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마포구 서교동의 한 주택. 커다란 창으로 햇빛이 쏟아지는 1층 작업실 바닥에는 검푸른 물감의 흔적이 겹겹이 남아 있다. 새로 칠하지도, 지우지도 않았다. 오랜 시간이 흘러 집을 다시 손봤지만 윤형근(1928∼2007) 특유의 색은 그대로 남았다. 그가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살고 작업했던 이 집이 다음달 1일 ‘윤형근의 집’이라는 이름으로 처음 일반에 공개된다.
한쪽에는 그가 쓰던 작업 도구가 있고, 창밖으로는 소나무와 오래된 석물이 놓인 작은 정원이 보인다. 생전 윤형근은 이 창가에 앉아 정원을 바라보다 다시 캔버스로 돌아가곤 했다. 2층에는 한국 단색화 거장 대신 남편이자 아버지였던 윤형근의 시간이 남아 있다. 오래된 반닫이와 약장, 도자기, LP와 오디오, 커피 도구까지 그가 실제 사용하던 물건들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집을 찬찬히 둘러보면 그림보다 어떤 자세로 살아가느냐가 중요하다던 윤형근의 말이 떠오른다. “예술이란 생활 속에서 하나의 부산물이요, 흔적”이라고 했던 그에게 예술은 삶과 별개의 것이 아니었다. 그의 집에서는 그 삶이 남긴 흔적을 고스란히 엿볼 수 있었다.
이 집의 시작에는 장인이자 스승이었던 김환기(1913∼1974)가 있다. 서교동의 이 터는 김환기가 1963년 국민주택으로 분양받은 곳이다. 윤형근은 1967년부터 이곳에 살다가 1983년 기존 주택을 허물고 지금의 집을 새로 지었다. 설계는 동생 윤도근 당시 홍익대 건축과 교수에게 맡겼지만 공간의 기능과 형태, 재료 선정에는 윤형근 자신이 적극적으로 관여했다. 높은 층고와 노출 배관, 전면 유리 등 서구 모더니즘의 요소에 목재 천장과 문창살 같은 한국적 요소를 함께 들였다. 자연광 아래서 작업할 수 있도록 1층 작업실 한쪽에는 커다란 창을 냈다. 외벽과 담장에는 그가 ‘흙빛을 정화한 빛깔’이라고 표현한 벽돌을 쌓고 정원에는 소나무와 거친 석물을 놓았다. 집의 구조부터 재료, 정원까지 그의 숨결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다.
그가 삶을 대하는 태도는 그림에서도 이어졌다. 윤형근을 대표하는 ‘천지문(天地門)’은 하늘을 뜻하는 청색(울트라마린 블루)과 땅을 뜻하는 다색(번트 엄버)을 겹쳐 검푸른 색면을 만들고 그 사이에 아무것도 칠하지 않은 여백을 남겼다. 윤형근은 1977년 “내 그림의 명제를 천지문이라고 해본다. 블루는 하늘이요 엄버는 땅의 빛깔이다. 그래서 천지라 했고 구도는 문이다”라고 썼다.
이토록 고요하고 절제된 그림과 달리 그의 삶은 굴곡졌다. 국립서울대 설립안 반대운동으로 학교에서 제적됐고, 한국전쟁 당시 보도연맹 사건을 겪으며 생사의 기로에 섰다. 숙명여고 교사로 일하던 1973년에는 부정입학 사건에 항의하다 구속됐다. 이듬해에는 정신적 지주였던 김환기가 뉴욕에서 세상을 떠났다. 일련의 시간을 지나 1970년대 윤형근의 화면에서는 화려한 색이 사라지고 청색과 다색, 그리고 여백이 중심에 자리 잡았다.
그의 그림이 처음부터 끝까지 같은 모습이었던 것은 아니다. 1980년대 중반 이후에는 색면이 화면 전체를 뒤덮는 대형 올오버 회화부터 물감이 캔버스 가장자리와 옆면까지 번지는 작업까지 다양한 실험을 이어갔다. 1990년대 들어서는 다시 검정에 가까운 색과 엄격한 사각형으로 화면을 압축해갔다. 여러 변주를 거쳤지만 방향은 점차 분명해졌다. 더 그리기보다 덜어내는 쪽이었다.
그의 작품세계를 따라가다 다시 서교동 집을 돌아보면, 이곳에 남겨진 것들도 단순한 살림살이와는 조금 다르게 다가온다. 윤형근은 김환기의 영향을 받아 고가구와 고미술을 가까이했다. 오래된 가구와 도자기를 일상의 살림으로 사용했고, 마음에 드는 가구가 없으면 윤형근이 직접 크기와 형태를 정해 목수에게 제작을 맡겼다. 추사 김정희의 현판, 윤형근과 가까이 교류했던 조각가 최종태, 미국 미니멀리즘의 거장 도널드 저드의 작품도 집 안에 자리한다. 무엇을 가까이 두고 누구와 관계 맺으며 살았는지가 자연스럽게 한 공간에 축적됐다.
집에 축적된 시간은 윤형근 개인의 것만은 아니다. 한 가족의 생활사는 자연스레 한국 현대미술사의 한 장면으로 이어진다. 아내 김영숙은 김환기의 큰딸이자 홍익대 회화과를 나온 화가였다. 김환기가 딸과 사위에게 보낸 편지와 미공개 드로잉, 윤형근의 작가노트, 이우환이 윤형근에게 보낸 편지 등이 한데 남아 있다.
‘윤형근의 집’을 다시 세상에 내놓으면서도 복원의 목표는 새것으로 되돌리는 데 있지 않았다. 손상된 부분을 수선하되 건물의 외관과 기존 재료를 최대한 살리고, 가구와 기물도 자료를 토대로 생전 위치에 가깝게 되돌렸다. 윤형근의 아들 윤성열은 “‘삶과 예술은 따로 있지 않고 한 공간에 존재해야 한다’는 아버지의 생각을 반영한 집”이라고 설명했다.
‘윤형근의 집’은 10월17일까지 예약제로 운영된다. 화∼토요일 하루 네 차례, 회차당 8명만 관람할 수 있으며 전 회차 도슨트 투어로 진행된다. 내년부터는 봄과 가을 시즌제로 운영할 예정이다.
집 개관에 맞춰 윤형근의 화업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전시도 함께 열린다. 서울 종로구 PKM갤러리에서는 10월3일까지 ‘윤형근을 다시 상상하다(reimagine Yun Hyong-keun)’를 선보인다. 1970년대 초기 ‘천지문’부터 1980년대의 실험적인 회화, 1990년대 이후 후기작과 한지 작업까지 주요 작품 30점을 통해 30여 년에 걸친 작업의 흐름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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