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입시 막힌 10대, 힙합에서 찾은 돌파구
그림 그려 번 돈으로 앨범 제작…두 창작 사이의 줄타기
“한국 힙합, 무분별하게 개발된 관광지 같아”
중학교 때부터 그림 그리는 일을 평생의 업으로 삼겠다고 결심했다. 그러나 고등학생이 되자 현실의 벽에 부딪혔다. 미술 입시학원에 다닐 형편이 되지 않았다. 꿈을 접어야 한다고 생각하던 그때 힙합이 돌파구가 됐다. 아무것도 없는 밑바닥에서 시작해 성공했다는 래퍼들의 노랫말을 들으며 ‘나도 멋있는 사람이 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결국 혼자 미대 입시를 준비해 대학에 합격했고, 지금은 그림을 그려 번 돈을 음악에 쏟고 있다.
혼성 힙합 듀오 ‘99 네스티 키즈(99’ Nasty Kidz)’의 멤버이자 솔로 래퍼인 히피쿤다(본명 김지호·27)의 이야기다. 지난해 8월 첫 정규앨범 ‘툰드라(TUNDRA)’를 발표한 그는 자신의 경험과 세상을 향한 문제의식을 거침없이 가사에 담는다. 지난 8월4일 작업실에서 만난 히피쿤다는 “음악을 관둔다는 말은 존재하지 않는다”며 “힙합을 하나의 라이프스타일로 받아들이고 쭉 가져가고 싶다”고 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미술 입시 막힌 10대, 힙합으로 다시 찾은 꿈
―‘히피쿤다’라는 예명에는 어떤 의미가 담겼나.
“처음에는 히피한 영혼을 갖고 싶다고 생각했다. ‘쿤다’는 산스크리트어 ‘쿤달리니’에서 가져왔다. 쉽게 설명하면 몸속에 있는 코어 같은 개념이다. 그 코어가 아주 히피하고 자유분방했으면 좋겠다는 뜻이다. 정제돼 있거나 어딘가 틀에 맞는 모양으로 살고 싶지 않았다.”
―처음 랩을 시작한 건 언제인가.
“중·고등학교 때부터 힙합을 접하면서 나도 저 문화의 일부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다만 학생으로 사는 동안에는 틀에 박히기 싫어도 그럴 수밖에 없는 환경에 있다고 느꼈다. 성인이 돼 선택권이 많아지면 밖으로 뛰쳐나가 보자고 생각했다. 본격적으로 음악을 시작한 건 스무 살 때다. 첫 녹음은 고등학생 때 해봤다. 당시 래퍼 지코가 홍보대사로 참여한 금연 캠페인이 있었는데, 금연을 주제로 랩을 만들어 제출하는 공모전이었다. 당연히 떨어졌다. 그래도 체육 선생님이 굉장히 좋아하셨다. 그때는 다른 사람에게 들려주기보다 내가 만든 창작물을 듣고 혼자 만족하는 게 더 중요했다.”
―원래는 래퍼가 아니라 미술가를 꿈꿨다고 들었다.
“중학교 때부터 평생 그림을 그리며 살겠다고 스스로 결론을 내린 상태였다. 음악은 취미였다. 그런데 미술 입시학원비가 너무 비쌌다. 부모님도 보내주고 싶지만 돈이 없다고 하셨고, 그림은 다른 직업을 가지면서도 그릴 수 있지 않으냐고 하셨다. 결국 성적에 맞춰 대학에 가야 하는 상황이 됐다. 10년 가까이 한 방향으로 가겠다고 생각했는데, 목표를 이루기 직전에 길이 꺾여버린 거다. 너무 우울했다. 고등학생인데도 ‘인생이 끝났다. 이제 뭐 먹고살아야 하나’ 싶었다.”
―그때 힙합이 어떤 역할을 했나.
“당시 ‘쇼미더머니’가 인기를 얻기 시작할 때였다. 학교가 끝나면 노래방에서 랩을 따라 불렀다. 그때 힙합 가사에는 ‘나도 어려움이 있었지만 지금은 이걸로 먹고산다’는 식의 이야기가 많았다. 밑바닥에서 시작했다는 ‘스타티드 프롬 더 바텀(Started from the Bottom)’ 같은 메시지다. 나도 그림을 그릴 수 없는 사람이 됐지만 밑바닥에서 시작해 멋있는 사람이 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림이 안 되면 힙합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학창 시절을 버텼다. 그런데 힙합을 많이 듣다 보니 자신감과 자긍심이 생겼다. 고3 때 미대 입시를 안 했어도 가고 싶으니까 수시 원서 6장 중 한 장을 미대에 썼다. 혼자 준비했는데 그 한 곳에만 붙었다. 그렇게 가고 싶었던 미대에도 진학하고 음악도 계속할 수 있었다.”
―10대 시절 가장 큰 영향을 준 래퍼는 누구인가.
“국내 언더그라운드 힙합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최삼이었다. 친구가 들려준 ‘시선’이 처음 들은 한국 언더그라운드 힙합이었다. 여자 목소리로도 이렇게 힙합을 할 수 있구나 싶어서 충격적이었다. 해외에서는 영 엠에이(Young M.A)가 인상 깊었다. 자신이 레즈비언이라는 사실을 당당히 드러내는 모습을 보고 정말 멋있다고 생각했다. 내 목소리로도 새로운 돌파구를 만들 수 있겠다고 생각하게 해준 아티스트들이다.”
―정규 1집에 ‘돌아가야만 해 창동에’라는 곡을 실었다. 창동은 어떤 곳인가.
“오랫동안 창동에 살면서 오히려 그곳을 벗어나려고 했다. 서울에서도 외곽에 있어서 어디를 가든 한 시간 넘게 걸렸다. 젊은 사람들이 모이는 문화권은 대부분 한강 근처나 더 아래쪽에 있으니 너무 멀게 느껴졌다. 그런데 밖으로 나와 지내다 보니 돌아갈 곳이 있다는 게 좋더라. 나를 가두는 작은 동네라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보니 창동에서도 문화 활동이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었다. 내가 존경하던 아티스트들이 살거나 작업했던 곳도 그 근방이었다. 마냥 나를 가두는 동네만은 아니었다. 그래서 고향을 한번 ‘샤라웃(Shout out·공개적으로 존중이나 애정을 표현하는 것)’하고 싶었다.”
◆“그림으로 번 돈 음악에 쏟아…낭만·사랑·여유 지키고 싶다”
―정규 1집 ‘툰드라’에는 사회를 향한 메시지가 강하게 드러난다.
“나는 무언가를 겪고 깨달으면 그걸 이야기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다. 모두가 당연하게 여기는 생각도 다시 생각해보면 다른 부분이 있지 않나. 주류적인 생각을 향해 ‘이런 것도 있어. 너희는 이런 걸 보지 못하지 않았어?’ 하고 던지는 걸 좋아한다. 긁어 부스럼을 만드는 걸 좋아한다고 해야 하나. 음악을 하면서 사람들을 만나다 보면 ‘왜 21세기에 이런 일을 겪어야 하지?’ 싶은 일들이 있다. 짜증 나고 바꾸고 싶은 것, 다른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은 것들이 가사로 나온다. ‘툰드라’는 가사를 굉장히 빨리 쓴 앨범이다. 그만큼 하고 싶은 말이 많았던 것 같다.”
―구체적으로 어떤 말을 하고 싶었나.
“무례한 사람도 많고 생각이 짧은 사람도 많다. 나도 생각이 짧을 때가 있지만, 자신이 그렇다는 걸 아는 것과 그것조차 모르는 건 다르다. 그런 사람들 때문에 지치고 짜증 나는 경험을 음악하는 사람들이든 아니든 다 겪을 거다. 그래서 너 같은 사람이 또 있으니 걱정하지 말고 다 같이 힘들지만 잘 헤쳐 나가 보자는 메시지를 담고 싶었다. 힙합의 문법이 내 화법과도 잘 맞는다. 나는 말이 너무 현학적이라는 지적을 듣기도 한다. 랩은 시적인 표현이 많고 듣는 사람에 따라 다르게 해석할 수 있는 글을 비트에 얹는 음악이지 않나. 다만 요즘 유행하는 방식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요즘은 어렵지 않고 메시지가 한 번에 전달되는 음악이 더 설득력 있는 것 같다.”
―‘파수꾼’은 우리가 잊고 사는 가치를 지키려는 곡이라고 했다. 어떤 가치인가.
“너무 많은 걸 잊고 산다. 너무 많은 걸 잃어버렸다. 낭만을 잃었고, 사랑도 많이 잃은 것 같고, 여유도 많이 잃었다. 그 세 가지다.”
―여성으로서의 경험도 음악에 영향을 주는 것 같다.
“래퍼와 여성은 모두 김지호라는 사람을 이루는 요소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내가 겪고 인상 깊었던 것, 고민했던 것을 가사로 쓸 뿐이다. 다만 그런 생각은 했다. 나도 사업이나 커리어에 대한 고민을 가사로 쓰고 싶은데, ‘Pluto’나 ‘너랑 하는 게 내 소원’에서 다룬 주제들이 훨씬 큰 영감을 주는 거다. 왜 나는 이런 경험에서 더 많은 영감을 받아야 할까 생각하게 됐다. 여자이면서 래퍼이기 때문에 겪는 일들이 다른 사람들과는 다르니까. 짜증이 나기도 하지만 필연적인 일이기도 하다. 오히려 지금은 그런 경험보다 음악 작업 자체의 고민이나 슬럼프가 나를 더 괴롭게 한다. 그래서 지금이 더 건강한 상태라고 생각한다.”
―현재 음악과 미술을 병행하고 있다. 두 활동은 어떤 관계인가.
“상업미술을 하고 있다. 음악과 미술은 서로 별개의 창작 영역으로 두고 싶어서 어떤 미술 작업을 하는지는 자세히 이야기하지 않는 편이다. 미술 작품을 보는 사람이 내 앨범을 보고 평가하거나, 음악을 듣는 사람이 다른 작업을 보고 나를 평가하는 게 싫다. 페르소나를 나눠놓은 셈이다. 그동안은 상업미술로 돈을 벌어서 음악에 쏟아부었다. 미술은 오래 했고 전공도 했으니 전문 지식을 활용할 수 있었지만, 음악은 그보다 투자해야 할 게 많았다. 그런데 지금은 두 분야가 얼추 비슷해졌다. 어디에 더 집중해야 성장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다. 둘 다 창작이다 보니 불안정한 것 두 개를 붙잡고 있는 기분이다. 음악 하나 하기도 벅찬데 그림까지 그리니 너무 불안하다.”
―힙합 뮤지션에게 가장 필요한 지원은 무엇이라고 보나.
“지난해 예술인 창작활동 지원금을 받아 ‘툰드라’ 제작비에 보탰다. 전체 제작비에 비하면 큰 비중은 아니었지만 지원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도움이 됐다. 돈도 돈이지만 지금은 커뮤니티가 가장 부족한 것 같다. 음악이 세분화되면서 다들 개인 플레이를 한다. 어떻게 수익을 만들고 음악을 직업으로 삼을 수 있는지 모른 채 제로베이스에서 시작한다. 맨땅에 헤딩하다가 성공한 사람만 남고, 답을 찾지 못한 사람들은 떨어져 나간다. 서로 연결돼 정보도 나누고 도움도 얻을 수 있는 광장이 활성화됐으면 한다. 지망생과 현역 뮤지션이 만나 교류하는 ‘충북 음성 품바 캠프’ 같은 행사가 좋은 예다. 다들 자기 방에 갇혀 음악만 만들다 보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모른 채 거기에 매몰되기 쉽다.”
◆“한국 힙합은 무분별하게 개발된 관광지…음악은 계속하는 것”
―1990년대 한국 언론은 힙합을 외래풍조라고 표현하며 부정적으로 바라보기도 했다. 당시 기사를 읽어보니 어떤가.
“외래 풍조에 혼을 빼앗기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말이 인상적이다. 요즘도 인터넷에서 외국 흑인들이 한국인의 드레드록이나 브레이즈 헤어스타일을 보고 왜 흑인을 따라 하느냐고 비판하는 걸 종종 본다. 그런데 옛날에는 한국에서 저런 생각을 했구나 싶다. 그때 그런 시선을 향해 선배들이 깨부숴 줬으니까 지금 힙합이 한국 대중문화의 중요한 한 축으로 자리 잡을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분들 덕을 본 셈이다.”
―1세대 래퍼들이 활동하던 때와 지금의 한국 힙합은 무엇이 가장 달라졌다고 생각하나.
“지향하는 ‘멋’이 달라진 것 같다. 멋있는 걸 한다는 점은 똑같지만, 옛날에는 ‘내가 하는 게 힙합이고 멋이니까 너희가 따라와’라는 느낌이었다면 지금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멋을 찾아 거기에 맞춰 멋있어지는 느낌이다. 멋 자체가 굉장히 세분화됐다. 모두에게 멋있는 사람이 아니라 특정한 영역에서 멋있는 사람이 되고, 그걸 높게 평가하는 팬들과 함께하는 식이다. 내 멋은 강인함인 것 같다.”
―2026년의 한국 힙합을 한마디로 정의한다면.
“무분별하게 개발된 관광지.”
―어떤 의미인가.
“우리나라 문화산업에서 그런 모습을 많이 봤다. 소수의 멋있는 사람들이 무언가를 만들어 유행시키면 많은 자본이 들어와 공장처럼 찍어내고, 돈이 될 만한 것들을 잔뜩 만든다. 그러다가 돈이 돌지 않으면 다 손을 떼고 황폐한 폐허만 남기는 거다. 상업미술을 하면서 문화계에서 그런 모습을 많이 봤다. 힙합은 그렇게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물론 자본이 들어오면서 좋은 작업물이 나오고, 그 자본이 아티스트들이 계속 영감을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긍정적인 측면도 있다. 척박하지만 좋은 환경이 만들어졌다. 이제 그걸 잘 관리하고 닦아나가는 건 아티스트들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5년, 10년 뒤에는 어떤 래퍼로 남고 싶은가.
“음악을 그만두겠다는 친구들을 보면 항상 해주는 말이 있다. 나도 다른 사람에게 듣고 영감을 받은 말인데, 음악을 관둔다는 말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거다. 길을 걸으며 음악을 듣고 흥얼거리는 사람도 음악을 하는 거라고 생각한다. 음악을 너무 거창한 미션이나 사명처럼 받아들이면 오히려 부러질 수 있다. 힙합은 정말 라이프스타일이다. 나도 하나의 생활 방식으로 받아들이고 계속 가져가고 싶다. 지금은 미술을 생업으로 삼아 번 돈으로 음악을 하지만 나중에는 반대가 될 수도 있고, 미술을 생업으로 하지 않을 수도 있다. 앞에 어떤 수식어가 붙든 음악을 계속하는 사람이고 싶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낭만을 잃지 말고, 사랑을 잃지 말고, 여유를 잃지 않은 상태로 다들 음악을 했으면 좋겠다. 힙합 사랑해!”
Copyright ⓒ 세계일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설왕설래] 여성 징병제](http://img.segye.com/content/image/2026/10/29/128/20261029522270.jpg
)
![[기자가만난세상] ‘북향민’ 명칭 변경보다 중요한 것은…](http://img.segye.com/content/image/2026/04/02/128/20260402520485.jpg
)
![[세계와우리] 공부 안 하는 사회, 그 외교능력](http://img.segye.com/content/image/2026/02/19/128/20260219518276.jpg
)
![[강영숙의이매진] 읽지 못한 책](http://img.segye.com/content/image/2026/10/15/128/20261015524589.jpg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