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나라 위한 헌신은 나의 본분”…글씨로 남긴 ‘대한국인’의 5개월 [지금, 옛것]

관련이슈 디지털기획 , 지금, 옛 것 , 이슈플러스

입력 :
강구열 기자 river910@segye.com 

인쇄 메일 url 공유 - +

구글 선호 매체 등록
“국제법이 대포만 못하다”…일본에서 환수 안중근 유묵 첫 공개
하얼빈 의거 후 순국까지 일본인 요청에 쓴 글에 사상과 애국 표현
“제 시계는 한 시간밖에 쓸 데가 없습니다”…윤봉길·김구의 회중시계

어두운 전시장 안, 유리장 속 족자 한 점만 환하다. 그 앞에 높인 나무 의자에 앉아 족자와 홀로 마주한다.

 

‘만국공법불여대포’(萬國公法不如大砲·만국공법(국제법)이 대포만 못하다)

 

독대. 안중근 의사 유묵을 공개한 국립고궁박물관 전시장
독대. 안중근 의사 유묵을 공개한 국립고궁박물관 전시장

안중근 의사가 남긴 글이다. 최근 일본에서 환수했다. 국립고궁박물관이 ‘독대 獨對 안중근이 남긴 여덟 글자’ 특별전을 열어 일반에 처음 공개하고 있다.

 

안중근의 유묵은 70여점이 전한다. 대부분이 1909년 10월26일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뒤 체포되어 이듬해 3월26일 중국 뤼순 감옥에서 순국할 때까지 약 5개월 짧은 기간에 쓴 것이다. 자신을 취조했던 검사, 감시했던 교도관, 재판 과정을 취재한 기자 등 일본인들에게 써 주었다.

 

안중근은 유묵에 자신의 사상과 철학을 담았다. 또 목숨을 바치는 걸 주저하지 않은 조국을 생각하며 절절한 애국심을 표현했다.

 

◆글씨로 남은 안중근의 마지막

 

뤼순 감옥 소장이던 구리하라 사다키치가 처음 소장했던 ‘만국공법불여대포’는 당대의 국제질서에 대한 비판이다. 19세기 후반 서구의 국제법을 소개한 ‘만국공법’이 동아시아에 전해졌다. 주권 국가 간 외교, 조약, 전쟁, 평화에 관한 규범이었다. 그러나 현실은 만국공법보다는 힘의 논리에 좌우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만국공법이 대포만 못하다고 했다. 안중근은 재판 과정에서 일본의 침략을 고발하고 조선의 독립과 동양평화를 위한 만국공법의 준수를 역설했다. ‘욕보동양선개정략시과실기추회하급’(欲保東洋先改政略時過失機追悔何及·동양을 보전하려면 먼저 침략적인 정책을 바꿔야 한다. 때를 놓치면 후회해도 소용없다)에 비슷한 인식이 담겨 있다.

안중근 의사 ‘위국헌신군인본분’ 유묵. 국가유산청
안중근 의사 ‘위국헌신군인본분’ 유묵. 국가유산청

‘애국지사 안중근’의 정체성을 가장 뚜렷하게 드러내는 유묵은 ‘위국헌신군인본분’(爲國獻身軍人本分·나라를 위해 몸을 바치는 것은 군인의 본분이다)이다. 나라에 대한 헌신을 강조하며 ‘본분’이라고 표현한 것에 주목해야 한다. 안중근에게 나라를 위한 희생은 특별한 행위가 아니라 자신의 책임을 다하는 일일 뿐이었다. 애국은 책임이자 실천이었다. 하얼빈 의거를 독립전쟁의 일환으로 인식하고, 자신을 군인으로 규정한 태도와 연결된다. ‘국가안위노심초사’(國家安危勞心焦思·국가의 안위를 걱정하며 애태운다)에도 애국이 가득하다.

 

안중근 의사 ‘박학어문약지이례’ 유묵. 국가유산청
안중근 의사 ‘박학어문약지이례’ 유묵. 국가유산청

배움과 수양, 인내와 화목 등의 가치를 담은 유묵은 ‘인간 안중근’의 모습을 보여준다. ‘일일부독서구중생형극’(一日不讀書口中生荊棘·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입안에 가시가 돋는다), ‘박학어문약지이례’(博學於文約之以禮·널리 배우되 예로써 자신을 단속하라)는 배움을 통한 인격 수양을 강조한 것이다. ‘백인당중유태화’(百忍堂中有泰和·백 번 참는 집안에 큰 화목이 있다)에서는 인내와 화목을, ‘세한연후지송백지부조’(歲寒然後知松柏之不彫·추운 계절이 돼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시들지 않는다는 사실을 안다)에서는 어려움 앞에 꺾이지 않는 의지를 강조했다.

 

‘일통청화공(日通淸話公)’은 일본, 일본인에 대한 인식을 읽을 수 있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날마다 맑고 고상한 이야기를 나누는 분”이라는 뜻으로 뤼순 감옥 간수과장 기요타에게 써 준 유묵이다. 일본 제국주의에 맞서 가장 맹렬하게 싸웠으나 일본인을 무조건 적대하지 않았다. 그는 조선과 일본이 대화하고 이해할 가능성까지 부정하지 않았다.

 

윤봉길 의사와 교환한 김구 선생 회중시계. 국가유산청
윤봉길 의사와 교환한 김구 선생 회중시계. 국가유산청
김구 선생과 교환한 윤봉길 의사 회중시계. 국가유산청
김구 선생과 교환한 윤봉길 의사 회중시계. 국가유산청

◆“제 시계는 한 시간밖에 쓸 데가 없습니다”

 

의거 후 순국까지 5개월여 짧은 기간에 쏟아낸 수십점의 유묵은 안중근이 직접 남긴 마지막 흔적이다. 국권 회복의 결의 하나 만으로 목숨을 거는 것까지 마다하지 않은 치열한 삶의 증거다. 윤봉길 의사도 그런 것을 남겼다. 일본군 최고 지휘관들이 모인 중국 상하이 홍커우 공원에 폭탄을 던진 의거 직전 김구 선생과 교환한 회중시계다.

 

‘백범일지’에 따르면 1932년 4월29일 아침, 김구와 윤봉길은 마지막 식사를 함께 했다. 현장으로 떠나기 직전 윤봉길은 김구에게 회중시계를 바꾸자고 했다. 윤봉길의 것은 6원짜리, 김구의 것은 2원짜리였다.

 

“제 시계는 앞으로 1시간밖에 쓸 데가 없습니다.”(윤봉길) “후일 지하에서 만납시다.”(김구)

 

두 사람은 시계를 바꾼 뒤 작별했고, 그게 마지막 만남이었다. 윤봉길은 의거 후 체포되어 그해 12월 일본 가나자와에서 순국했다.

 

김구가 윤봉길에게 건넨 회중시계는 보물로, 윤봉길이 김구에게 건넨 시계는 등록문화유산에 올라 있다.


오피니언

포토

'국무총리 표창' 케데헌 이재(EJAE)
  • '국무총리 표창' 케데헌 이재(EJAE)
  • 키키 하음 '완벽한 미모'
  • 서현진 '반가운 손인사'
  • 장원영 '사랑스럽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