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dak 필름 한 롤 서른여섯 번의 셔터를 누르며 사진기자 생활을 시작했다. 카메라에 표시된 필름 카운터가 25 정도가 되면 고민이 시작됐다. 필름을 새걸로 갈아야 하나 남은 거로 찍어도 될까? 제한된 서른여섯 번의 셔터를 누르는 순간의 신중함과 긴장감, 설렘은 지금의 디지털카메라 시대에는 느낄 수가 없는 감정이다.
사진기자는 본인이 취재했던 사진을 나름의 방식으로 보관한다. 개인의 차이는 있지만 나는 사진의 중요도를 떠나 보관을 많이 하는 사진기자이다. 역사의 중요했던 순간도 있었고, 상황이 기억도 없는 시답지 않은 사진도 있다. 아이들이 커가는 모습을 담은 기념사진도 있고 취재와 출장 중에 보이는 나의 모습도 있다.
아주 먼 옛날의 모습은 아니지만 타임머신을 타고 열어본 나의 외장하드를 독자들과 같이 꺼내보고 추억하는 시간을 가져보려 한다.
1999년 8월 25일 경기 연천군 군남면의 한 야산. 주황색 상의에 군복 바지를 입은 육군 무적태풍부대 장병들이 풀숲에 모여들었다. 장병들 사이에는 커다란 사슴 한 마리가 쓰러져 있다. 기록적인 집중호우로 농장을 빠져나온 사슴을 붙잡아 주인에게 돌려보내기 위한 생포 작전 현장이다.
그해 여름 경기 북부는 잇따른 집중호우로 큰 피해를 입었다. 특히 임진강과 한탄강을 끼고 있는 연천 지역에서는 주택과 농경지가 물에 잠기고 도로가 끊기는 등 피해가 이어졌다. 축사와 농장도 예외가 아니었다. 물이 들이닥치면서 가축들이 우리를 빠져나가는 일도 발생했다.
수해 복구에 투입된 군 장병들에게는 무너진 제방을 쌓고 흙더미를 걷어내는 일만이 임무가 아니었다. 사슴 농장을 탈출해 인근 야산을 돌아다니는 사슴을 찾아 생포하는 일에도 나섰다.
사진 속 장병들은 야산에서 붙잡은 사슴을 조심스럽게 다루고 있다. 한 장병은 바닥에 누운 사슴의 몸을 눌러 움직임을 제어하고, 다른 장병은 다리를 붙잡는다. 이어 여러 명이 달라붙어 사슴을 천으로 만든 들것에 조심스럽게 옮긴다. 건장한 병사 여러 명이 힘을 합쳐야 할 만큼 몸집이 큰 사슴이다. 혹시라도 사슴이 갑자기 몸부림치면 사람과 동물 모두 다칠 수 있어 장병들의 표정에는 긴장감이 묻어난다.
그 당시 수해 현장에서 군인들의 역할은 컸다. 장병들은 침수된 마을의 토사를 걷어내고 무너진 시설물을 정리하는 한편, 농경지와 축사 복구 등 주민들의 일상 회복을 도왔다. 사슴 생포 역시 수해로 삶의 터전을 잃은 농민의 피해를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한 복구 작업의 하나였다.
30년 가까운 시간이 흐른 뒤 외장하드에서 다시 꺼낸 두 장의 사진에는 거대한 재난보다 그 뒤를 수습하던 사람들의 모습이 선명하게 남아 있다. 흙과 풀로 뒤덮인 야산에서 사슴 한 마리를 들것에 옮기는 장병들. 1999년 여름 경기 북부를 휩쓴 수해의 한복판에서 벌어진, 작지만 생생한 복구 현장의 기록이다. 군 장병들의 사슴 구조 작전은 그렇게 산속에서도 계속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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