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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고리에 걸린 봉투 보고 세상 밖으로…“이젠 제가 반찬 만들어 찾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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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예지 기자 sunris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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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더위가 막 시작된 지난달 16일 오전 9시. 최수경(여, 75세)씨를 포함해 4명의 사람들이 서울시 양천구에 있는 신정종합사회복지관에 모였다. 이들은 손수레에 라면과 물티슈, 고립·은둔 상황에서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연락처가 담긴 봉투 120개를 담아 분주하게 근처 빌라가 밀집된 지역으로 이동했다.

 

최씨는 능숙하게 수레에서 봉투 10여개를 꺼내 양 손 가득 들고 언덕배기에 있는 빌라 가장 높은 층부터 지하까지 빠짐없이 봉투를 걸었다. 네 사람이 함께 분주히 움직이고 나니 30분 만에 봉투가 동이 났지만 이들의 얼굴엔 땀이 비 오듯 쏟아지고 있었다. 평소엔 한 사람당 봉투를 200개씩 맡아 1시간30분 가량 봉사활동을 한다고 했다.

 

집 문고리에 봉투를 거는 봉사활동은 고립·은둔 상태에 있는 사람들이 이를 보고 도움을 요청하거나 밖으로 나올 수 있도록 2022년 시작됐다. 고립·은둔 상태에 있는 사람들은 대개 반지하에 많이 살지만 그 집에만 봉투를 걸면 오히려 낙인이 돼 밖으로 나오기 힘들 수 있어 모든 세대에 봉투를 건다.

 

서울 양천구 신정종합사회복지관 소속 사회복지사와 자원봉사자들이 지난달 16일 고립 가구 발굴을 위해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전화번호와 라면이 든 봉투를 실은 수레를 끌고 있다. 이 과정에서 문 밖으로 나온 고립 은둔 당사자들이 다시 자원봉사에 참여하기도 한다. 구예지 기자
서울 양천구 신정종합사회복지관 소속 사회복지사와 자원봉사자들이 지난달 16일 고립 가구 발굴을 위해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전화번호와 라면이 든 봉투를 실은 수레를 끌고 있다. 이 과정에서 문 밖으로 나온 고립 은둔 당사자들이 다시 자원봉사에 참여하기도 한다. 구예지 기자

 

첫 봉사활동부터 함께했다는 최씨는 계속할 수 있던 원동력으로 ‘사람이 바뀌는 모습을 봤을 때’를 꼽았다. 최씨는 “집 안에만 있던 사람이 문고리에 걸려있던 봉투를 매개로 밖으로 나와서 남과 교류하고 있을 때, 그리고 자신도 같이 봉사활동 하고 싶다고 할 때 가장 뿌듯하다”며 환하게 웃었다.

 

봉사활동을 하면서 항상 좋은 말만 듣는 것은 아니다. 봉투를 받아본 사람들이 “내가 고립·은둔인 것 같냐”며 불쾌감을 표하거나 고립·은둔 가구가 사는 것처럼 보이면 집값이 떨어진다며 화를 내는 경우도 종종 있다. 그럼에도 최씨는 “혼자서 힘들어 하는 사람이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하지 않냐”며 봉사활동은 계속돼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 양천구 신정종합사회복지관에서 자원봉사를 하는 최수경(여, 75세)씨가 지난달 16일 고립 가구 발굴을 위해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전화번호와 라면이 든 봉투를 양 손 가득 들고 이동하고 있다. 구예지 기자
서울 양천구 신정종합사회복지관에서 자원봉사를 하는 최수경(여, 75세)씨가 지난달 16일 고립 가구 발굴을 위해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전화번호와 라면이 든 봉투를 양 손 가득 들고 이동하고 있다. 구예지 기자

 

신정종합사회복지관은 문고리에 봉투를 거는 발굴활동 외에도 고립·은둔 상태에 있는 중장년 남성들이 밖으로 나올 수 있도록 반찬 만들기 프로그램도 하고 있다. 고립·은둔 상태에 있다가 복지관의 도움으로 다시 사회에 나온 중장년 남성들이 일주일에 한번 복지관에 모여 반찬을 만들고 고립·은둔 상태에 있는 다른 사람들에게 이를 전달한다. 아직 발견되지 않은 고립·은둔 가구가 이용할 수 있도록 근처 수퍼마켓 내 공유냉장고에 이를 넣어두기도 한다.

 

5년 넘게 고립·은둔 상태에 있다가 3년 전 신정종합사회복지관에서 문고리에 걸었던 봉투를 보고 밖으로 나온 A(63세)씨는 반찬 만들기 봉사활동에 빠지지 않고 참석한다. 이날도 능숙하게 김치를 담그기 위해 무를 썰고 있던 A씨는 오랜만에 나온 B씨에게 “집에 혼자 있지 말고 자주 나와, 그리고 술 좀 끊어”라며 애정 섞인 잔소리를 했다.

 

A씨와 비슷한 시기 고립·은둔에서 벗어나 반찬 만들기 봉사활동을 하고 있는 C(58세)씨는 “직접 반찬을 만들어서 먹을 수 있어서 좋고 남한테 주니 더 보람차다”며 “혼자 있지 말고 용기를 내서 밖으로 나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서울 양천구 신정종합사회복지관에서 문고리에 거는 봉투에는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전화번호와 서울마음편의점에 대한 안내지, 물티슈와 라면이 들어있다. 구예지 기자
서울 양천구 신정종합사회복지관에서 문고리에 거는 봉투에는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전화번호와 서울마음편의점에 대한 안내지, 물티슈와 라면이 들어있다. 구예지 기자

 

신정종합사회복지관에서 일하는 홍수진 사회복지사는 고립·은둔 중장년 남성들을 위한 반찬 만들기나 문고리에 봉투를 거는 봉사활동 등의 일을 담당하고 있다. 그는 “문고리에 봉투도 걸고 반찬도 만들어서 드리지만 거부하는 분들이 많아서 마음의 문을 두드리는 데 시간이 걸렸다”며 “반찬만 받고 집에 돌아가 혼자 있게 하고 싶지 않아서 오늘은 이런 프로그램도 있다고 말씀드리고 계속 나올 수 있게 만들려고 노력한다”고 강조했다. 처음에는 프로그램이 싫다고 했다가도 재차 이야기를 하면서 관심을 보이게 되는 과정에서 뿌듯함을 느끼기도 한다.

 

홍 사회복지사는 “고립·은둔 상태에 있는 사람들은 말 하나에도 쉽게 상처를 받기 때문에 섬세하게 다가가려고 노력한다”며 “단순히 대화하는 게 아니라 그분의 마음을 잘 들여다보고 다가갈 수 있는 기술이 필요한데 한두번의 교육으로는 충분하지 않아서 개인적으로 어려움을 느끼고 있는 부분”이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혼자 있는 분들이 밖으로 나와서 다시 되돌아가지 않도록 하는 것까지 많이 신경을 쓰고 있다”며 “잠깐만 용기를 내서 저희의 손을 잡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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