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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광화문 600년, 이제 ‘광화문의 날’을 만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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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출발·K-민주주의·한글을 품은 ‘대한민국의 얼굴’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공간을 하나 꼽으라면 어디일까. 경복궁과 광화문, 그리고 그 앞에 펼쳐진 광화문광장을 빼놓을 수 없다. 왕조의 역사가 깃든 궁궐의 정문이자 대한민국의 출발을 지켜본 공간이며, 오늘날 시민의 목소리가 모이는 민주주의의 광장이다. 한글을 창제한 세종의 정치철학과 시민 참여의 역사가 한곳에 겹쳐 있는 곳이기도 하다.

 

오는 12월 4일은 광화문이 ‘광화문’이라는 이름을 얻은 지 600년이 되는 날이다. 1395년 태조가 경복궁을 창건할 당시 정문의 이름은 따로 없었다. 그러다 세종 8년인 1426년 음력 10월 26일, 비로소 ‘광화문(光化門)’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이를 양력으로 환산하면 1426년 12월 4일이다.

 

허준혁 유엔피스코 사무총장
허준혁 유엔피스코 사무총장

‘광화’라는 이름에는 시대를 향한 이상이 담겨 있다. ‘서경’의 구절에서 비롯된 ‘광화’는 임금의 덕화가 널리 퍼져 세상을 밝게 한다는 뜻을 품고 있다. 바른 정치와 덕치가 백성에게 미치고 세상을 이롭게 하기를 바라는 조선의 정치철학이 정문의 이름에 담긴 셈이다.

 

그러나 광화문의 역사는 조선 왕조에만 머물지 않는다. 광복 3년 뒤인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 수립 선포식이 경복궁 안 중앙청 앞 광장에서 열렸다. 경복궁과 광화문으로 이어지는 공간은 대한민국이 국가로서 첫발을 내디딘 역사적 무대가 됐다. 광화문은 조선의 궁궐을 지키던 정문을 넘어 대한민국의 출발을 품은 역사적 관문이 된 것이다.

 

광화문은 민주주의의 역사도 함께 품고 있다. 1960년 4·19혁명과 1987년 6월항쟁을 거치면서 서울 도심은 민주주의를 열망하는 시민들의 함성으로 가득 찼다. 2002년 월드컵 거리응원은 광화문 일대에 새로운 시민 광장문화를 만들어냈고, 이후 촛불집회에 이르기까지 광화문은 시민들이 국가와 사회의 방향을 묻고 제 뜻을 표현하는 공간으로 자리 잡았다.

 

여기에 역사의 역설이 있다. 600년 전 ‘광화’가 임금의 덕화가 백성에게 널리 미치기를 바라는 뜻이었다면, 오늘날 광화문 앞에서 정치의 방향을 묻고 국가의 미래를 결정하는 주체는 시민이다. ‘왕의 문’ 앞에 ‘시민의 광장’이 열린 것이다. 광화문은 그렇게 왕조의 공간에서 국민의 공간으로 의미를 확장했다.

 

한글의 역사에서도 광화문은 특별하다. 한글이 탄생한 경복궁의 정문이 바로 광화문이다. 세종대왕이 백성을 위해 새로운 문자를 창제한 공간과 그 문을 지키는 광화문이 마주하고 있다. 2009년 광화문광장에 세종대왕 동상이 들어서면서 이 역사적 인연은 오늘날 다시 살아났다.

 

광화문 일대에 한글학회와 주시경 마당, 조선어학회 순국선열 기념탑, 한글가온길 등이 자리하고 있는 것도 이 공간이 한글의 역사와 깊은 인연을 맺고 있기 때문이다. 광화문은 단순한 건축물이 아니라 세종의 애민정신과 한글의 창제·수호 역사를 상징하는 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광화문의 600년은 영광만의 역사가 아니다. 수난과 복원의 역사이기도 하다. 임진왜란으로 불탄 광화문은 고종 때 중건됐지만,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 건립 과정에서 위치가 옮겨졌다. 6·25전쟁을 거치면서 문루마저 크게 훼손됐다.

 

1968년에는 콘크리트로 복원됐지만, 본래의 위치와 축에서 벗어나 있었다. 이후 오랜 조사와 복원 작업이 이어졌고, 마침내 2010년 광화문은 본래의 위치와 옛 모습을 되찾았다. 수많은 시련을 겪고도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 광화문은 우리 역사의 상처와 회복을 동시에 보여주는 살아 있는 문화유산이다.

 

그래서 광화문의 600년은 단순히 한 건축물의 역사가 아니다. 왕조의 흥망과 식민지배의 상처, 광복과 대한민국의 출범, 민주주의를 향한 시민의 열망, 그리고 전통문화와 한글의 정신이 켜켜이 쌓인 대한민국 현대사의 축소판이다.

 

그런데 우리는 아직 광화문이라는 이름이 탄생한 날을 함께 기억하는 날이 없다. 이제는 ‘광화문의 날’을 만들 때가 됐다. 거창한 국가기념일이나 공휴일을 만들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600년 전 광화문이라는 이름에 담긴 역사적 의미를 국민과 세계 한인이 함께 되새길 수 있는 역사문화의 이정표를 세우자는 것이다.

 

12월 4일 하루만이라도 세종의 정치철학과 한글, 광화문의 600년 수난과 복원, 대한민국 정부의 출범, 그리고 광장을 지켜온 시민의 역사를 함께 기억해보자. 세종이 ‘광화’라는 이름에 바른 정치와 덕치가 세상에 널리 퍼지기를 바라는 뜻을 담았다면, 이제 우리는 그 이름 위에 민주주의와 시민정신이라는 새로운 시대정신을 더할 수 있을 것이다.

 

세계의 도시에는 그 도시와 국가를 상징하는 공간이 있다. 뉴욕에는 자유의 여신상이 있고, 파리에는 에펠탑이 있으며, 베이징에는 천안문이 있다. 대한민국에는 광화문이 있다. 광화문은 조선의 문이면서 대한민국의 문이다. 왕의 공간이면서 시민의 광장이고, 과거와 미래를 잇는 문이다. 한글과 민주주의, 역사와 문화, 국가와 시민을 함께 품은 대한민국의 얼굴이다.

 

오는 12월 4일, 광화문이라는 이름이 세상에 나온 지 600년을 맞는다. 이제 그날을 ‘광화문의 날’로 기억하자. 600년의 역사를 기념하는 데 그치지 않고, 앞으로의 600년을 어떤 나라로 만들어갈 것인지 함께 생각하는 날로 만들자.

 

그것이 지난 600년의 세월을 견뎌온 광화문에 보내는 우리의 헌사이자, 다음 600년을 향한 약속이 될 것이다.

 

허준혁 유엔피스코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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