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퉁치화 초대 홍콩 행정장관 사망… 홍콩 반환 후 체제 전환기 이끌어

관련이슈 디지털기획

입력 :
베이징=김희원 특파원 azahoit@segye.com

인쇄 메일 url 공유 - +

구글 선호 매체 등록

홍콩 초대 행정장관을 지낸 퉁치화 전 중국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정협) 부주석이 8일 사망했다. 향년 89세.

 

퉁치화 초대 홍콩 행정장관이 2014년 9월 3일 홍콩에서 기자회견에 참석한 모습. 로이터연합뉴스
퉁치화 초대 홍콩 행정장관이 2014년 9월 3일 홍콩에서 기자회견에 참석한 모습. 로이터연합뉴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퉁 전 장관 사무실이 9일 새벽 발표한 성명을 인용해 그가 전날 홍콩 사나토리엄 앤드 호스피털에서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숨졌다고 보도했다.

 

1937년 7월 7일 상하이에서 태어난 퉁 전 장관은 1940년대 가족과 함께 홍콩으로 이주했다. 영국 리버풀대에서 공부한 뒤 미국 제너럴일렉트릭에서 일했고, 1982년 부친 사망 후 해운기업 오리엔트 오버시즈를 이끌었다. 1996년에는 기업 경영에서 물러난 뒤 홍콩 최고지도자 선거에 나섰다.

 

그는 400명 규모의 선출위원회에서 320표를 얻어 1997년 7월 1일 홍콩 반환과 함께 초대 행정장관으로 취임했다. 당시 그는 베이징의 신임을 받은 인물로 평가됐으며, 홍콩의 생활방식과 자유로운 경제체제, 법치 수호를 약속하며 새 체제의 출범을 이끌었다.

 

1997년 7월 1일 0시 직후 열린 홍콩 반환식에서 중국과 영국 국기 앞에 양국 지도자들이 서 있다. 왼쪽부터 퉁치화 초대 홍콩 행정장관, 장완녠 중앙군사위원회 부주석, 첸치천 외교부장, 리펑 총리, 장쩌민 국가주석, 찰스 왕세자, 토니 블레어 총리, 로빈 쿡 외무장관, 크리스 패튼 총독, 브라이언 더튼 영국군 사령관.  로이터연합뉴스
1997년 7월 1일 0시 직후 열린 홍콩 반환식에서 중국과 영국 국기 앞에 양국 지도자들이 서 있다. 왼쪽부터 퉁치화 초대 홍콩 행정장관, 장완녠 중앙군사위원회 부주석, 첸치천 외교부장, 리펑 총리, 장쩌민 국가주석, 찰스 왕세자, 토니 블레어 총리, 로빈 쿡 외무장관, 크리스 패튼 총독, 브라이언 더튼 영국군 사령관.  로이터연합뉴스

하지만 그의 재임기는 순탄치 않았다. 취임 직후 아시아 외환위기가 닥치며 홍콩 경제가 침체에 빠졌고 부동산 가격도 급락했다. 그가 첫해 내건 연간 8만5000가구 주택 공급 목표는 곧 철회됐지만, 집값 급락을 야기한 대표적 실책으로 남았다.

 

2002년 연임에 성공했지만 이듬해 사스(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확산과 국가보안법 추진이 정치적 위기를 불렀다. 반역과 선동, 국가 전복 등을 금지하는 이 법이 자유와 권리를 제약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면서, 그해 7월 홍콩 시민 50만명이 거리 시위에 나섰다. 결국 정부는 법안 처리를 보류했다. 이 사건은 중국 정부에 대한 홍콩 시민사회의 강한 반발이 폭발한 중대 분수령이자 퉁 전 장관 통치 기반이 크게 흔들린 계기로 평가된다.

 

장쩌민 국가주석(오른쪽)과 퉁치화 초대 홍콩 행정장관이 2002년 7월 1일 홍콩의 중국 반환 5주년 기념식에서 박수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장쩌민 국가주석(오른쪽)과 퉁치화 초대 홍콩 행정장관이 2002년 7월 1일 홍콩의 중국 반환 5주년 기념식에서 박수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퉁 전 장관은 2005년 건강상 이유로 사임한 뒤 정협 부주석을 맡아 중국 중앙정치 무대에서도 활동했다. 전 정협 부주석과 홍콩 행정장관을 지낸 렁춘잉은 이날 소셜미디어를 통해 퉁 전 장관을 애도하며 “홍콩 특별행정구와 정부 출범을 이끌었고 국가의 높은 신임을 받은 인물”이라면서 “홍콩의 장기 발전과 구조적 민생 문제 해결을 멀리 내다보고 구상했다”고 평했다.


오피니언

포토

한지은, 파격 숏컷
  • 한지은, 파격 숏컷
  • 백예인 '매력적인 눈빛'
  • 신예은 '완벽한 미모'
  • 뉴진스 해린, 상큼 눈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