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유럽 폴란드는 역사적으로 프랑스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폴란드에서 태어난 뒤 프랑스로 건너가 세계적 과학자로 대성한 일명 ‘퀴리 부인’ 마리 퀴리(1867∼1934)는 양국의 우정을 상징하는 인물로 꼽힌다. 퀴리의 소녀 시절 폴란드는 독립을 잃고 제정 러시아의 압제를 받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역경을 딛고 프랑스 유학 및 국적 취득을 거쳐 노벨물리학상(1903)과 노벨화학상(1911) 수상이라는 빛나는 업적을 세웠다. 1차대전을 계기로 제정 러시아가 무너진 뒤 1925년 신생 독립국 폴란드를 찾은 퀴리는 엄청난 환영을 받았다. 1934년 퀴리가 66세를 일기로 별세했을 때 고인의 관 위에는 모국 폴란드에서 가져온 흙 한 줌이 뿌려졌다.
오늘날 사람들은 2차대전 하면 나치 독일과 군국주의 일본 대(對) 미국, 영국, 소련(현 러시아) 등 연합국 간의 싸움만 떠올리기 십상이다. 그런데 2차대전은 독일이 1939년 9월 이웃 나라 폴란드를 침공하며 시작됐다. 당시 폴란드와 동맹을 맺은 영국 및 프랑스가 독일에 선전포고를 하며 전쟁이 세계대전으로 비화했다. 프랑스는 대전 초반인 1940년 6월 독일에 져 항복하며 연합국 대열에서 탈락했다. 독일이 미·영·소 3대 연합국에 항복한 1945년에야 폴란드는 비로소 독립을 되찾았으나, 소련 영향권에 편입돼 공산화의 길을 걷는 것은 피할 수 없었다.
1990년대 초 동서 냉전 종식과 옛 소련 붕괴가 잇따르며 폴란드도 민주화의 바람에 휩싸였다. 체제 전환의 혼란 속에 폴란드는 새 정부 형태로 대통령 중심제를 선호하는 듯했으나, 1997년 헌법 개정을 통해 국민 직선으로 뽑은 대통령과 의회 다수파에 의해 선출된 총리가 권력을 나눠 갖는 이원집정제로 전환했다. 폴란드가 수백년 동안 긴밀한 관계를 맺어 온 프랑스의 제5공화국 권력 구조를 연상케 하는 형태가 아닐 수 없다. 둘 간에 차이점이 있다면 프랑스는 대통령 권한이 좀 더 큰 반면 폴란드는 총리의 비중이 무겁다는 것 정도일 것이다. 물론 대통령, 총리가 각각 속한 정파가 다른 경우 정치가 파국에 이를 수 있다는 점은 공통적이다.
지난 10월30일 폴란드 헌법재판소에서 어처구니 없는 일이 벌어졌다. 강성 우파 성향의 카롤 나브로츠키 대통령이 임명한 헌재소장이 1개월 직무 정지에 처해지고 의회의 중도·좌파 연합을 이끄는 도날트 투스크 총리의 지지를 받는 재판관이 소장 권한대행으로 지명된 것이다. 나브로츠키 대통령은 이를 “쿠데타”로 규정하며 강하게 반발했으나, 행정부 지휘를 받는 바르샤바 경찰이 헌재 청사를 접수하고 질서 유지에 나서면서 일단 투스크 총리의 의지가 관철되는 듯하다. 외신은 “폴란드 정국이 상반된 정파에 속한 대통령과 총리 간 극한 대치의 수렁에 빠졌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사법부마저 정치 양극화에 휘둘리는 모습이 남의 일 같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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