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선물로 한우나 굴비 대신 ‘호텔 로비의 향’을 보내는 시대가 됐다. 호텔 셰프가 만든 갈비찜을 집에서 데워 먹고, 스파 이용권이나 호텔 숙박권을 부모님에게 선물하는 것도 가능해졌다.
올해 호텔가의 추석 선물 경쟁은 전통적인 정육·수산물에서 한발 더 나아갔다. 호텔에서 먹고 자고 쉬면서 느끼던 경험 자체를 상품으로 옮겨 놓은 것이 특징이다.
향과 타월 같은 라이프스타일 제품부터 셰프 완조리 음식, 스파·식사·숙박권까지 선물의 경계가 빠르게 넓어지고 있다. 주요 호텔들은 9만원대 한우부터 3억원짜리 희귀 와인까지 가격대도 크게 벌리며 소비자 선택지를 확대하고 있다.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호텔의 ‘향’을 상품화한 것이다.
28일 업계에 따르면 조선호텔앤리조트는 올해 처음 ‘더 조선호텔 디퓨저 컬렉션’을 추석 선물로 내놨다. 호텔의 대표 공간과 100년 넘는 헤리티지를 ‘Room 201’, ‘Garden 1914’, ‘Gate 9’ 등 세 가지 향으로 풀어냈다. 호텔에서 사용하던 촉감을 집에서도 느낄 수 있도록 고밀도 40수 코마사를 사용한 ‘헤리티지 타월 세트’도 마련했다.
조선호텔은 김치와 한우 같은 전통 선물뿐 아니라 디퓨저·타월 등 시그니처 상품을 포함해 올해 110여종의 추석 선물을 선보였다. 공식 온라인 사전 예약은 9월 3일까지 진행한다.
워커힐 호텔앤리조트도 호텔 로비의 시그니처 향을 옮겨 담은 ‘워커힐 룸스프레이-어반 포레스트’를 처음 추석 선물로 선보인다. 의류와 커튼, 침구 등에 사용할 수 있는 100㎖ 제품으로 가격은 6만2000원이다.
포시즌스 호텔 서울 역시 호텔의 시그니처 향을 담은 캔들·디퓨저·룸 스프레이 세트를 내놨다. 시더우드와 샌들우드, 시트러스 계열 향을 조합한 제품으로 가격은 19만8000원이다.
호텔 향 제품이 명절 선물까지 파고든 배경에는 객실에서 사용해 본 어메니티나 향을 집에서도 다시 찾는 수요가 있다.
롯데호텔앤리조트는 이런 흐름을 반영해 자체 프리미엄 욕실 어메니티를 기존 2종에서 6종으로 확대했다. 롯데호텔의 프리미엄 욕실 어메니티 매출은 올해 2분기 직전 분기보다 80% 증가했다. 올해 추석에는 자체 브랜드 상품과 한우·수산물 등을 합쳐 130여종을 내놓는다.
명절 음식 준비 부담을 겨냥한 상품도 늘었다.
그랜드 인터컨티넨탈 서울 파르나스는 올해 처음 호텔 셰프가 완전히 조리한 음식을 추석 선물로 내놨다.
대표 상품은 갈비찜과 아롱사태찜을 함께 담은 ‘고품격 갈비찜과 아롱사태찜’으로 가격은 43만원이다. 중식당 웨이루의 조리법을 적용한 ‘웨이루 주방장 추천 불도장’은 85만원이다. 별도 조리 과정을 크게 거치지 않고 호텔 음식을 집에서 즐길 수 있도록 한 것이 특징이다.
가격의 정점에는 와인이 있다. 인터컨티넨탈 파르나스는 단 한 세트만 판매하는 ‘로마네 꽁띠 2017 세트’를 3억원에 내놨다. 미국 나파밸리 컬트 와인 ‘스크리밍 이글’ 등 희귀 와인도 추석 상품군에 포함했다.
르메르디앙 서울 명동은 아예 명절 상차림을 세트로 구성한 ‘명절 투 고’를 내놨다. 삼색 나물과 모둠전, 소고기 잡채, 새우 전복장, 부세굴비구이, LA갈비, 한방 소갈비찜 등 8가지 메뉴를 한데 담았다.
한우 육전과 한우 잡채, 영광굴비, 한방 전복 소갈비찜, 인절미 티라미수 등을 넣은 ‘프리미엄 명절 투 고’도 판매한다. 가격은 각각 31만9000원과 39만9000원이다. 호텔 셰프의 음식을 선물하는 동시에 명절 음식 준비에 드는 시간까지 줄여주는 셈이다.
서울신라호텔은 한우와 수산물, 웰빙, 주류, 라이프스타일 제품 등 모두 144종을 선보였다. 헤드 소믈리에가 추천한 한정 생산 샴페인과 부르고뉴 와인, 위스키는 물론 유기농 올리브오일과 발사믹 식초 등을 담은 ‘유러피언 햄퍼’도 구성했다.
추석 선물의 또 다른 변화는 실물이 없는 ‘경험형 상품’의 확대다.
반얀트리 클럽 앤 스파 서울은 올해 추석 선물의 주제를 ‘웰니스’로 잡았다. 1++ 한우와 제철 과일, 벌꿀 등 먹거리뿐 아니라 시그니처 향 오일 버너와 바디케어 제품, 스파 바우처를 결합한 ‘스파 선물 세트’를 마련했다.
객실과 스파, 다이닝 등을 이용할 수 있는 멤버십과 기프트카드도 판매한다. 추석 선물의 범위를 ‘먹는 것’에서 휴식과 회복의 시간으로 넓힌 셈이다. 판매 기간은 9월 1일부터 23일까지다.
켄싱턴호텔앤리조트는 한발 더 나아가 여행 자체를 선물 목록에 올렸다. 국내 켄싱턴호텔앤리조트 전 지점 숙박권뿐 아니라 PIC 사이판 숙박권, 켄싱턴호텔 여의도 레스토랑 식사권을 판매한다.
고물가를 고려해 9만원대 ‘한우 실속 세트’도 별도로 내놨다. 지난해 명절 한우 선물세트의 재구매율이 95%에 달한 점을 반영했다. 고가 경험형 상품과 실속형 먹거리를 동시에 잡는 전략이다.
포시즌스 호텔 서울 역시 객실과 레스토랑, 스파에서 쓸 수 있는 호텔 상품권을 10만원부터 원하는 금액으로 구성할 수 있게 했다. 파크 하얏트 서울은 마스터 셰프의 시그니처 메뉴와 피에르 에르메 파리 마카롱, 레스토랑 식사권 등을 추석 선물로 구성했다.
업계가 이처럼 선물의 범위를 넓히는 것은 한우·굴비·과일만으로는 호텔별 차별성을 만들기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객실에서 맡았던 향, 셰프의 음식, 스파에서 보낸 시간처럼 다른 곳에서 쉽게 복제하기 어려운 경험을 상품화해야 호텔 브랜드 자체가 선물의 이유가 될 수 있다.
올 추석 호텔 선물 경쟁의 무대가 ‘무엇을 담았느냐’에서 ‘어떤 경험을 담았느냐’로 옮겨가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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