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중일기’ 속 생생한 가장의 책무
최흥원은 재혼 않고 홀로 집안경영
집안 살림은 물론 공동체도 보살펴
가장의 손에서 집안 미래가 결정돼
“백여 명의 입이 먹고 살아갈 방책이 없으니 가슴이 막히지 않을 수 있겠는가?”
(1745년 6월 9일 『역중일기』)
조선시대 양반가를 떠올리면, 남성은 사랑채에 앉아 책만 봤고, 집안 살림은 여성의 몫이었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런데 이런 통념을 단숨에 깨뜨리는 기록이 있다. 바로, 18세기 대구의 양반 최흥원(崔興遠, 1705~1786)이 남긴 ‘역중일기’ 다.
대구 옻골(현재 동구 둔산동)의 경주 최씨 종손인 최흥원은 30대부터 세상을 떠나기 직전까지 50여 년 동안 자신의 일상을 기록했다. 오늘날의 달력에 해당하는 책력(冊曆)에 매일의 일을 적었는데, 현재 역중일기로 전하고 있다.
일기를 보면 그는 책만 읽는 선비가 아니었다. 농사를 감독하고 곡식을 사고팔았으며 가족의 끼니를 걱정했다. 또 자녀의 공부를 챙기고 집안의 혼인과 제사를 준비했으며, 심지어 손님맞이까지 살폈다. 한마디로 최흥원은 집안이라는 작은 세계를 운영하는 ‘최고경영자’였다.
최홍원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먹고사는 일이었다. 그는 가족과 노비를 합치면 수십 명, 때로는 ‘백여 명의 입’을 먹여 살려야 했다. 그런 최흥원에게 날씨는 곧 경제 뉴스와 같았다. 봄비가 제때 내리면 수확을 기대했고, 우박이 내리면 농작물의 피해를 걱정했다. 농사철에는 일손을 보내 농사를 지었고, 논밭의 현황을 보고받았다. 또 그는 농부에게 몸소 농사법을 묻기도 했다. 오늘날 CEO가 생산 현장을 챙기는 모습과 다르지 않다.
최흥원의 살림 경영에는 원칙이 있었다. 바로 나눔이었다. 곡식을 청하는 사람에게 보리 몇 말이라도 내놓았고, 혼례를 치르는 집을 돕고, 불이 난 마을에는 곡식과 나무를 보냈다. 병든 사람에게는 약재와 꿀을 보내기도 했다. 최흥원에게 나눔은 어려운 사람을 돕는 도덕적 의무이자, 자신이 속한 공동체를 함께 보듬는 경영 철학의 실천이었다.
그의 살림 경영은 집안과 공동체를 넘나들었다. 그렇다면 경주 최씨 종손 집안의 안살림은 누가 맡았을까?
최흥원은 아내가 둘째 아들을 낳다가 세상을 떠난 뒤 평생 재혼하지 않았다. 주변에서는 재혼을 권했고, 어머니와 동생은 첩을 들이라고 권유했다. 하지만 최흥원은 결국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 선택의 대가는 만만치 않았다. 안살림을 맡을 아내가 없어 어머니의 생일상 하나 제대로 차리지 못할 때면, 그는 불효자라며 자책했다. 이러한 장면은 최흥원이 집안 살림을 얼마나 자신의 책무로 여겼는지 잘 보여준다. 그에게 안살림은 가장이 전적으로 책임져야 할 중요한 일이었다.
최흥원은 아들과 조카의 공부를 챙기고 젊은이들에게 학문을 가르쳤다. 집안을 꾸리는 일에서 인재를 양성하는 일도 빠질 수 없었기 때문이다. 영남 각지에서 그에게 배우고자 사람들이 찾아왔다. 동문 명부라 할 문인록에는 무려 122명의 제자 이름이 기록되어 있다. 최흥원은 몸소 가르치며 큰 규모의 교육 공동체도 이끌었던 셈이다.
최흥원은 집안의 혼인과 제사도 책임졌다. 종손으로서 그는 가문의 관계와 미래를 고려해 혼처를 정했고, 제사를 위해 묘소와 제수품을 몸소 챙겼다. 그의 손에서 가족의 오늘뿐 아니라 가문의 내일까지 관리되었던 셈이다.
물론, 최흥원의 정체성은 선비였다. 그는 학문을 사랑했다. 친우와 퇴계 이황의 학설을 토론하고, 독서를 즐겼다. 하지만 현실은 바람과 같지 않았다. 어머니가 아프거나 식량이 부족하면 책을 덮고 현실로 돌아와야 했다. 선비의 이상과 가장의 현실은 이렇게 자주 충돌했다.
조선 양반에게 집은 단순히 쉬는 곳이 아니었다. ‘생산 현장’이자 ‘교육 공간’이었고, 가문의 미래를 준비하는 터전이었다. 그 작은 세계가 매일 굴러가게 살피는 사람이 바로 가장이었다. 오늘날 회사 경영자를 CEO라고 부른다. 그렇다면 18세기 옻골에서 가족과 친척, 재산과 농사, 교육과 공동체를 살폈던 최흥원을 ‘가정의 최고경영자’라 불러도 좋지 않을까?
역중일기는 한 양반가의 경영보고서이며, 그 안에서 살아간 군상의 생생한 기록이다. 50년의 기록을 따라가 보면 한 가지 사실이 또렷해진다. 한 가정을 이끈다는 게 단순히 재산을 지키는 일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가장의 일이란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고, 인재를 키우고, 관계를 돌보고, 공동체의 어려움을 함께 감당하는 전문 경영과 다름없었다.
가장의 일은 지금도 계속된다. 그래서 최흥원의 살림 경영은 300년 전의 이야기에만 머물지 않는다. 최흥원이 남긴 50년의 일기는 우리에게 묻는다. 여럿을 책임진다는 것은 과연 얼마나 막중한 일일까? (한국국학진흥원 전통생활사총서 8)
김명자(경북대 영남문화연구원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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