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질병관리본부의 ‘질병관리청’ 승격을 약속한 날 정은경 질병관리본부장은 웃지 못했다. 되레 “국민께 송구하다”며 사과를 하고 고개를 숙였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맞서는 중앙방역대책본부장으로서 황금연휴 기간 느슨해진 방역망을 뚫고 이태원 클럽발 코로나19 집단감염이란 악재가 터졌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은 10일 오전 취임 3주년 기념 대국민 특별연설에서 “우리는 이미 우리의 방역과 보건의료 체계가 세계 최고 수준임을 확인했다”며 “방역시스템을 더욱 보강하여 세계를 선도하는 확실한 ‘방역 1등 국가’가 되겠다”는 각오를 밝혔다.
이어 “질병관리본부를 ‘질병관리청’으로 승격하여 전문성과 독립성을 강화하겠다”며 “질본에 전문인력을 확충하고 지역 체계도 구축, 지역의 부족한 역량을 보완하겠다”고도 했다. 1963년 국립보건원으로 출발한 질병관리본부는 노무현정부 시절인 2004년 지금처럼 차관급 기관장을 둔 기관으로 승격한데 이어 문재인정부에서 보건복지부의 독립 외청으로 확대·개편되는 영예를 안게 됐다.
하지만 같은 날 오후 코로나19 정례 브리핑에 나선 정은경 본부장의 표정은 어두웠다. 이태원 클럽발 코로나19 집단감염 상황이 심상치 않아서다. 무엇보다 황금연휴 기간 사회적 거리두기를 그토록 강조했건만 클럽 같은 유흥시설에서 밀접 접촉이 이뤄짐으로써 방역망이 뚫렸다는 안타까움이 컸다.

정 본부장은 “방역당국 입장에서 밀폐되고 밀접한 접촉이 일어나는 유흥시설·종교시설에 대한 우려를 많이 했는데, 그런 우려가 이태원 클럽의 집단발병으로 나타나 굉장히 송구한 마음”이라고 말했다. 송구하다는 것은 ‘미안하다’는 뜻으로 대국민 사과를 한 셈이다.
이태원 클럽에서 벌어진 일은 정 본부장이 어떻게 막을 수 있었던 게 아니지만 방역정책을 책임진 중앙방역대책본부장으로서 방역망이 뚫린 점에 대해 책임을 지는 태도를 보인 것이다.
이날 0시 기준 코로나19 확진자는 이태원 클럽 집단감염 여파 등으로 전날보다 34명 늘어 4월9일 이후 한 달 여만에 최대치를 기록했다. 특히 서울, 인천, 경기, 충북, 제주, 부산 등 전국에서 확진자가 잇따라 전국적 2차 전파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날 낮 12시 기준으로 이태원 클럽발 코로나19 집단감염으로 확진 판정을 받은 이는 총 54명에 이르는 것으로 집계됐다.
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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