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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기의시대정신] 꿈과 농담, 그 어딘가에 있는 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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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능 향한 담대한 도전으로
머스크, 하늘을 나는 차 만들어
계산에 갇힌 우리 기업의 현실
거침없는 도약만이 미래 해답

1903년 10월9일, 뉴욕타임스는 ‘날지 못하는 비행 기계’라는 제목의 사설을 실었다. 이틀 전 한 과학자가 개발한 비행 기체가 발사 직후 포토맥강에 추락한 사건을 조롱하는 글이었다. 사설은 새가 날개를 갖기까지 걸린 진화의 시간을 끌어와, 인간이 비행 기계를 만드는 데도 100만년에서 1000만년은 걸릴 것이라고 썼다. 차라리 그 노력을 더 쓸모 있는 일에 쓰라고 충고했다. 그러나 단 69일 뒤, 라이트 형제가 하늘을 날았다.

라이트 형제는 1905년 말부터 공개 비행을 멈췄다. 설계 도용을 우려해서였다. 그사이 이들이 정말 하늘을 날았는지 의심하는 목소리가 커졌다. 1906년 2월, 뉴욕 헤럴드 파리판은 ‘비행사인가, 거짓말쟁이인가(Flyers or Liars?)’라는 제목의 기사를 실었다. 의심이 환호로 바뀐 것은 1908년 8월, 윌버 라이트가 프랑스 군중 앞에서 날아오른 뒤였다.

김동기 강원대 초빙교수·전 KBS PD
김동기 강원대 초빙교수·전 KBS PD

플라이어인가, 라이어인가. 이 오래된 질문이 오늘날 스페이스X·테슬라의 수장인 일론 머스크에게도 겹쳐 보인다. 그는 미래를 앞당기는 혁신가인가, 아니면 미래를 앞당겨 파는 쇼맨인가.

지난 10월15일 미국 텍사스주 스페이스X 시험장. 머스크가 테슬라의 차세대 스포츠카 로드스터 시연에 나섰다. 거대한 곡선형 트랙을 타고 올라간 로드스터는 거꾸로 뒤집힌 채 달리는 기이한 광경을 연출했다. 이어 트랙 끝을 박차고 날아 회전하더니, 콜드 가스를 뿜으며 균형을 잡았다. 마치 아이언맨처럼 사뿐히 지면에 착지하자 현장에서는 “오 마이 갓!” 하는 탄성이 터져 나왔다.

늘어선 차량 다섯 대를 훌쩍 뛰어넘는 장면도 이어졌다. 머스크는 “이 시연이 인공지능(AI)이 아니라는 걸 증명하기 위해 관객이 필요했다”고 말했다. 영상 공개 후 온라인 반응은 폭발적이다. “도대체 내가 뭘 본 거지”, “머스크의 비전이 하나씩 실현되는 걸 보려면 오래 살아야겠다”는 감탄이 쏟아졌다.

비행기도, 헬리콥터도, 우주로 치솟는 로켓 발사마저 일상이 된 시대. 우리는 왜 단 몇 초간의 도약에 이토록 흥분한 걸까. 한 네티즌의 댓글이 그 답을 보여준다. “내가 유치원 때 그렸던 하늘을 나는 자동차, 드디어!” 미래를 상상할 때면 제일 먼저 그려졌지만, 결코 현실에서는 볼 수 없었던 풍경. 영화 ‘백 투 더 퓨처’와 ‘블레이드 러너’를 보며 상상만 했던 미래가 비로소 눈앞에 모습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실리콘밸리의 한 벤처캐피털이 낸 선언문에는 이런 문구가 있다. “우리는 하늘을 나는 자동차를 원했지만, 정작 얻은 것은 140자(트위터)뿐이었다.” 기술업계가 눈앞의 실용과 계산에 매몰되어 꿈과 야망, 도전정신을 잃어버렸다는 질타다. 우리가 머스크의 기이한 시연에 열광한 까닭도 여기에 있다. 효율에 밀려 잊고 있던 인류 본연의 꿈이 눈앞에 생생하게 되살아났기 때문이다.

날개 달린 말 페가수스, 밀랍 날개를 달고 태양으로 향했던 이카루스, 알라딘의 마법 양탄자와 선녀의 날개옷, 걸리버 여행기 속 하늘에 떠 있는 성 라퓨타에 이르기까지. 인류에게 비행은 대지를 딛고 선 한계를 뛰어넘으려는 가장 오래되고도 뜨거운 상상이었다. 로드스터 시연 이후 쏟아진 밈 가운데는 꽉 막힌 터널에서 날아오른 자동차가 벽면을 타고 질주하는 영상이 있다. 중력을 거슬러 날아오르는 자동차는 팍팍한 일상과 정해진 궤도에 갇힌 현대인들이 꿈꾸는 자유와 탈출의 벅찬 은유다.

테슬라가 한 해 740% 주가 상승을 기록하며 토요타를 제쳤던 2020년. 증권가에는 PDR(Price to Dream Ratio)이라는 용어가 등장했다. ‘꿈 대비 주가 비율’이라는 뜻이다. PER(Price to Earnings Ratio, 주가수익비율)로는 설명할 수 없는 높은 주가이지만, 꿈에 비하면 결코 높지 않다며 삭막한 증권가를 한때 낭만으로 채웠던 단어다.

지난 6월 스페이스X의 상장은 그 꿈의 가치가 폭발한 사건이었다. 상장 첫날 시총 2조달러를 넘어서며 단숨에 세계 6위 기업에 올랐다. 지난 19일, 머스크는 또 하나의 선언을 내놓았다. “내년 미국의 모든 어린이에게 스페이스X 주식 1주씩을 주겠다”는 것이다. 미국의 어린이가 7200만명이라니, 주식 가치는 약 105억달러(14조원)에 이른다. 뉴욕타임스가 초기 스페이스X를 두고 쓴 표현처럼, 머스크와 그의 제국은 여전히 ‘꿈과 농담 사이, 그 어딘가(somewhere between a dream and a joke)’에 서 있다.

숫자를 떠나 마음을 끄는 것은 이 엉뚱한 선언 뒤에 그려지는 어떤 그림이다. 아이들 한명 한명의 손에 쥐어질 것은 20만원 안팎의 주식 한 주가 아니라 우주를 품는 꿈 한 조각일 테니. 사상 최대의 영업이익을 올리고도 어른들의 셈법으로 시끄러운 우리 기업들의 풍경과 겹쳐 보면 생각은 더욱 복잡해진다. 자꾸만 꿈이, 다음 세대가, 미래가 뒤로 밀려나는 우리의 오늘이 씁쓸하다.

120년 전 하늘을 날겠다는 꿈은 농담처럼 들렸다. 오늘날 우리는 그 농담이 현실이 된 세계에 살고 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비웃거나 열광하는 또 다른 꿈들은 어떨까. 혁신가와 쇼맨의 경계는 그 꿈이 얼마나 높이 날아오르느냐가 아니라, 마침내 어디에 착륙하느냐에 달려 있다. 둘을 가르는 답은 아직 하늘 어딘가에 떠 있다. 그럼에도 그 거침없는 도약에 가슴이 뛰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김동기 강원대 초빙교수·전 KBS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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