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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나는 오래된 거리처럼...』 진은영 “슬픔이야말로 연대를 가장 필요로 하는 순간” [김용출의 문학삼매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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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22-09-28 07:30:00 수정 : 2022-09-27 16:0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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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고 청탁을 주고받는 과정에서 출판사의 편집자들과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 메시지를 자주 주고받았다. 주로 젊은 편집자들이었는데, 그들의 SNS 프로필에는 대체로 사랑하는 사람이나 배우자가 될 이와 함께 찍은 사진이 내걸려 있었다.

 

이미 경험했을 수도 있겠지만, 이들의 빛나는 사랑이 완성되기 위해선 상당한 고통이 뒤따를 텐데. 살고 사랑하는 일은 자칫 지리멸렬해질 수도 있는데. 그럼에도 이들의 사랑이 내내 빛난다면 얼마나 좋을까.

 

시인 진은영 역시,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사랑에 서툰 편이었다. 한 사람을 자주 외롭게 하는 사람이기도 했고, 사랑 때문에 스스로 자주 외로워지는 사람이었으니까. 더구나 그때는 그에게 무척 어려운 시기였다.

 

사랑에 늘 서툰 자신의 고통이나 슬픔과, 젊은이들의 빛나는 사랑에 대한 응원의 마음이 겹쳐지면서 시상이 부풀어 올랐다. 시를 써내려가기 시작했다. 우리가 희망하는 사랑, 혹은 자신이 누군가에게 주어야 할 어떤 사랑을 생각하면서.

 

“나는 오래된 거리처럼 너를 사랑하고/ 별들은 벌들처럼 웅성거리고// 여름에는 작은 은색 드럼을 치는 것처럼/ 네 손바닥을 두드리는 비를 줄게/ 과거에게 그랬듯 미래에게도 아첨하지 않을게// 어린 시절 순결한 비누 거품 속에서 우리가 했던 맹세들을 찾아/ 너의 팔에 모두 적어줄게/ 내가 나를 찾는 술래였던 시간을 모두 돌려줄게// 나는 오래된 거리처럼 너를 사랑하고/ 벌들은 귓속의 별들처럼 웅성거리고// 나는 인류가 아닌 단 한 여자를 위해/ 쓴잔을 죄다 마시겠지/ 슬픔이 나의 물컵에 담겨 있다 투명 유리 조각처럼”(「청혼」 전문)

 

2014년 시 「청혼」 을 지은 뒤 계간지에 발표했다. 그는 오랫동안 시집을 발간하지 않았고, 그 사이 시는 집을 갖지 못한 채 인터넷과 많은 사람들의 가슴 사이에서 떠돌고 부유했다. 거창한 인류가 아닌 구체적인 단 한 사람, 바로 당신만을 사랑하겠다는 뜨거운 사랑의 맹세로....

 

진은영 시인이 10년 만의 네 번째 시집 『나는 오래된 거리처럼 너를 사랑하고』 (문학과지성사)를 펴냈다. 니체 논문으로 박사 학위까지 받은 그의 시들은 철학적으로 더욱 깊어졌고 은유 역시 더욱 낯설어졌다는 평가와 함께, 시집은 출간과 함께 교보문고 베스트셀러 시 분야 1위에 오르더니 3주 만에 무려 1만 부가 팔려나갔다. 시집으로선 이례적인 판매부수다.

 

도대체 진은영의 시는 무엇이길래 이토록 많은 이들이 열광하는 것일까. 시인의 작가적 행로는 어디로 향해 갈까. 진 시인을 지난 21일 전화로 만났다.

 

―이번 시집 구성이 3부로 짜여 있는데.

 

“시집 구성을 생각하면서 예은이에 대한 시를 어디에 넣어야 할까를 제일 먼저 고민했다. 보편적이면서도 개별적인 우리 자신의 사랑 이야기부터 먼저 하고 싶었다. 그래서 사랑에 대한 생각, 연인 간의 사랑, 시에 대한 생각, 사적인 이야기 등 사적이면서도 보편적 이야기를 먼저 다루고 이런 부드러움의 마음을 가지고 예은이에 대한 이야기를 다뤘다. 3부에선 훨씬 더 사회적 맥락의 사랑과 죽음 이야기를 다루게 됐다.”

 

―인상적 연애시로도 읽힐 수 있는 「청혼」 으로 시집을 열었다.

 

“제 마음의 고통과 더불어, 젊은이들의 빛나는 사랑에 대한 응원의 마음을 담아보고 싶었다. 특별한 것을 아무것도 약속하지 못하지만, 그래서 더 간절한 어떤 사랑의 태도를 쓰고 싶었다. 사랑하는 건 어려운 일이지만, 사랑을 시작하는 모든 사람들을 축복해주고 싶은 마음이 있다. 어렵지만, 한결같고 성실한 사랑의 자세를 유지하길 간절히 소망한다.”

 

이렇게 시작된 사랑은 결코 사랑하는 두 사람만의 문제가 아니라고, 시인은 말한다. 그러니까 사랑이란 모든 세상과 연결될 수밖에 없고, 마침내 우주로까지 확장하는 일대 사건이다. “옷장 속에서 사랑을 했네/ 하늘의 흰 무릎이 내려와/ 땅의 더러운 무릎에 닿았네/ 간지러워 나무들은 재채기했네/ 가슴이 부끄러워 두 개의 언덕으로 솟아났네/ 놀라서 구름은 달아나고/ 아름다워서 웃음이 흩어졌네/ 아아 너무 웃어 비가 내리네/ 하얗고 더럽고 무서운/ 알몸으로 나는 쏟아졌네/ 흐르는 별처럼/ 밤의 깨진 술병 속으로// 얼굴 위로/ 텅 빈 옷걸이들 흔들리네”(「우주의 옷장 속에서」 전문)

 

―사랑이 우주로까지 연결되는 상상력은 상당히 놀라운데.

 

“옷장 속의 사랑은 뭔가 내밀하고 은밀한 사랑이다. 사랑은 어떤 은밀성과 내밀성이 있다. 사랑의 괴로운 부분이나 적나라한 부분을 간혹 이야기하기도 하지만, 사랑이 완전히 끝나기 전까진 끝내 못하는 사랑의 이야기들, 두 사람만 아는 이야기가 있다. 사랑은 이처럼 세상에서 가장 은밀한 것이라고 흔히 생각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사랑에 빠지면 온 세계가 이 사랑에 참여하는 느낌을 받기도 한다. 불교나 여러 철학 사상을 살펴보면, 하나의 사건이 결정되는 데에는 무수한 원인들이 작동한다. 가령, 나무가 도로에 서 있는 건 나무를 심는 사람도 있고 가꾸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지나가는 차가 그 나무를 부딪쳐 쓰러뜨리지 않아서 존재하는 것이기도 하다. 나무를 부딪치지 않고 멀쩡히 지나가주는 차, 원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모든 것까지 사건에 참여하고 있는 셈이다. 사랑도 사람 사이에 일어나는 사건 같지만, 어떤 의미에선 어떤 존재들이 방해했으면 이루어지지 않을 사건이기도 하다. 결국 사랑 역시 모든 세계가 참여하는 사건이라는 아이디어가 아름다웠다. 이것을 시적으로 표현해보고 싶었다.”

 

모든 세계가 연루되고 저 멀리 우주까지 나아가는 사랑일지라도 한 곳이 무너지면 전체가 쓰러질 수도 있다. 마치 도미노처럼. 사랑하는 순간은 영원처럼 느껴질 수 있듯이, 그 영원 역시 한순간이 될 수도. “너는 건드렸다/ 컵들은 다 깨졌어/ 사랑하는 이여, 금간 컵들에 대해 변명할 필요가 없다/ 나를 이 몹쓸 바닥에서/ 쓸어 담아줘”(「봄의 노란 유리 도미노를」 전문)

―사랑이 컵처럼 깨져 버렸다.

 

“우리는 정성을 다해 도미노를 세운 뒤 살짝 건드려 모두 무너뜨린다. 무너뜨리기 위해 도미노를 한다. 사랑도 그런 것 같다. 서로 정교하게 자기 마음에 세우지만 살짝만 건드려도 무너지는 사건이기도 하다. 사랑이 갖는 독특하고 위태롭고, 위태로워서 아름다운 속성을 표현해 보고 싶었다.”

 

사랑은 사랑하는 사람들을 변하게 하는 마술 같은 전문가이지만,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 사이에선 더 이상 마법을 부리지 못한다. 사랑이 떠나거나 끝난 자리에는 되레 거대한 환멸이 몰려온다. “죽은 마술사, 내 사랑 너는 녹슨 철책의 발코니 무의미의 실내악/ 나의 악보가 놀라서 내게서 도망쳤다/ 너에 대한 사랑과 슬픔에 빠져 내 귀는 익사할 지경이 되었으니까/ 소금을 쥔 당나귀를 걷어찼지/ 눈 속에 잠든 내 입술의 동네 근처로// 내 심장은 얼음 위 맨발처럼 추억 속에 뛰고 있고/ 모든 기쁨을 잠들게 하는 종소리가 어두운 언덕 위로 지나갔다/ 저녁에 탁자/ 알 수 없는 시구들이 파란 연필처럼 길게 드러눕는다/ 단어 속, 기어 깜빡이는 속눈썹을 흰개미들이 갉아 먹고 있다// 이봐, 슬픔의 좁쌀을 가득 채우라고/ 이제 내 인생은 구멍 난 주머니야”(「죽은 마술사」 전문)

 

―마지막 구절이 특히 인상적인데.

 

“놀랍게도 사랑은 부서지기 쉽고, 가볍고, 속절없는 것인데도,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우리는 사랑이 우리 자신을 완전히 바꿔놓는 기적적 경험을 한다. 우리는 사랑의 견습생이나 아마추어이지만, 사랑은 우리를 바꿔놓는 전문가이고 우리에게 마법을 부리는 마술사다. 하지만 사랑이 끝나고 더 이상 아무 것도 변화하지 않는 순간을 경험하게 되는데, 그런 사랑의 슬픔을 시로 썼다. 시로 사랑의 슬픔에 대해 쓰면 시는 우리를 점점 덜 슬픈 상태로 만드는 마술을 부리는 것 같다. 슬픔이 크면 자신도 모르게 줄줄 눈물이 나는데, 어떤 의미에선 슬픔이 비워지는 과정이기도 하다. 슬픔이 좁쌀처럼 다 흘러 쏟아지면, 새로운 마음을 채울 수 있다. 처음에 쓸 때는 환멸에 대해 썼지만, 어느 순간 또다른 사랑의 가능성에 대해 무의식적으로 쓰고 있다고 생각하게 됐다.”

 

2014년 4월16일 세월호 참사가 발생했고, 생때같은 수많은 생명이 사라졌다. 그들 가운데 단원고 2학년생 예은이도 있었다. 사고 직후 예은이의 첫 생일 때 가족들에게 들려준 시도 담겨 있다.

 

“엄마 아빠, 그날 이후에도 너무 많이 사랑해줘 고마워 /엄마 아빠, 아프게 사랑해줘 고마워/ 엄마 아빠, 나를 위해 걷고, 나를 위해 굶고, 나를 위해 외치고 싸우고/ 나는 세상에서 가장 성실하고 정직한 엄마 아빠로 살려는 두 사람의 아이 예은이야/ 나는 그날 이후에도 영원히 사랑받는 아이, 우리 모두의 예은이// 오늘은 나의 생일이야”(「그날 이후」 부문)

 

―이 시는 어떻게 나왔는지.

 

“세월호 참사 당시 희생자 유가족들을 위해 안산에 치유공간 ‘이웃’을 만든 정혜신 박사를 알게 됐다. 그런데 희생된 아이의 목소리로 시를 써서 생일잔치에서 가족들에게 읽게 해달라고 부탁을 받고 시를 쓰게 됐다. 쓰기가 무척 힘들었다. 나는 아이도 없는데, 침몰하는 배 안에서 친구들과 함께 세상을 떠난 열일곱 살 아이의 고통을 어떻게 알 수 있겠느냐. 내가 가닿을 수 없는 고통에 대해 감히 써야 한다는 사실이 너무 힘들었다. 그렇지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면 참을 수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에 쓰게 됐다. 아이가 명절 때 할머니랑 같이 전을 붙이던 이야기, 핸드폰을 잘 꺼둬서 엄마를 걱정시켰다는 이야기, 이름에 무지개 예자가 들어간다는 이야기.... 아이의 모습과 삶에 조금이라도 다가가려는 마음으로 쓰게 됐다.”

 

시인은 몇 년 뒤 다시 예은이를 기리는 시를 썼다. 예은이의 시선으로 쓴 「그날 이후」 와 달리 엄마 아빠의 시선으로. “...예은아, 진실과 영혼은 너무 가볍구나/ 거짓됨에 비해,/ 진실과 영혼은 너무 가볍구나/ 모시옷처럼/ 등 뒤에 돋는 날개처럼// 양팔 저울의 접시에 고이는 네 눈물/ 너의 별 쪽으로 더 기울어지려고/ 광장 위 가을 하늘이 자꾸만 태어났다 쏟아진다”(「천칭자리 위에서 스무 살이 된 예은이에게」 부문)

 

―진실과 영혼이 너무 가볍다고 했는데.

 

“아름다운 것들은 가벼워서 잘 떠오르고 순수한 것에 가 닿지만, 반대로 얘기하자면 가벼워서 땅에 잘 내려앉질 못한다. 진실은 밝혀지지만, 쉽게 밝혀지진 않는다. 진실을 밝히려면 엄청난 무게의 노력이 필요하다. 천사의 날개처럼 가볍고 부드러운 진실을 모아서 세상의 무거움과 맞서려면, 무한한 노력이 필요하다. 어둠의 무게와 동등해지려면, 동등하게 맞서 싸울 만큼 무거워지려면, 많은 날개 짓들이 쌓여야 한다. 쉽게 밝혀지지 않는 진실에 절망하지 않고, 우리가 그것을 끝까지 지키려면 어떤 게 필요할까를 생각하면서 쓴 문장이다.”

 

이번 시집에는 사랑이나, 사회적 시각이 담긴 세월호 사건만을 다룬 건 아니다. 음악에 대한 단상(<카살스>)이나, 시에 대한 생각 등 여러 사유의 편린이 담겨 있다. 시 「그러니까 시는」 는 시에 대한 정의뿐만 아니라 시인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생각하게 한다. “우리가 절망의 아교로 밤하늘에 붙인 별/ 그래, 죽은 아이들 얼굴/ 우수수 떨어졌다/ 어머니의 심장에, 단 하나의 검은 섬에// 그러니까 시는/ 제법 볼륨이 있는 분노, 그게 나다! 수백 겹의 종이 호랑이가/ 레몬 한 조각에 젖는다/ 성냥개비들, 불꽃 한 점에 날뛴다// 그러니까 시는/ 시여 네가 좋다/ 너와 함께 있으면/ 나는 나를 안을 수 있으니까// 그러니까 시는/ 여기 있다/ 유리 빌딩 그림자와/ 노란 타워크레인에서 추락하는 그림자 사이에/ 도서관에 놓인 시들어가는 스킨답서스 잎들/ 읽다가 덮은 책들 사이에/ 빛나는 기오틴처럼 갇힌 면접장 문틈에// 잘려 나간 그림자에 뒤덮여서/ 돋아나는 버섯의 부드러운 얼굴”(「그러니까 시는」 부문)

 

―시인의 시론도 조금 엿보이는 것 같다.

 

“최근 1, 2년 전 쓰인 시다. 시에 대한 정의를 많이 내려서 시적인 자의식이 많은 시인이라는 이야기를 듣기도 했는데, 저에겐 시의 이름 혹은 문학의 이름으로 바라봐야만 하는, 바라보고 싶은 존재들에 대한 서술이다. 이름을 부르면서 그 존재들이 제 곁에 있고, 그들과 어떻게 만나야 될지를 시 속에 쓰고 싶었다. 단지 시의 정의일 뿐만 아니라 개인적으로 시인이 뭐지, 시가 뭐지라고 물을 때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하지라는 방식으로 묻게 된다.”

 

진 시인은 「작가의 말」 에서 “불행이 건드리고 간 사람들 늘 혼자지”라는 헤르베르트의 시구를 인용한 뒤 “한 사람을 조금 덜 외롭게 해보려고 애쓰던 시간들이 흘러갔다”고 썼다. 구체적인 설명을 부탁하자, 그는 천천히 말했다.

“불행한 사건을 맞으면 사람들은 처음에는 관심을 갖지만 금방 잊고 맙니다. 결국에는 당사자만 계속 고통 속에 남겨지게 되지요. 불행이 건드리고 간 사람들은 곁에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아 외롭죠. 불행한 사건에 더해, 아무도 자신의 고통에 관심을 기울여주지 않아 자신이 유기된 것 같은 기분을 느낍니다. 고통과 불행에 빠진 사람은 자기 옆에 몇몇 사람이 남아 있다는 것만으로도 훨씬 덜 어려울 수 있어요. 개인적 사랑에서도, 사회적 참사를 겪는 분들에게도 모두 해당되죠. 슬픔이야말로 연대를 가장 필요로 하는 순간이죠. 존 버거도 연대나 사랑이 필요한 곳은 행복한 천국이 아니라 냉혹한 지옥이라고 했죠.”

 

여고생 진은영은 오랫동안 자신의 유년을 감싸고돌던 우울한 가족 분위기가 싫어졌다. 슬펐고, 화도 났고, 힘들었다. 술꾼이던 할머니는 자주 술에 취해 살림을 부수곤 했다. 자연히 엄마가 마음고생을 많이 했고, 집안은 우울한 분위기에 휩싸였다. 어릴 때는 그러려니 하고 지나갔지만, 사춘기에 접어들자 그게 아니었다.

 

그는 이때부터 집에 있던 『한국시인선』 을 비롯해 시집을 학교에 가져가서 몰래 읽기 시작했다. 야간 자율학습 시간엔 소설 『데미안』 을 읽다가 들켜서 혼나기도 했다. 윤동주나 김영랑 시인 등 잘 알려진 시인들의 시를 필사하기도 했고, 혼자 조용히 낭송도 했다. 그런데 묘하게도 슬픈 마음이 진정됐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그렇다면 나도 한번 아름다운 시를 써볼까. 고등학교 시절부터 시를 쓰기 시작했다. 시인 진은영의 원점이었다.

 

멋진 시를 쓰는 시인 친구들을 사귀어야지. 그는 대학에 입학한 뒤 ‘이화문학회’에 가입했다. 캠퍼스에는 여전히 민주화 운동 열기가 남아 있어 문학에만 집중하지 못했고, 대신 노동문제연구소에 가입해 노동문제를 공부했다. 박노해나 백무산의 시도 함께. 대학원에 진학해 철학 공부를 하면서도 김정환 시인이 열었던 ‘한국문학학교’에서 시인 최승자와 최승호로부터 시를 배웠다. 박사학위 논문은 시인으로 등단한 뒤에야 쓰게 됐다.

 

1970년 대전에서 시계회사를 다니던 아버지와 미용사였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뒤 성남을 거쳐 서울에서 자란 진은영은 2000년 『문학과사회』 에 시 「커다란 창고가 있는 집」 등 4편을 발표하며 등단했다.

 

등단 이후 시집 『일곱 개의 단어로 된 사전』 , 『우리는 매일매일』 , 『훔쳐가는 노래』 등을 펴냈다. 대산문학상, 천상병시문학상, 현대문학상, 김달진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2013년부터 한국상담대학원대학교에서 문학상담 교수로 재직 중이다.

 

―시 세계를 조금 설명해 달라.

 

“주로 슬픈 일, 상처에 대해 시를 썼던 것 같다. 첫 번째 시집 『일곱 개의 단어로 된 사전』 에는 유년 시절의 기억 때문인지 온통 가족 이야기를 담았다. 첫 시집을 내고 나니까 다른 얘기를 하고 싶었고, 특히 시 쓰기의 아름다움에 매혹되어 문학적 실험을 열심히 했다. 2008년 출간된 두 번째 시집 『우리는 매일매일』 은 문학적 실험 정신이 가득한 시집이었다. 그래서 새로운 감각을 가진 젊은 시인, 미래파 시인으로 분류되기도 했다. 이후 보수 정권이 들어서면서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나 용산참사 등이 벌어지면서 사회적 발언을 하는 시들을 많이 썼다. 세 번째 시집 『훔쳐가는 노래』 에는 다른 사람들의 목소리를 많이 들어간 시를 담았다. 20대부터 심장병을 앓고 있어서 다른 시인들보다 통증이나 감각을 좀더 예민하게 느껴왔고, 그래서 감각적 표현이 좀더 드러났던 것 같다.”

 

―시쓰기의 원칙이나 방법, 전략은 어떤지.

 

“시인들은 전업 작가를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직업을 갖지 않으면 생계가 막연하기 때문이다. 두 가지 일을 병행하다보니 늘 쫓기듯 시를 써야 한다. 그래서 작은 노트에 좋은 글이나 아이디어를 메모해두고 거기에서 떠오르는 시상을 적고 시를 써나간다. 조금씩 쓰고 고친다. 한두 달에 걸쳐 한 편의 시를 완성할 때도 있다.”

 

―향후 계획이 있다면.

 

“상담대학원대에서 문학상담을 하느라 시집 발간이 늦어진 측면도 있었다. 등단을 목적으로 하는 시인 지망생을 지도하는 게 아니라, 그냥 문학을 사랑하고 문학을 통해 누군가 마음을 들여다보는 일을 하는 친구들을 교육한다. 더 많은 사람들이 시를 읽고 쓰는 작업을 하는데 도움을 주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고 그 과정을 책으로도 내고 싶다.”

 

‘최승자의 후계자’라는 말을 듣기도 하는 진 시인은 이날 휴대폰 너머에서 자주 숨을 몰아쉬었고, 기침도 낼 듯 말 듯 했다. 목소리 역시 자주 갈라졌다. 그의 말을 듣고 있자니, 은근히 걱정도 됐다. 혹시 내가 너무 몰아붙이는 건 아닌가.

 

그는 2017년 심장판막 교체 수술을 받았다. 하지만 부작용으로 다시 입원 치료를 받아야 했고, 1년간이나 휴직한 뒤, 가을 학기에 복직했다. 지금도 자주 숨이 차고, 쉬이 피로감을 느낀다. 운동 역시 하기 쉽지 않다고 했다.

 

학교가 있는 서초동에서 생활하는 그는 수업을 준비하고, 작은 노트에 시상을 메모하는 일상을 반복한다. 그럼에도 시 쓰기는 여전히 쉽지 않다. 시란 자기가 사는 만큼 쓰는 것이니까. 그 외는 모두 포즈에 불과하니까. 한 달에 딱 시 한 편이 목표. 그리하여 한 달에 1편, 1년에 12편, 2년에 24편, 3년에 36편....

 

시인에게 해줄 수 있는 게 거의 없었다. 그나마 해줄 수 있는 건 그가 사춘기 시절 알 수 없는 위로를 받았다는 낭송뿐. 그리하여 휴대폰 너머로 시를 매력 없는 목소리에 담아 송신하기 시작한다. 출판사에서 보내준 그의 사진을 보면서. 어느 새 눈초리마저 순하게 내려간 그의 얼굴이 담긴.

 

“그러니까 시는 돌들의 둥그런 무릎,/ 죽어가는 사람 옆에 고요히 모여 앉은// 한밤중 쏟아지는 폐병쟁이 별들의 기침/ 언어의 벌집에서 붕붕대는 침묵의 말벌들// 이 슬픔의 앙상한 다리는 어느 꽃술 위에 내려앉았나/ 내 속에 매달린/ 영원히 익지 않는 검은 열매 하나”(「그러니까 시는」 부문)


김용출 선임기자 kimgija@segye.com, 사진=진은영 시인 제공, (c)손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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