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택시가 가해자가 되는 교통사고는 일반 차량 교통사고와 달리 보험회사가 아닌 버스·택시운송사업조합 산하 공제조합으로부터 보상을 받는다.
보험사처럼 독립적인 법인이 아니라 버스·택시회사의 운영자들이 모여 만든 운송사업조합이 부대사업의 하나로 만든 조직(공제조합)이 보상을 하다 보니, 가해자가 보상을 하게 되는 기묘한 구조적 한계를 안게 된 것이다.
사실상 한 식구나 다름없다 보니 공제조합은 운송사업조합의 영향력에서 자유로울 수 없고, 조합원(운송사업자)은 보상을 많이 할수록 분담금(보험료)이 오르니 충분한 보상을 달가워하지 않는다.
국토부의 이번 조치는 이런 운송사업조합과 공제조합 간 연결고리를 최대한 느슨하게 해 공제조합이 전문성을 갖고 독립적으로 보상 활동을 벌일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 버스·택시사업자, 보상업무서 배제하기로
국토부는 우선 가해자에 해당하는 운송사업자의 보상업무 관여를 단계적으로 차단하기로 했다. 지금은 지역운송사업조합 이사장이 공제조합 지부장을 겸하면서 보상업무에도 관여하고 있다.
버스·택시 사업자의 지역대표가 보상을 총괄하는 셈이니 피해자 보호보다는 사업자 이익이 우선이 될 수밖에 없다.
국토부는 이에 따라 올해 7월부터 공제조합의 부지부장을 맡고 있는 보상업무 직원에게 전결권을 대폭 넘겨줄 셈이다. 100만원 이하 보상에 대해서만 주어진 전결 권한을 1천만원 이하로 확대해 대형 사고만 지부장 결재를 받도록 한다는 것이다.
이어 내년에는 사업자의 보상업무 관여를 금지하고 2016년부터는 현재 부지부장인 공제조합의 실무 최고책임자가 전담지부장을 맡도록 한다.
사업자는 아예 보상업무에서 손을 떼도록 한다는 것이다.
◇ 사고 피해자가 공제조합에 직접 신고한다
버스·택시에 받힌 교통사고 피해자가 직접 버스·택시 공제조합에 신고하는 것도 좀 더 수월해진다. 지금도 직접 신고의 길은 열려 있지만 실제로는 연락처 등을 파악할 수 없어 신고가 어렵다.
이에 따라 앞으로는 버스·택시 안에 2개 이상 공제사고(교통사고) 신고 안내판을 부착해 피해자나 동승자, 제3자 등이 신고하기 쉽도록 한다.
여기에 보태 지금은 운송사업조합이 공제조합에 사고를 신고하고 지불보증을 해주는 등 승인을 해줘야 공제조합이 보상 절차에 들어가지만 앞으로는 사고가 접수되면 공제조합이 곧장 보상에 나서도록 하기로 했다.
또 사고를 낸 버스·택시 운전사가 운수회사를 거치지 않고 공제조합에 신고할 수 있도록 해 보험료(분담금) 할증을 피하려는 운수회사가 운전사에게 현장에서 사고를 처리할 것을 종용하는 일도 줄어들도록 한다는 것이다.
◇ 공제조합 관리·감독도 강화
보험사 등을 관리·감독하는 금융감독원 같은 기능과 연구·조사 기능을 함께 갖춘 '자동차손해배상평가원'(가칭)도 설립된다. 이를 위해 국토부는 자동차손해배상법을 개정하는 절차에 착수했다.
분담금(보험료) 조정 절차를 개선해 국토부 승인 전 전문기관이 적정성을 검증하고, 공제조합에 대한 경영평가 지침도 마련해 재정 건전성을 감시하게 된다.
교통사고의 보상금이나 과실율, 장애율 등에 대해 공제조합과 피해자 간 이견이 있을 때 이를 중재하는 공제분쟁조정위원회의 조정에는 재판상 화해와 같은 효력을 부여한다.
지금은 공제분쟁조정위가 중재안을 내놔도 일방이 동의하지 않으면 아무 효력이 없다.
그러나 이런 조치에도 근본적으로 공제조합이 운송사업조합의 산하 조직으로 남는 문제는 여전하다. 민간 보험사처럼 객관적인 보상을 위해서는 공제조합의 독립법인화가 필요하지만 여기까지는 나가지 못하는 것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지금은 운송사업조합연합회의 부대사업으로 공제조합이 운영되는데 이를 독립법인화하는 것은 여러 복합적인 문제가 있어 당장은 추진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운송사업자가 사고를 낸 버스·택시기사에게 불이익을 주는 관행이 계속될 경우에도 운전사들이 공제조합을 통해 사고를 처리하기보다 현장에서 스스로 해결하려는 태도는 사라지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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