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나의 이야기를 펼칠라 치면 ‘삼천포’로 빠지면서 곁가지 이야기들을 종횡무진 자아내며 좌중의 폭소를 유발하는 그의 구수한 입담은 소문난 것이었다. 흥이 오르면 저음의 매력적인 목청으로 ‘뽕짝’까지 불러젖히는 멋쟁이였다. 소설가이기 이전에 번역가, 신화 전문가라는 타이틀이 담보하는 서구풍 ‘댄디’ 이미지는 된장 냄새 나는 노래가 이야기와 합쳐져 누구도 쉬 흉내 낼 수 없는 그만의 매력을 발산했다. 이런 매력에 폭넓은 인문적 지식과 유려한 문장까지 가세했으니 그는 가위 당대의 ‘가인’(佳人)이었다.

그가 작명한 호는 ‘과인’(過人·지나가는 사람)이었다. 살림집 뒤에 지은 서재의 이름도 ‘과인재’였는데 ‘세상을 스쳐 지나가는 자의 집’이라는 의미였다. 이 ‘과인’은 시골 황무지를 사들여 세월의 눈금을 재는 방편으로 1500여그루의 나무를 심고 애지중지 돌보았다. 늦은 봄이면 목련 숲으로 친구들을 불러들여 그가 평생 사랑한 술과 더불어 생의 한때를 느껍게 향유했다.
‘떠난 자리’라는 산문에서 이윤기는 자신과 절친했던 미시간주립대학교 석좌교수 임길진 박사가 한국에 들어왔다가 그와 더불어 중학교 동창집을 방문했지만 부재중이라 포도주만 맡긴 채 미국으로 갔는데, 그곳에서 곧 교통사고로 사망했다는 이야기를 전한다. 뒤늦게 망인이 맡기고 간 포도주를 벗들과 함께 개봉하는 날의 분위기를 전하는 산문의 말미에서 그는 “죽음은 죽는 순간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잊히는 순간에 이루어지는 것이라는 게 나의 생각”이라면서 “이렇듯 잊혀지지 않고 있으니, 그 떠난 자리가 참 아름답다”고 적었거니와, 이 말은 정확히 이제 고인이 된 그 자신에게 돌려주기에 적확한 말인 것 같다.
![]() |
◇지난해 8월 작고한 소설가 이윤기씨. 그는 유고 산문에 “이으면 인연이요, 끊으면 절연인 법. 내 가슴에 손을 얹고 물어보았다. 너는 인연을 잇느냐? 끊느냐?”고 적었다. |
밤의 화톳불 곁에서 위트와 노래로, 촌철살인의 재담으로, 신화 속의 환상적인 이야기로 쉼 없이 이야기를 들려줄 것 같은 이윤기라는 이야기꾼은 이제 우리 곁에 없다. 하지만 그가 남긴 이야기들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심은 나무들의 밑동으로 돌아가 대지와 더불어 쉬고 있겠지만, 정작 그가 남긴 이야기들은 그가 사랑한 나무들처럼 더 자라나는 중이다.
조용호 선임기자 jhoy@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