같이 가까운 가족이나 지인을 가짜라고 여기는 증상을 ‘카그라스 증후군(Capgras syndrome)’이라고 한다. 이 증후군이 있는 사람은 가까운 사람이 완전히 똑같은 모습으로 분장한 전혀 다른 사람으로 바꿔치기됐다고 믿는다.

 

1심 판결문 211건을 보면 80.1%(169건)의 사건에서 재판부는 정신질환에 의한 피고인의 심신미약을 인정했다. 이들은 자신의 부모가 부모의 모습을 한 식인종이나 외계인, 악마로 보이거나, 부모가 자신을 해치려 한다는 망상에 빠져 있었다.

 

김씨 변호사는 재판부에 ‘법리오해’를 주장했다. 그는 “피고인은 2022년부터 아빠가 가짜라고 일관되게 말해왔다”며 “범행 당시 피해자를 자신의 법률상 존속(혈족)으로 인식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피해자가 아빠라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했기 때문에 존속살해가 아닌 살인죄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피해자가 존속인 점은 양형에서 가중요소로 간주한다.

 

변호인의 변론이 진행되는 동안 김씨는 피고인석에 무표정한 얼굴로 앉아 있었다. 이따금 교도소에서 써 온 것으로 보이는 메모를 들춰 봤다. 김씨는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을 묻자 입을 열었다.

 

“저희 부모님은 저를 사회적으로 격리하길 원한다고 했어요. 인정 못 하겠어요.” 김씨는 ‘부모님’을 언급했다. 여전히 아빠가 아닌 가짜를 죽였다고 믿는 듯 보였다. 

◆“투정으로 무시한 게 돌이킬 수 없는 실수였다”

 

두 번째 공통점은 정신질환에 대한 이해 부족이다. 환자 본인은 물론 가족조차 치료로 병을 관리해야 한다는 점을 잘 알지 못한다. 이 탓에 방치하다 증상이 악화하고 있는데도 입원 등 적극적인 조처를 하지 못한 것이다.

 

지난 7월 강원도 강릉 한 다세대주택에서 함께 살던 친할머니를 흉기로 찔러 살해한 정병태(가명·26)씨는 ‘파괴적기분조절장애’, ‘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 ‘경계선 지능’ 등으로 병원에서 입원 및 외래 진료를 받았지만 사건 발생 약 1년 전부터 약을 끊었다.

 

같은 건물에 정씨 부모가 살고 있었지만 이웃들은 정씨가 부모로부터 제대로 된 보살핌을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사건이 벌어진 마을 이장으로 동네 사정에 밝은 한 60대 남성은 “(정씨 부친이) 내 고등학교 후배인데, (정씨를) 거의 포기하면서 내놓다시피 했다”며 “병원에 입원시키려고 했지만 돈이 부족했다고 (정씨 부친으로부터) 들었다”고 고개를 저었다.

 

‘국민학교’ 다닐 때부터 피해자와 친구로 지내왔다는 앞집 이웃 김유동(76)씨도 안타까워하며 말했다. “평소에 손자가 할머니를 때리고 난동을 피워도 이웃에게 알려질까 걱정만 하더니 이 사달이 났네. 할머니가 바보같이 애만 너무 좋아했어.”

 

이씨와 같이 범행 이전 자살시도나 난폭한 행동 등의 ‘전조증상’을 보인 경우는 211건의 판결문 중 절반(46.9%·99건)이나 됐다. 자신 혹은 타인을 해칠 우려가 있는 경우 정신병원 입원이 필요하지만, 전조증상을 보인 이들 중 64.6%(64건)만 입원 경험이 있었다.

 

심지어 병원에서 진단 한 번 받아본 적 없는 경우도 10건 중 1건꼴(10.4%·22건)로 나타났다. 증상이 최악의 상황에 이르도록 적절한 치료가 이뤄지지 않은 경우다.

 

2019년 6월 울산에서 엄마를 살해한 박정빈(가명·27)씨 사건이 대표적이다. 박씨는 범행 이후 112에 신고해 자수했다. 당시 경찰에 “엄마를 찔러 피가 나니 구급차를 불러달라”며 “엄마가 저를 죽이려고 약을 먹이고 이상한 짓을 한다. 못 견디겠다”고 말했다. 그는 “(두려움에) 죽고 싶어서 (자신의) 목을 찔렀다”고도 했다. 피 묻은 흉기를 든 채 경찰에게 문을 열어준 그의 목에는 자해로 추정되는 베인 상처가 있었다.

 

박씨는 사건 이후에야 국립법무병원 정신감정을 통해 조현병을 진단받았다. 앞서 박씨는 2017년 입대를 위한 신체검사에서 4급 사회복무요원 소집대상으로 분류되면서 병무청으로부터 정신과적 정밀진단이 필요하다는 말을 들었지만, 가족은 이를 간과했다. 진단을 받으려면 한 달간 정신병동에 입원해야 했는데, 왠지 께름칙했다.

 

박씨 부친은 재판부에 “그것이 돌이킬 수 없는 큰 실수였다”고 했다. 그는 “아들은 어릴 때 항상 밝고 부모님 말 잘 듣는 천사 같은 존재였다”며 “중학교 2학년이 되면서 말도 잘 하지 않고 다른 학교로 전학 보내달라고 계속 요구했다. 당시는 단지 공부하기 싫어 투정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무시했다”고 말했다.

◆피해자는 ‘같이 살던’ ‘60대 이상’ ‘엄마’

 

세 번째 공통점은 정신질환 자녀를 나이 든 부모가 수십 년간 돌보다 사건이 벌어졌다는 것이다. 211건의 존속살해·존속살해미수 사건의 피해자는 모두 230명이다. 이들 대다수는 피고인과 ‘동거’(84.4%·194명)하던 ‘60대’(32.6%·75명) ‘엄마’(53%·122명)였고, ‘집(집앞·87%·200명)’에서 변을 당했다.

 

이는 해외에서 발생하는 존속살해 범죄 경향성과도 일치한다. 김성희 경찰대 치안정책연구소 연구관은 “해외 연구를 보면, 존속살해 살인범의 60~90%가 정신질환이 있으며 이들은 어머니를 주로 살해하고, 가족과 동거하는 비율이 높은 것으로 나타난다”며 “일부 연구에서는 이들 중 62.5%는 범행 전 단약을 한 상태에서 약복용과 관련된 사소한 다툼에서 시작해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나타난다”고 분석했다.

 

70대 이상 고령의 피해자도 36.1%(83명)에 달했다. 조현병을 비롯한 중증 정신질환이 주로 20대 전후를 기점으로 발현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돌봄 기간은 상당히 길었을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1월 전북 전주에선 24년 전 조현병 진단을 받은 아들이 81세 어머니를 살해했다. 그는 약 부작용으로 목이 돌아가는 ‘사경’ 증세가 발생하자 약 복용을 권하는 어머니를 원망해 왔다. 어머니는 아들의 망상 증세가 심해지는 것을 한집에서 지켜보며 치료를 권할 수밖에 없었다. 아들이 계속 약을 먹지 않자 어머니는 “왜 약을 먹지 않고 모아 뒀냐”고 잔소리를 했고, 이에 반감을 가진 아들이 어머니를 살해하기에 이르렀다.

 

백종우 교수는 “사회적으로 고립된 중증정신질환의 부담을 고령의 부모가 모두 떠받치고 있는 현실을 가장 잘 보여주는 대목”이라고 설명했다.

 

근본적으로 발병에서 치료까지 기간을 단축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당부가 나온다. 김성수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는 “이런 불행한 사고들은 피고인이 치료받지 못한 상태에서 벌어진 것으로 보인다”며 “최근의 정신건강 정책은 자타해 위험 발생 이후의 응급입원 강화에 비중을 둬 왔는데, 앞으로는 더 이른 시기에 당사자와 가족을 부드럽고 정중하게 조력하는 방식의 조기 개입으로 확장돼야 한다”고 말했다.

 

“아이 손에 죽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해요. 그치만 어쩌겠어요.”

 

중증 정신질환을 가진 부모들이 한 번쯤 가져본 마음이다. 실제로 부모가 정신질환 자녀의 손에 죽거나 죽을 뻔한 참극이 전국에서 매년 20건 이상 발생한다. 존속살해범이 된 정신질환자 한 명에게 엄한 죗값을 물어도, 바뀌는 건 없었다.

 

세계일보는 8개월간 무엇이 그를 부모를 죽인 범죄자로 만들었는지 추적했다. 최근 10년 치 존속살해·존속살해미수 판결문 823건을 살피고, 정신질환과 관련된 사건의 규모와 특성, 원인을 분석했다. 정신질환이 있는 당사자와 가족, 의료계와 법조계 전문가 등 84명의 목소리를 들었다. 이들의 이야기를 5회에 걸쳐 전한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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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준호·김나현·조희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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