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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군도 부상하면 한 인간, 봉사는 사람을 차별하지 않는 것”… 적십자 봉사 60년 맞은 박희 전 대림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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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해 선임기자 pth1228@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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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혈부터 탈북민 정착 지원까지

2026년 10월 27일(오늘)은 고종 황제가 1905년 대한제국 적십자사를 설립한 지 121주년이 되는 날이다. 전쟁과 재난, 질병으로 고통받는 사람을 돕고 생명의 존엄을 지키려는 적십자의 정신은 120여 년이 흐른 오늘에도 유효하다. 이 정신을 평생 실천해온 이가 있다. 올해로 적십자 봉사 활동 60주년을 맞은 박희(74) 전 대림대 교수다. 문학박사이자 수필가인 그는 학창 시절 시작한 봉사를 헌혈과 청소년 교육, 해외 구호, 북한이탈주민 정착 지원 등으로 넓혀왔다. 교단과 연구실에서 지식을 나누는 한편 도움이 필요한 이들의 곁을 지켜온 박 교수를 만나 그의 60년 적십자 봉사 인생과 나눔의 의미를 들었다.

박희 전 대림대 교수가 적십자 봉사 60주년을 맞아 나눔과 봉사의 의미를 이야기하고 있다. 그는 “봉사의 출발점은 눈앞의 사람을 한 인간으로 바라보는 데 있다”고 강조했다. 사진=박태해 선임기자
박희 전 대림대 교수가 적십자 봉사 60주년을 맞아 나눔과 봉사의 의미를 이야기하고 있다. 그는 “봉사의 출발점은 눈앞의 사람을 한 인간으로 바라보는 데 있다”고 강조했다. 사진=박태해 선임기자

“적십자의 정신은 전쟁터에서 부상병을 구호할 때 적군과 아군을 구별하지 않는 데 있다고 생각합니다. 싸울 때는 적과 아군으로 나뉘지만, 전투 능력을 잃은 부상병은 그저 한 인간입니다. 누구든 구호하고 치료한다는 인류애는 참으로 숭고하지요.”

 

박 교수가 적십자 활동에서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가치다. 전쟁터에서도 부상자를 적과 아군으로 나누지 않듯, 도움을 청하는 사람을 국적이나 종교, 인종으로 구분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봉사의 출발점은 거창한 구호가 아니라 눈앞의 사람을 한 인간으로 바라보는 데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그가 처음 나눔의 의미를 배운 것은 학창 시절이었다. 가난과 어려움이 일상이던 시절, 고아원과 양로원, 군 병원을 찾아 위문했다. 여름방학에는 농촌에서 농로와 배수로를 정비하고 농가 방역을 도왔다. 상업고교(덕수상고)에서 익힌 지식을 살려 초등학생들에게 주산을 가르치기도 했다.

 

“그때는 지금보다 생활이 어려운 사람이 많았습니다. 내가 가진 것을 조금 나누는 것만으로도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배웠습니다. 큰일을 해야 봉사가 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1970년에는 서울 서대문적십자병원 혈액사업소에서 헌혈을 시작했다. 나이가 들어 더는 헌혈할 수 없게 될 때까지 150여 차례 참여했다. 생명을 살리는 일을 말로만 강조하지 않고 자신의 피를 나누며 실천한 것이다.

 

남북 이산가족 상봉을 위한 적십자의 노력에 힘을 보탠 경험도 잊지 못한다. 1971년 최두선 대한적십자사 총재가 남북 이산가족 상봉을 제안하고 이듬해 본회담이 열렸을 때, 그는 서울 남산의 적십자사 홍보부를 찾아 관련 업무를 도왔다. 회담장으로 향하는 대표단을 바라보며 이산가족 상봉이 꼭 성사되기를 간절히 기원했다.

대학 졸업 후 서울 중랑구 혜원여고에서 한문 교사로 근무하면서 봉사는 또 다른 모습으로 이어졌다. 1980년부터 26년간 청소년적십자(RCY) 지도교사를 맡아 학생들과 다양한 활동을 펼쳤다. 1982년에는 버스 안내양들이 주축이 된 직장 RCY 17개 단체를 초청해 친선 탁구대회를 열었다. 추석에는 경성여객 안내양들을 초청해 함께 송편을 빚으며 정을 나눴다. 이듬해에는 강원도 정선군 고한 지역 여중·고생들을 위해 책을 모아 2000여 권을 기증했다.

 

“청소년들에게 봉사는 어려운 사람을 돕는 일이자 서로 이해하고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과정입니다. 책이 부족한 학생들에게 책을 전한 것도 배움의 기회를 나누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가 직접 구상한 ‘목장 캠프’는 청소년과 직장 RCY 구성원들이 함께 어울리고 버스 안내양들을 위로하기 위한 프로그램이었다. 12년 동안 이어진 이 활동은 2006년 전국 초·중·고 RCY 지도교사 연수에서 성공 사례로 소개됐다. 일회성 위문에 그치지 않고 지속적인 교류와 관계 형성으로 봉사의 의미를 확장한 것이다.

 

1998년 IMF 외환위기 때는 나눔 문화를 확산하기 위한 캠페인에도 나섰다. 암사재활원을 돕기 위해 ‘가족 생일은 암사재활원 돕기로’라는 제안을 내놓았다. 설과 추석, 조상 제례일과 결혼기념일에는 수락산 시립 노인요양원 어르신들과 함께하자는 캠페인도 벌였다. 가족끼리 기념하는 날을 이웃과 나누는 날로 바꾸자는 취지였다.

 

이 같은 활동으로 1998년 ‘자랑스러운 서울시민상’을 받았고, 2000년에는 청소년 활동에 관한 새로운 제안 35가지를 내놓아 장충식 적십자 총재상을 수상했다.

 

그가 오랫동안 마음을 쏟아온 대상은 북한이탈주민이다. 2010년부터 10년간 서울 동부 하나센터에서 탈북민 정착 교육을 맡았고, 17년째 재경 탈북민 추석 합동차례를 집전하고 있다.  2022년부터는 탈북민 가정을 직접 방문해 생활 상담을 하며 어려움을 듣고 해결 방안을 찾고 있다.

 

“낯선 곳에서 새 삶을 시작하는 사람에게는 경제적 지원도 필요하지만, 자기 이야기를 들어주고 함께 고민해주는 사람도 필요합니다. 어려움을 직접 듣고 무엇이 필요한지 살펴야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그는 봉사자가 갖춰야 할 자세로 “냉철한 두뇌, 뜨거운 가슴, 부드러운 손길”을 꼽았다. 따뜻한 마음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뜻이다. 상대의 처지를 정확히 판단하고, 진심으로 다가가며, 실제로 도움이 되는 행동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60년 동안 봉사를 이어온 원동력은 무엇일까. 박 교수는 적십자를 자신의 삶에서 떼어놓을 수 없는 존재라고 표현했다. “적십자는 나의 반려자가 됐습니다. 봉사활동은 가장 신명 나는 일이자 생활의 활력소입니다.”

 

그에게 봉사는 과거의 이력이나 훈장으로 남겨둘 일이 아니다. 살아 있는 동안 계속 이어가 70주년, 80주년에도 변함없는 적십자인으로 남는 것이 소망이다. 적군과 아군을 가리지 않고 부상자를 돌보는 적십자의 정신처럼, 눈앞의 사람을 차별 없이 대하는 것. 60년 봉사 인생을 관통하는 그의 신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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