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부산 거점 구상 속 조선·LNG 협력 주목”
“러, 핵추진 쇄빙선 건조·운영하는 유일한 국가
북동·북서항로 대체 관계 아냐… 목적지 달라”
“제재에도 실현 가능한 협력 사업부터 집중해야
직항편 재개 땐 양국 국민 교류 훨씬 쉬워질 것”
“러시아가 북극항로를 개발하는 주된 목적은 북극 지역의 경제·사회 발전입니다. 그 과정에서 다른 나라와 협력할 가능성도 생깁니다.”
게오르기 지노비예프 주한러시아대사는 8일 세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러시아가 추진하는 북극항로 개발의 목적과 국제 협력 가능성을 이같이 설명했다.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새로운 물류 통로로 북극항로가 주목받는 가운데, 러시아는 자국 북극 지역 개발을 위한 핵심 인프라로서 항로를 확충하고 있다. 한국 정부가 부산을 북극항로의 아시아 거점으로 육성하려는 구상을 추진하는 상황에서, 지노비예프 대사는 조선과 액화천연가스(LNG) 등을 한·러 협력의 잠재력이 큰 분야로 꼽았다.
지노비예프 대사는 러시아 영토의 약 25%가 북극 지역에 속하고, 이곳에서 러시아 국내총생산(GDP)의 약 10%가 생산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러시아는 2020년 2035년까지의 북극 지역 개발 기본정책과 전략을 채택하고 주민 생활 여건 개선과 교통 인프라 확충, 천연자원 개발, 환경 보호 등을 추진하고 있다. 지노비예프 대사는 “2014년부터 2024년까지 국내와 국제 운송을 포함한 북극항로 물동량이 약 400만t에서 4000만t으로 10배 증가했다”며 “앞으로도 더욱 늘어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 정부의 부산 북극항로 아시아 거점 육성 구상에 대해서는 직접적인 평가를 삼가면서도 “대한민국 정부가 국제 교통·물류 회랑 개발에 큰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는 점을 주의 깊게 보고 있다”고 했다. 그는 “러시아의 북극 개발은 국내 경제·사회 발전을 위한 것이지만 그 과정에서 다른 나라와의 협력 가능성도 생긴다”며 한국의 참여 가능성을 열어뒀다.
특히 조선과 LNG 등은 과거부터 한·러 협력 가능성이 컸던 분야로 꼽았다. 다만 대러 제재가 지속되면서 과거 협력 기반이 크게 약화됐다는 점도 지적했다. 지노비예프 대사는 “대한민국이 서방의 대러 제재 체제에 동참한 이후 양국 조선 분야 협력이 여러 문제에 직면했고 사실상 중단됐다”면서도 “러시아와 서유럽 국가들의 관계와 비교하면 한·러 관계는 훨씬 더 낙관적이다. 잠재력도 있고 할 수 있는 일도 많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러시아가 북극항로, 특히 북동항로 개발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이유는.
“러시아 영토의 약 25%가 북극 지역에 위치해 있다. 북극항로 개발은 어제오늘 시작된 일이 아니다. 이미 1930년대에 여름철 한 계절 동안 북극항로를 항해하는 데 성공했다. 러시아는 오랫동안 이 지역 개발에 관심을 기울여 왔으며, 최근 몇 년간 이를 더욱 체계적이고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최근 북극항로 개발이 더욱 속도를 내는 배경은.
“첫째, 지난 약 20년간 경제 발전을 통해 개발에 필요한 경제적·재정적 자원을 축적했다. 둘째, 과거에는 없었던 첨단기술이 등장하면서 북극 지역을 보다 경제적이고 효율적으로 개발할 수 있게 됐다. 셋째는 기후변화다. 북극의 기후는 여전히 매우 혹독하지만 개발 여건은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
―북극 개발의 구체적인 목표는.
“러시아는 2020년 2035년까지의 북극 지역 개발 기본정책과 전략을 채택했다. 가장 중요한 과제는 현지 주민들의 생활 여건을 개선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교통을 비롯한 각종 인프라를 확충하고, 북극에 풍부한 천연자원을 개발하는 데 힘쓰고 있다. 환경 보호에도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국제협력도 염두에 두고 있나.
“그렇다. 이러한 과제를 실현하는 과정에서 국제협력을 강화할 용의가 있다.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교장관도 최근 북극 지역의 도전과 협력 가능성에 관한 글에서 중국과 인도, 브릭스, 독립국가연합(CIS) 국가들과의 협력을 언급했다. 한국과 싱가포르도 언급했는데, 서방의 제재에도 불구하고 러시아와의 북극 지역 협력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 정부는 부산을 북극항로의 아시아 거점으로 육성하려 한다. 어떻게 평가하나.
“주한러시아대사로서 대한민국 정부의 정책을 평가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다만 한국 정부가 국제 교통·물류 회랑 개발에 큰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는 점은 주의 깊게 보고 있다. 러시아가 북극을 개발하는 주된 목적은 국내 경제·사회 발전이지만, 그 과정에서 다른 나라들과 협력할 가능성도 생긴다. 다른 나라들도 그 혜택을 누릴 기회가 생기는 것이다.”
―한국은 어떤 분야에서 협력할 수 있다고 보나.
“과거 러시아와 한국은 조선 산업과 LNG 에너지 분야에서 적극적으로 협력해 왔다. 북극 지역의 에너지 자원을 운송할 선박을 건조하는 과정에서도 러시아는 한국에 많은 기대를 걸었다. 이러한 분야의 협력 전망은 매우 밝았다.”
―쇄빙선 분야에서 러시아의 강점은 무엇인가.
“러시아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핵추진 쇄빙선을 건조하는 나라다. 북극에서 운항하는 핵추진 쇄빙선은 모두 러시아가 건조한 것이다. 이는 북극항로 개발에서 러시아가 가진 중요한 역량 가운데 하나다.”
―한국에서는 북동항로 이용이 어려워질 경우 북서항로를 대안으로 검토할 수 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북동항로와 북서항로는 모두 북극해를 거쳐 대서양과 태평양을 연결하지만, 지나는 지역과 주요 운송 수요가 다르다. 북동항로는 러시아 북극 연안을 따라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데 주로 활용되고, 북서항로는 캐나다 북극제도를 통과해 북아메리카와 아시아를 연결하는 데 활용될 수 있다.”
―북서항로 자체의 가능성은 어떻게 평가하나.
“한국이 자국의 경제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항로를 개발하려 한다면 성공하기를 바란다. 다만 우리가 알기로는 북서항로의 항해 여건이 북동항로보다 다소 까다롭다. 인프라가 부족하고 수심이 충분하지 않은 곳도 있으며, 얼음도 더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
―북극항로가 수에즈운하를 대체할 수 있을까.
“객관적으로 보면 북극항로는 수에즈운하에 비해 여러 장점이 있다. 하지만 러시아가 북극항로를 개발하는 목적은 수에즈운하의 물동량을 빼앗거나 다른 나라들이 수에즈운하를 이용하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 아니다. 주된 목적은 러시아 북극 지역의 경제·사회 발전이다.”
―최근 북극항로의 물동량은 얼마나 늘었나.
“2014년부터 2024년까지 국내와 국제 운송을 모두 포함한 북극항로 물동량은 약 400만t에서 4000만t으로 10배 증가했다. 앞으로도 더욱 늘어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북극항로뿐 아니라 러시아 내륙에서 북쪽으로 화물을 운송하는 ‘북극 종단 교통·물류 회랑’ 프로젝트도 추진하고 있다. 특히 강을 이용한 내륙 수로까지 활용하는 구상이다.”
―현실적으로 한·러 협력의 가장 큰 제약은 무엇인가.
“대한민국이 서방의 대러 제재 체제에 동참한 이후 양국의 조선 분야 협력은 여러 문제에 직면했고 사실상 중단됐다. 거제도 조선소에도 이미 완성됐지만 인도되지 못한 북극용 가스 운반선들이 있다. 러시아는 이러한 상황에서 자체적인 선박 건조 역량을 키우고 있다.”
―제재가 계속되면 북극항로 협력도 어렵다고 봐야 하나.
“제재를 한파나 코로나19 같은 자연현상처럼 고정된 것으로 봐서는 안 된다. 러시아의 입장에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를 거치지 않은 일방적 제재는 국제법에 부합하지 않는다. 일방적 제재가 지속되는 상황은 정상적인 상태가 아니라 비정상적인 상태다. 이를 바로잡아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그럼에도 당장 가능한 협력은 있나.
“지금은 실현하기 어려운 대규모 프로젝트보다 실제로 추진할 수 있는 경제 분야나 문화·교육 등 인문 분야의 협력 사업에 집중해야 한다. 예를 들어 양국 간 직항편이 재개되면 좋을 것이다. 그러면 양국 국민이 서로 방문하기가 훨씬 쉬워질 것이다.”
―향후 한·러 관계를 어떻게 전망하나.
“오늘 제재 문제를 많이 이야기했지만, 러시아와 서유럽 국가들의 관계에 비하면 한·러 관계는 훨씬 더 낙관적이다. 협력 잠재력도 크고, 우리가 함께 할 수 있는 일도 많다.”
―남북 대화 재개 과정에서 러시아가 중재 역할을 할 수 있나.
“남북이 서로 대화할 의지가 있다면 중재자는 필요하지 않다. 반대로 양측 모두 대화를 원하지 않는다면 중재자가 의미가 크지 않다고 생각한다. 과거에도 남북이 대화를 원했을 때는 중재자 없이 직접 접촉했다.”
게오르기 지노비예프 주한러시아대사는…
●1967년 모스크바 출생 ●북경외국어대학교 졸업 ●모스크바국립대학교 아시아·아프리카대학 졸업 ●러시아 외교부 외교아카데미 졸업 ●주중국 러시아대사관 공사 ●외교부 아시아1국 국장 ●대한민국 주재 러시아연방 특명전권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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