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에서 6·25 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제임스 밴플리트 장군(당시 중장)은 미국 육군 제8군 사령관에 임명돼 한국에 부임했다. 같은 해 4성장군에 오른 그는 1953년 1월까지 8군을 지휘하며 압도적 숫자의 중공군 남하를 끝내 막아냈다. 밴플리트 장군은 6·25 전쟁 초반 한국군이 북한군에 참패를 거듭하고 중공군 개입 이후로는 한동안 중공군 앞에 맥을 못 춘 원인으로 ‘유능한 장교의 부족’을 꼽았다. 그래서 본인의 모교이기도 한 웨스트포인트 육군사관학교 같은 엘리트 군인 양성 기관을 한국에 만드는 데 전력을 기울였다. 오늘날 서울 태릉 육사 교정 안에 밴플리트 장군 동상이 세워진 것은 그 때문이다.
밴플리트 장군의 하나뿐인 아들 제임스 밴플리트 주니어도 아버지와 같은 웨스트포인트 출신이다. 육군 장교로 출발한 밴플리트 주니어는 조종사가 되었고, 1947년 육군 항공대가 공군으로 독립하며 그 또한 소속이 공군으로 바뀌었다. 부친이 한국에서 8군 사령관을 맡고 있던 시절 그는 “아버지를 도와야 한다”며 한국 근무를 자청했다. 1952년 4월 폭격기를 몰고 임무 수행을 위해 적진으로 날아간 밴플리트 주니어 대위는 교신이 끊겼다. 적군 대공포에 맞아 격추된 것으로 추정됐다. ‘수색대를 보내 시신이라도 수습해야 한다’는 부하들의 건의에 밴플리트 장군은 고개를 저었다. “내 자식 찾는 일로 다른 장병들 목숨을 위태롭게 해서는 안 된다.” 부자(父子)가 모두 미 육사의 3대 정신 ‘의무’(Duty)·‘명예’(Honor)·‘조국’(Country)에 충실한 영웅들이었다.
밴플리트 장군의 영향을 크게 받은 한국 육사의 교훈은 ‘지’(智)·‘인’(仁)·‘용’(勇)이다. 6·25 전쟁과 베트남 전쟁 당시 육사 출신 장교들은 목숨을 걸고 싸움으로써 이를 실천했다. 월남전 파병을 앞두고 실전 같은 훈련을 하던 중 어느 병사가 실수로 수류탄을 떨어뜨리자 재빨리 몸을 날려 수류탄을 덮침으로써 전우들 목숨을 구하고 장렬히 산화한 강재구 소령(육사 16기)은 육사인의 표상이라고 할 것이다. 물론 육사 졸업생들이 5·16 군사 정변, 12·12 군사 반란과 5·18 광주 민주화 운동 유혈 진압, 그리고 12·3 비상계엄 사태 등에 가담하며 군의 정치적 중립성을 훼손한 오점도 있었다. 하지만 극히 일부의 일탈 행위를 들어 육사와 육사인 전체를 매도하는 것은 매우 부당한 언행이 아닐 수 없다.
“장교란 무엇입니까.” 지난 26일 육·해·공 3군 사관학교 통합에 관한 의견을 묻는 공청회에 참석한 육사 1학년 생도는 이런 질문으로 입을 열었다. 그는 “생도들은 여름엔 덥고 겨울엔 추워 아무리 잠자리가 불편할지라도 최선을 다해 훈련을 받기 위해서 온 사람들”이라며 “절대 가벼운 마음으로 이곳에 모인 게 아니다”고 말했다. ‘육사·해사·공사 모두 시설이 노후화돼 통합을 통해 개선해야 한다’는 일각의 주장을 반박한 것이다. 더운 여름이든 추운 겨울이든 조국을 철통같이 지켜 국민이 마음 놓고 생업에 전념할 수 있도록 하라고 만든 조직이 군대일 것이다. 장교는 그런 군대를 지휘하고 훈련 시켜 더욱 강한 전투력을 지닌 집단으로 거듭하게 하는 존재다. 장교의 임무를 정확히 파악하고 있는 1학년 사관생도의 늠름한 기개에 마음이 든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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