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접속’(1997)의 계보를 잇는 멜로물이 나왔다.
28일 개봉하는 정지우 감독의 ‘유열의 음악앨범’은 극장에서 오랜만에 만나는 한국 멜로 영화다. ‘접속’처럼 PC 통신에 라디오를 매개로 1994년과 1997년, 2000년, 2005년에 걸쳐 만남과 헤어짐을 거듭하는 두 남녀의 동화 같은 이야기다. 과거로 돌아간 듯한 경험을 선사하며 디지털 시대 메마른 아날로그 감성과 눈물샘을 자극한다. 믿고 보는 배우 정해인(31)이 그 주인공이다.
지난 22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2019년이나 (영화 배경인) 1994년이나 청춘들의 사랑이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며 “사랑의 감정, 희로애락은 똑같다”고 운을 뗐다. 영화는 1994년 10월1일 주인공들의 운명적인 첫 만남과 함께 동명의 라디오가 전파를 타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라디오를 가장 많이 들은 건 군대에 있을 때였습니다. 군대는 사회와 단절돼 있잖아요. 운전병이었는데 라디오를 들으면 뭔가 사회와 연결되는 것 같아 좋았어요. ‘두시탈출 컬투쇼’ 등을 즐겨 들었죠.”
그가 맡은 현우는 첫사랑 미수(김고은)에게만은 과거를 숨기려 하는 지고지순한 인물. 그는 “사람은 누구나 감추고 싶은 과거가 있을 것이고 저도 마찬가지”라면서도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다 말하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며 사랑꾼 면모를 드러냈다.
한 옷을 오래 입는 건 현우와 같다. “같은 옷도 두세 벌 있는데 갈아입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고 웃었다.

2013년 데뷔한 뒤 쉼 없이 활동하며 탄탄대로를 걷는 듯한 그에게도 힘든 시절은 있었다. 최근에는 번아웃(Burnout·소진) 증후군을 경험했다.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것과 휴식의 중요성을 깨달은 시간이었다.
“나를 먼저 사랑해야 남을 사랑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긴다고 생각해요. 몸도 마음도 아프니까 아무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더라고요. 휴식도 필요하다는 걸 배웠습니다. 얼마 전 친동생, 친한 형과 제주도 여행을 갔는데 정말 행복했어요. 서핑도 처음 해보고 흙을 만지며 잡초도 뽑았는데 일상에서 벗어난 기분이었죠.”
인생을 살아가며 “강력한 것 한두 개만 있으면 된다”는 현우의 대사는 삶의 가치를 돌아보게 한다. 정해인에게 그 한두 개는 가족과 팬들이다.
“일곱 살 터울인 남동생은 세상에서 가장 친한 친구예요. 동생뿐 아니라 부모님도 제 기사를 다 찾아봅니다. 더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저도 기사는 하나하나 찾아보고 댓글도 선플이든 악플이든 다 봐요. 관심과 사랑도 받지만 질타도 받기 때문에 (악플은)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해요. (악플에) 당연히 흔들리겠지만 계속 흔들리면 이 일을 건강하게 할 수 없겠죠. 일희일비하지 않고 차분하게 해 나가려고요. 건강하게 오래 연기하는 게 꿈이거든요. 또 제 연기를 봐주는 분들에게도 힘을 많이 얻어요. 팬들이 늘어날수록 연기에 대한 책임감이 커지는 것 같습니다.”

혼자 연기만 잘해서는 안 된다는 것도 배워 가고 있다.
“상대방에 대한 진심 어린 존중, 배려가 있어야 해요. 모든 배우, 스태프에게 말이죠. 먼저 다가가는 성격이 아니라 어렵지만 용기를 내 상대를 존중해 주고 배려하면 그분도 저를 존중해 주더라고요.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 때 손예진 선배님에게 많이 배웠어요. 멜로 연기 경험이 없고 드라마 첫 주인공이라 긴장했는데 제가 마음껏 연기할 수 있게 챙겨 주셨어요. 이번에 고은씨에게도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고은씨는 감독님과 ‘은교’로 호흡을 맞춘 적 있고, 돈독한 관계거든요. 전 처음이다 보니 현장에 적응하는 시간이 필요했는데 그 시간을 단축해 준 일등 공신이죠.”
그는 한 번 맺은 인연을 중시하는 스타일이다. 현우와의 또 다른 공통점. 아직 데뷔하지 못한 그의 실제 친구가 영화에 출연한 건 그 덕분이다.
“김병만이란 제 대학 동기가 현우 친구로 나와요. 감독님과 현우 친구들 얘기를 하다가 감독님에게 소개했죠. 오디션을 봤는데 너무 잘 본 거예요. 그 친구가 영화에 나와서 기뻐요.”
특유의 해사한 미소를 지으며 자랑하듯 말하는 그에게서 바쁜 와중에도 주변을 살뜰히 챙기는 마음 씀씀이가 느껴졌다. 올해 꿈이 하나 있다면 가족 여행을 가는 것. 그는 “한 15년간 가족 여행을 못 갔다”며 “꼭 가고 싶다”고 했다.
박진영 기자 jyp@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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