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통업계의 신제품 공식이 달라지고 있다.
완전히 새로운 브랜드를 만드는 대신 이미 소비자에게 익숙한 히트 상품의 이름과 맛을 다른 제품군에 옮겨 심고, 한편에서는 제로슈거와 식이섬유, 식물성 원료 등을 앞세운 건강 지향 상품을 늘리고 있다.
유명 셰프나 지방자치단체, 캐릭터와 손잡고 제품 자체에 이야기와 경험을 더하는 전략도 확산하는 모습이다. 최근 주요 식품·외식업체가 내놓은 신제품을 들여다보면 이 같은 흐름이 뚜렷하다.
29일 업계에 따르면 빙그레는 최근 기능성 표시 식품 ‘식후관리 워터’를 선보였다.
핵심 원료는 식후 혈당 상승 억제에 도움을 줄 수 있는 바나바잎 추출물이다. 한 병에 바나바잎 추출물 64mg을 담았고 당류는 0g, 열량은 15㎉로 설계했다. 무설탕·무착색료·무보존료도 내세웠다.
과거 탄산이나 커피에서 주로 보였던 ‘제로’ 경쟁이 이제 식사 후 마시는 물까지 확장된 셈이다.
남양유업도 ‘루카스나인 시그니처 라떼 제로슈거’ 4종을 내놨다. 오리지널과 더블샷, 바닐라, 디카페인 모두 한 포당 당류를 0g으로 설계했다. 기존 라떼의 맛과 거품을 유지하면서 당 부담을 낮추는 데 초점을 맞췄다.
hy는 두유를 발효해 만든 ‘슈퍼100 소이거트’ 플레인과 블루베리 2종을 출시하며 식물성 발효식품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풀무원헬스케어는 ‘리셋 효소’ 2종을 선보였다. 최대 100만5000유닛의 효소에 수용성·불용성 식이섬유를 배합했다. 최근 식이섬유를 적극적으로 섭취하는 ‘파이버맥싱’ 흐름을 겨냥했다는 설명이다. 앞서 지난 4월 출시한 ‘리셋클렌즈 48시간’에 이어 관련 제품군도 확대하고 있다.
건강을 강조하더라도 과거처럼 별도의 건강기능식품을 챙겨 먹게 하기보다 물이나 커피, 요거트 등 평소 먹던 식품 안에 기능과 원료를 넣는 방식이 두드러진다.
또 다른 축은 이미 성공한 브랜드를 다시 쓰는 ‘IP 확장’이다.
오뚜기가 내놓은 ‘열찐만두’가 대표적이다.
1996년 출시된 ‘열라면’의 매운맛과 브랜드 이미지를 만두에 옮겼다. 돼지고기와 채소를 넣은 만두소에 열라면 특유의 매운맛을 더하고 6개들이 트레이 형태로 만들어 전자레인지 조리가 가능하도록 했다.
특히 이번이 처음도 아니다. 오뚜기는 앞서 ‘참깨찐만두’와 ‘순후추찐만두’를 선보였다. 열찐만두까지 더하면서 기존 식품 브랜드의 맛과 이름을 냉동만두로 확장하는 전략을 세 번째 이어갔다.
삼립도 비슷하다.
1964년 출시된 장수 제품 ‘정통크림빵’을 비스켓 샌드로 바꾼 ‘정통크림빵 씬샌드’를 출시했다. 정통크림빵의 상징인 크림 맛과 구멍이 뚫린 외형까지 크래커에 옮겼다. 빵이라는 제품 형태는 사라졌지만 소비자가 기억하는 브랜드의 핵심 요소는 남긴 것이다.
켈로그는 ‘첵스초코’와 ‘첵스딸기’를 한 봉지에 담은 한정판 ‘오곡으로 만든 첵스초코 딸기 크런치’를 내놨다. 서로 다른 기존 제품을 결합해 새로운 맛을 만드는 방식이다.
신규 브랜드는 소비자에게 이름부터 알려야 하지만 기존 인기 제품을 활용하면 이미 쌓인 인지도와 맛에 대한 기억을 그대로 가져갈 수 있다. 신제품 실패 부담을 낮추면서 기존 브랜드의 수명까지 연장할 수 있다는 점이 강점으로 꼽힌다.
브랜드 밖에서 새로운 이야기를 가져오는 협업도 활발하다.
정관장은 서울시와 함께 ‘조선왕실 다과상 세트’를 내놨다.
정관장의 전통 건강차 브랜드 ‘궁정비차’의 진생기율·진생온율과 서울역사박물관 굿즈인 서울옥춘당, 광화문 풍경 마그넷을 한 상자에 담았다.
눈에 띄는 점은 이번이 두 번째 협업이라는 점이다.
서울시와 정관장이 지난해 8월 내놓은 첫 협업 상품 2종은 올해 8월까지 누적 약 3만1000개가 판매됐다. 판매처도 호주와 홍콩, 베트남 해외 면세점으로 넓혔다. 반응을 확인한 뒤 두 번째 제품으로 협업을 확대한 셈이다.
메가MGC커피는 넷플릭스 예능 ‘흑백요리사’ 출연으로 이름을 알린 이문정 셰프와 손잡고 ‘중식마녀 마라크림 새우토스트’를 선보였다.
메가MGC커피는 최근 협업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올해 여름에도 NCT WISH 협업 굿즈와 ‘사랑의 하츄핑2’ 굿즈를 내놨다. 자체 디저트 ‘버터떡’은 출시 이후 500만개 판매를 기록하며 가맹점과 성과를 공유하는 행사까지 진행했다.
제품 구성 자체를 바꾸는 시도도 이어진다.
교촌치킨은 닭 날개를 반으로 자른 ‘하프윙’과 정육 순살을 함께 구성한 ‘윙콤비’를 내놓으며 부위 조합에 변화를 줬고, 대상 종가는 얼갈이배추와 열무를 조합한 ‘열무얼갈이겉절이’를 선보였다.
최근 제품들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결국 ‘검증된 것의 재조합’이다.
열라면을 만두로 바꾸고 정통크림빵을 비스켓으로 옮긴다. 커피에서는 당류를 덜고, 물에는 건강 관리 이미지를 더한다. 여기에 셰프와 캐릭터, 서울이라는 도시 브랜드까지 제품 안으로 끌어들인다.
완전히 새로운 맛과 브랜드에 승부를 걸기보다 소비자가 이미 알고 있는 브랜드와 건강 키워드, 인기 콘텐츠를 다시 조합하는 방식이다.
업계 관계자는 “신제품이 넘쳐나는 상황에서는 소비자가 처음 보는 제품을 기억하게 만드는 것 자체가 상당한 비용”이라며 “인지도가 검증된 브랜드나 콘텐츠를 새로운 카테고리에 접목하면 진입 장벽을 낮추면서도 기존 고객에게 새로운 구매 이유를 줄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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