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르고 간편한 ‘패스트푸드’의 대명사였던 햄버거가 ‘미식 경험’의 영역으로 들어오고 있다. 유명 셰프와 손잡고 메뉴를 개발하는 단계를 넘어 전용 공간에서 코스 요리를 선보이고 미술 작품을 전시한 플래그십 매장까지 등장했다. 포화된 국내 시장에서 메뉴와 가격만으로 차별화가 어려워지자 특화 메뉴와 공간을 앞세워 경쟁에 나서는 모습이다.
◆ 버거킹, 전세계 첫 플래그십스토어 ‘플레임그라운드’ 공개
30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버거킹은 지난 26일 서울 성동구 성수동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글로벌 최초 플래그십 스토어 ‘플레임그라운드(Flameground)’를 공개했다. 내달 10일 정식 문을 여는 이곳은 버거킹이 70년간 쌓아온 직화 정체성을 메뉴뿐 아니라 공간과 예술, 다이닝으로 확장한 매장이다.
실제 매장에 처음 들어선 순간 마치 거대한 벽난로에 들어간 듯한 인상을 받았다. 붉은 벽돌 건물 안으로 들어서자 달궈진 그릴을 연상시키는 붉은 선이 사방을 에워쌌다. 메인 홀 곳곳에는 숯과 탄화목 등 ‘불맛’을 연상시키는 소재가 배치됐다. 국내 신진 아티스트 5인과의 협업 작품도 곳곳에 놓였다. 패티를 굽는 핵심 장비인 브로일러의 움직임과 열기를 소리·빛으로 시각화한 전형산 작가의 미디어아트를 비롯해 김도현·정우원·양정욱·안도현 작가의 작품들이 불과 숯, 시간의 흐름을 표현하며 공간을 채웠다.
이동형 BKR 대표는 “플레임그라운드는 버거에 대한 진심과 불맛의 본질을 가장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공간”이라며 “불맛을 메뉴에만 국한하지 않고 공간과 다이닝 경험으로 확장해 고객들이 새로운 방식으로 브랜드를 경험할 수 있도록 기획했다”고 밝혔다.
가장 눈에 띄는 공간은 복도 끝에 위치한 ‘더 개스트로’였다. QSR(퀵서비스레스토랑) 매장 특유의 실용적인 동선을 갖춘 메인 홀과 달리 코스 다이닝 룸인 더 개스트로는 차분한 분위기의 독립된 공간으로 구성됐다. 세션당 사전 예약한 10명만 이용할 수 있으며 가격은 8만9000원이다. 헤드셰프를 중심으로 별도의 조리 인력이 상주한다.
메뉴 구성도 일반적인 햄버거와 다르다. 버거킹의 대표 메뉴인 와퍼를 그대로 내놓는 대신 번과 채소, 토마토, 소스, 직화 패티 등 와퍼를 이루는 요소를 하나씩 해체해 셰프 코스 요리로 재구성했다. 6가지 메인 코스에 고급화한 사이드 메뉴 3종을 더해 총 9가지 메뉴를 차례로 맛볼 수 있다.
최영진 제품혁신센터장은 “플레임그라운드 전용 메뉴는 버거킹이 지금까지 축적해 온 직화 조리 기술을 바탕으로 개발했다”며 “시그니처 메뉴 3종이 불맛의 가능성을 넓히는 시도라면, 더 개스트로는 와퍼를 보다 깊이 있고 색다르게 경험할 수 있도록 기획한 메뉴”라고 설명했다.
일반 고객이 이용하는 메인 홀에서도 기존 매장과 차별화한 메뉴를 내놓는다. 한국식 갈비 풍미를 직화 방식으로 풀어낸 ‘K-큐브 갈비 버거’, 글로벌 메뉴를 국내 입맛에 맞게 재해석한 ‘멤피스 BBQ 버거’, 얇게 썬 립아이와 치즈를 활용한 ‘필리치즈스테이크’ 등 3종이다. 일반 버거킹 매장에서는 판매하지 않는 플래그십 전용 메뉴다.
◆ ‘1조 클럽’ 앞둔 버거킹, 성수 플래그십 택한 이유는
버거킹의 이 같은 시도는 국내 사업의 외형 성장이 일정 궤도에 오른 시점에 나왔다는 점에서도 주목된다. 버거킹은 올해 매출 1조1000억원, 매장 600개를 목표로 하고 있다.
이 대표는 “9월 이후 하반기에 강한 신제품들이 나오는 시즌인 만큼 1조 클럽 진입은 무난하고 그 이상도 가능할 것으로 추정한다”며 “전국 단위의 보편적 마케팅만으로는 브랜드의 깊이를 보여주기에 한계가 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플레임그라운드가 매장 수나 매출을 늘리기 위한 목적은 아니라고 밝혔다. 오히려 전국 수백개 매장에서 동일한 상품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존 QSR의 공식을 벗어나 ‘이곳에서만 가능한 경험’을 만들어 브랜드 이미지를 강화하려는 목적에 가깝다.
이성하 마케팅총괄(CMO)도 “플레임그라운드는 일반 매장이나 다른 나라에서 제공하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경험을 시도하는 공간”이라며 “전체 매장을 대상으로 하는 마케팅과 함께 플레임그라운드에서만 할 수 있는 활동을 하는 것을 버거킹의 ‘넥스트 스텝 마케팅’이라고 생각한다”고 거들었다.
버거킹이 첫 글로벌 플래그십의 위치로 성수를 택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과거 공업지역의 흔적과 현재의 트렌디한 상권이 공존하는 지역 특성이 직화와 불을 강조하는 브랜드 정체성과 맞아떨어진다는 판단이다. 젊은 소비자와 외국인 관광객이 몰리는 만큼 새로운 메뉴와 서비스를 시험하고 빠르게 반응을 확인하기에도 적합하다.
◆ 셰프 모시기부터 성수 갤러리까지…버거업계 ‘경험’ 경쟁
고급화에 나선 것은 버거킹만이 아니다. 과거 프랜차이즈 버거의 경쟁력이 빠른 조리와 접근성, 가격에 있었다면 최근에는 유명 셰프와 협업한 프리미엄 메뉴 출시가 잇따르고 있다.
버거킹은 앞서 바비큐 전문가 유용욱 셰프의 훈연 노하우와 자체 직화 기술을 접목한 ‘스모크 비프립 와퍼’를 선보였다. 롯데리아는 이찬양 셰프와 협업한 ‘번프 비프버거’를 출시했고, 지난해에는 요리 경연 프로그램 우승자인 권성준 셰프와 손잡고 ‘모짜렐라 버거’를 선보여 큰 인기를 끌었다.
쉐이크쉑 역시 한국 진출 10주년을 맞아 미쉐린 스타 셰프인 손종원 셰프와 협업해 ‘헤리티지 컬렉션’ 신메뉴를 선보였다. 브랜드 헤리티지를 강화하고 차별화된 미식 경험을 제공한다는 계획이다. 맘스터치 역시 지난해부터 ‘셰프 컬렉션 프로젝트’를 운영하며 에드워드 리, 후덕죽 셰프 등과 협업 메뉴를 선보이고 있다.
공간에도 프리미엄 이미지를 덧씌웠다. 특히 성수동은 주요 버거 브랜드가 새로운 브랜드 경험을 시험하는 격전지로 떠오르고 있다.
쉐이크쉑은 지난해 성수동 연무장길에 3층 규모의 매장을 열었다. 전 세계 쉐이크쉑 최초로 토핑을 직접 선택해 음료를 만드는 ‘쉐이크 바’를 도입했고, 성수점 전용 메뉴와 아트 갤러리·팝업 공간도 마련했다. 신세계푸드의 노브랜드 버거는 성수 매장을 ‘성수랩’으로 이름 붙이고 신제품과 브랜드 협업 콘텐츠를 시험하는 실험실로 활용하고 있다.
여기에 버거킹의 플레임그라운드까지 가세하면서 성수에서는 주요 버거 브랜드 간 경험 경쟁이 한층 치열해질 전망이다.
이 대표는 “한국은 새로운 소비 경험과 콘텐츠, 트렌드가 가장 역동적으로 만들어지는 시장”이라며 “플레임그라운드는 버거킹이 앞으로 선보일 브랜드 경험의 방향을 보여주는 중요한 출발점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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