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머신을 샀더니 세계적인 팝스타의 내한공연에 갈 기회가 생기고, 케첩은 티셔츠와 후드가 된다. 피자를 주문하면 게임 굿즈가 따라오고, 과자는 서울 을지로 야장의 안주로 변신한다.
유통업계의 ‘컬래버레이션 공식’이 달라지고 있다. 유명 연예인이나 캐릭터를 제품 포장에 넣는 데서 벗어나 음악·패션·게임·미식 등 소비자가 평소 즐기는 취향 자체를 브랜드 경험으로 끌어들이는 방식이다.
제품 구매→굿즈 수령으로 끝나던 협업도 공연과 전시, 팝업스토어, 오프라인 체험 행사까지 길어지고 있다. 브랜드를 먼저 알리는 대신 소비자가 좋아하는 영역 안으로 브랜드가 직접 들어가는 셈이다.
28일 업계에 따르면 네스프레소는 팝스타 더 위켄드(The Weeknd)와 손잡고 ‘삼라 오리진 컬렉션’을 내놨다.
더 위켄드가 개발에 참여한 ‘삼라 오리진 투게더니스 블렌드’ 커피를 비롯해 그의 뿌리를 상징하는 디자인을 적용한 커피머신과 트래블 텀블러 등을 선보였다. 네스프레소 공식 온라인몰에서도 삼라 투게더니스 블렌드를 판매하고 있다.
협업은 제품 출시에서 끝나지 않는다. ‘버츄오 팝+ 삼라 오리진 바이 더 위켄드’ 구매 고객을 대상으로 더 위켄드 내한공연 티켓 이벤트도 진행한다. 9월 10일까지 응모를 받고 5명을 선정해 1명당 티켓 2장을 제공한다.
아티스트의 이름을 커피와 머신에 붙이는 데서 한발 더 나아가 실제 공연 관람으로까지 경험을 이어가는 방식이다. 더 위켄드 팬에게는 커피머신 구매가 곧 자신이 좋아하는 아티스트를 만날 수 있는 하나의 이벤트가 된다.
오뚜기는 ‘오뚜기 케챂’ 출시 55주년을 맞아 아이앱 스튜디오(IAB STUDIO)와 다시 손을 잡았다.
이번 컬렉션은 케첩·마요네스 티셔츠와 케첩 집업 후드, 스웨트셔츠, 파우치 등 5종이다. 아이앱 스튜디오는 래퍼 빈지노가 만든 아트 스튜디오로, 오뚜기와는 2022년 마요네스 50주년 컬렉션에 이어 두 번째 협업이다.
식품 브랜드의 상징을 옷과 굿즈로 옮긴 것도 특징이다. 평소 냉장고에서 보던 케첩 디자인을 소비자가 입고 들고 다니는 패션 아이템으로 확장한 것이다.
협업 상품은 오뚜기몰에서 사전 응모와 추첨 방식으로 판매하고, 서울 강남구 ‘롤리폴리 큐브’에서는 실제 의류와 룩북을 볼 수 있는 전시도 운영한다. 온라인 판매와 오프라인 전시를 동시에 연결해 구매 전후의 경험을 넓혔다.
롯데웰푸드는 꼬깔콘을 편의점과 마트 과자 진열대 밖으로 꺼냈다. 서울 을지로 대표 야장 공간인 만선호프와 손잡고 다음 달 13일까지 ‘꼬깔콘X만선호프’ 협업을 진행한다.
꼬깔콘을 나초처럼 먹는 ‘꼬깔콘 스페셜 나쵸’를 비롯해 우삼겹야끼소바와 꼬깔콘 쌈장삼겹살맛, 마늘치킨과 꼬깔콘 고소한맛 등을 묶은 세트 메뉴 4종을 선보였다. 생맥주 주문 고객에게 꼬깔콘을 제공하는 행사도 진행한다.
공간도 브랜드 체험장으로 바꿨다. 매장 외벽에는 배우 오정세가 등장하는 대형 옥외광고를 설치하고 루프탑과 내부에 홍보물을 배치했다. ‘야장에서 맥주와 함께 먹는 꼬깔콘’이라는 새로운 소비 상황을 만들어낸 셈이다.
특히 롯데웰푸드에 따르면 야장 콘셉트로 내놓은 ‘꼬깔콘 쌈장삼겹살맛’은 일부 대형마트에서 기존 제품보다 3배 넘는 판매량을 기록했다. 단순 홍보를 넘어 실제 소비 장면을 바꾸는 협업이 판매 확대에도 연결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동아오츠카 데미소다는 음악을 협업 파트너가 아닌 브랜드 콘텐츠 자체로 끌어들였다.
오는 10월 예정된 ‘데미소다 콘서트’에 앞서 29일 서울 성수동에서 미니 콘서트 ‘데미콘 스테이지’를 연다. 8명의 DJ가 참여하는 디제잉 배틀과 공연 등을 마련해 소비자가 제품을 마시는 데서 그치지 않고 브랜드가 만든 음악 공간을 직접 즐길 수 있도록 구성했다.
광고 모델이 공연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전통적인 음악 마케팅과도 차이가 있다. 소비자를 관객으로 행사장에 불러들이고, 공연을 즐기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브랜드를 접하게 만드는 구조다.
식품·외식업계에서는 게임 팬덤을 겨냥한 협업이 특히 빠르게 확대되고 있다.
도미노피자는 오픈월드 액션 RPG ‘명조: 워더링 웨이브’와 협업해 9월 17일까지 프로모션을 진행한다. 대상 피자를 주문한 뒤 5000원을 추가하면 블록과 포토카드, 게임 쿠폰 등이 담긴 굿즈 세트를 살 수 있다. 인기 캐릭터를 넣은 전용 피자 박스도 제작했다.
맘스터치는 MMORPG ‘로스트아크’와 네 번째 협업까지 이어갔다. ‘모코코 썸머 바캉스 세트’에 피규어와 게임 쿠폰, 카드팩 등을 붙였다.
반응도 숫자로 확인됐다. 첫 협업 당시 관련 패키지가 조기 품절됐고, 이후 프로모션에서는 출시 나흘 만에 준비 물량의 70%가 소진된 사례도 있다.
프랭크버거 역시 게임 ‘명일방주: 엔드필드’와 협업하면서 메뉴와 굿즈 판매에 그치지 않고 게임 세계관을 매장 공간에 구현했다. 소비자가 식사를 하러 온 매장에서 게임 콘텐츠까지 체험하도록 접점을 넓힌 것이다.
팬덤 경험을 해외 유통망 확대에 활용하는 사례도 있다.
팔도와 hy는 방탄소년단(BTS)과 함께 기획한 브랜드 ‘아리(ARIH)’를 일본과 캐나다에 선보이면서 현지 팝업 행사까지 함께 열었다.
일본 도쿄 팝업에서는 제품 소개와 함께 소비자가 직접 토핑을 선택하는 체험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캐나다 토론토에서는 BTS 공연과 연계한 시식 행사와 현지 레스토랑 협업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단순히 K팝 스타를 제품 홍보에 활용하는 것을 넘어 공연을 보러 모인 팬들의 동선을 실제 식품 체험으로 연결했다.
과거 브랜드 협업의 중심이 ‘누구와 손잡았느냐’였다면 최근에는 ‘소비자가 무엇을 하게 만드느냐’로 무게중심이 이동하고 있다.
좋아하는 가수의 공연을 보고, 게임 굿즈를 모으고, 옷을 입고, 야장에서 술을 마시는 일상적인 취향의 순간에 브랜드를 끼워 넣는 방식이다.
고물가로 소비자가 지갑을 쉽게 열지 않는 환경도 이런 흐름을 키우는 요인이다. 국가데이터처에 따르면 7월 외식 물가는 전년 동월보다 2.6% 올랐다. 가격 경쟁만으로 신규 고객을 끌어들이기 어려워지면서 충성도가 높은 팬덤이나 뚜렷한 취향을 가진 소비자를 겨냥한 차별화 전략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실제 유통 현장에서는 협업의 범위도 제품 패키지→한정 굿즈→팝업스토어→공연·전시·체험 공간으로 계속 넓어지는 모습이다.
유통업계 관계자는 “최근 협업은 유명 IP를 제품에 적용하는 것보다 소비자가 좋아하는 문화를 브랜드와 어떻게 함께 경험하게 할지가 중요해지고 있다”며 “팬덤을 신규 고객으로 끌어들이는 동시에 기존 브랜드 이미지를 젊게 바꿀 수 있다는 점에서 체험형 협업은 계속 확대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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