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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난영이 세계에 놓은 여성평화의 다리 [종교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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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수 종교전문기자 hulk19838@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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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경남도 원산은 문난영 전 세계평화여성연합 회장이 아직 돌아가지 못한 고향이다. 어린 시절 그의 기억 속에는 명사십리의 눈부신 백사장과 푸른 바다, 해변의 소나무 숲이 남아 있다. 그 숲에는 서양 선교사들의 거주지도 있었다. 갈마인민학교에 다니던 소녀의 일상은 전쟁으로 멈췄다. 1950년 12월 가족과 함께 피란길에 올랐지만, 도중에 아버지가 인민군에게 끌려간 뒤 소식을 듣지 못했다. 남쪽에 내려와서는 어린 남동생마저 갑작스러운 열병으로 잃었다.

 

기독교 집안에서 자란 문 회장은 해방 후 북한에서 기독교인과 지식인, 지주가 경계와 박해의 대상이 되던 시절을 기억한다. 아버지는 수산전문학교 교수였다. 예고 없이 들이닥친 가택 수색의 기억도 생생하다. 그에게 남북 화해는 아버지와의 이별, 고향에 대한 그리움에서 비롯된 평생의 과제다.

 

피란 끝에 정착한 강원도 원주에서 어머니 최정순은 교편을 잡았다. 1955년 어머니가 통일교회에 입교하면서 여중생 문난영도 신앙의 길에 들어섰다. 어머니는 신앙 때문에 학교를 떠났고, 가족은 다시 가난을 겪었다. 문 회장은 숙명여대 영문학과에 진학했다. 그때 익힌 영어는 훗날 세계 곳곳을 다니며 여성 지도자들과 만나게 해준 밑바탕이 됐다.

 

1994년 세계평화여성연합 사무총장을 맡은 그는 한일 여성 자매결연, 중국 여성 지도자들과의 교류, 중동여성평화회의 등에 힘을 쏟았다. 여성연합은 1997년 유엔 경제사회이사회 포괄적 협의지위를 얻었다. NGO에 부여하는 협의지위 중 최고 등급이다. 2000년 세계회장에 오른 문 회장은 여러 대륙의 회원을 찾아다녔다. 한국에서 출발한 여성들의 평화운동이 국제무대에서 신뢰를 쌓는 일은 국위를 선양하는 길이기도 했다.

 

그가 만난 세계는 회의장 밖에서 더 선명했다. 어느 아프리카 오지에서는 문짝이 떨어져 나간 버스를 타고 온종일 밀림을 지나 한 마을에 도착했다. 허름한 집에 모인 주민들이 문선명·한학자 총재가 즐겨 부르던 노래를 한국어로 부르며 맞았다. 문 회장은 그 자리에서 눈물을 글썽였다. 알프스의 작은 나라 리히텐슈타인과 안도라에서도 한국을 그리워하며 신앙을 이어가는 회원도 만났다. 통일교의 세계적 활동에는 이렇게 이름이 널리 알려지지 않은 지역의 사람들과 그들이 쌓아온 사연도 담겨 있다.

 

문 회장이 바라본 이 운동의 과제는 빈부격차와 인종차별, 종교 간 분쟁, 계급 간 억압을 극복하는 것이다. 그는 서로의 삶을 돌보는 공생·공영·공의의 가치를 강조했다. 아프리카의 작은 집에서 들은 한국어 노래가 감동적이었던 것도 멀리 떨어진 사람들이 서로의 마음을 읽고 함께 살아갈 길을 찾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의 활동은 북한으로도 향했다. 2001년 북한 여성단체의 초청으로 첫 방문길에 올랐고, 이후 여성연합의 대북 교류와 지원을 이어갔다. 2007년에는 금강산에서 세계 각국 여성 대표와 북한의 여성 대표들이 함께하는 대회를 열었다. 북한을 열아홉 차례 방문했지만 정작 원산에는 한 번도 가지 못했다. 금강산에서 가까웠으나 개인적인 고향 방문은 허락되지 않았다.

 

남북 화해 활동은 청와대와의 인연으로 이어졌다. 문 회장은 진보·보수 정부를 가리지 않고 여성단체장 자격으로 초청받았다. 특히 노무현 전 대통령 내외의 따뜻한 관심을 잊지 못한다. 2007년 남북정상회담 때 노 대통령 내외는 남포의 평화자동차 공장을 방문했다. 문 회장에 따르면 노 전 대통령은 훗날 방문 경험을 길게 이야기하며 남북 협력의 노력에 고마움을 전했다.

 

2009년 3월 25일, 김해에서 강연을 마친 문 회장은 봉하마을에 있던 노 전 대통령에게 안부 전화를 걸었다. 잠깐 들렀다 가라는 말과 달리 대화는 40분 넘게 이어졌다. 문 회장의 회고에 따르면 노 전 대통령은 학창 시절 부산에서 통일교회가 심한 핍박을 받던 모습을 알았는데, 어느새 세계적인 교회로 성장하고 여성연합도 세계 곳곳에서 평화운동을 펼치는 모습이 대단하다고 말했다. 돌아갈 때 권양숙 여사가 계단에 선 두 사람의 사진을 찍어주었다. 그해 5월 노 전 대통령이 서거한 뒤 사진은 더욱 가슴 아픈 기억으로 남았다.

 

한 총재가 정치권 관련 사건으로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고 항소한 지금, 문 회장은 그를 향한 시선이 한쪽으로만 굳어지는 것을 안타까워한다. 그가 가까이에서 지켜본 한 총재는 진보와 보수를 가르기보다 모든 사람을 하나님의 자녀로 품고자 한 종교지도자였다. 한 총재는 여성연합의 세계적 활동 기반을 닦고 회원들에게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고 문 회장은 전했다. 첫 북한 방문을 앞두고 두려운 마음에 ‘부적을 달라’고 청하자 자신의 반지를 내준 일도 잊지 못한다. 문 회장은 한 총재의 재판과 건강 문제에 마음 아파하면서도, 이 시련을 지나 여성연합이 더 깊은 신뢰를 얻고 더 많은 이웃을 품기를 바란다.

 

한 사람의 신앙을 평가하는 기준은 저마다 다를 수 있다. 그러나 원산을 떠난 소녀가 세계의 여성들을 만나고, 북녘 사람들과 화해의 자리를 만들며 평생 걸어온 평화의 길에는 귀를 기울여 볼 만하다. 문난영의 이야기는 통일교를 둘러싼 논란 속에서도 그 구성원들이 현장에서 무엇을 해왔는지 묻게 한다. 그 질문에서 서로를 이해할 길도 시작될 수 있다.

정성수 종교전문기자
정성수 종교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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