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 기술 발달로 인한 디지털성범죄 고도화에 맞춰 대응체계도 바뀌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전문가들은 디지털 성착취물 삭제에 집중하는 ‘사후적 대응’이 아닌 피해 유포 차단과 교육 등 ‘사전적 대응’ 방향으로 법과 제도를 강화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27일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는 서울 중구 페럼타워에서 ‘디지털 성폭력 대응의 다음 단계를 묻다’ 라운드테이블을 개최했다.
이번 행사는 디지털 성폭력에 대응하는 각 분야 전문가들과 함께 현행 대응 체계의 한계를 점검하고, 피해 예방과 대응 강화를 위한 제도 개선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마련됐다.
행사에는 김병준 방송미디어통신심의위원회 확산방지팀장, 김여진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대표, 안지현 JTBC 기자, 조순애 중앙디지털성범죄피해자지원센터 역량강화팀장, 조승노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대 팀장, 허민숙 국회입법조사처 조사관이 참여했다.
조승노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대 팀장에 따르면 경찰은 2024년 11월∼2025년 10월 총 4413건의 디지털성범죄가 발생했고 이 중 3557명(3411건)을 검거했다. 이는 전년 같은 기간 대비 각각 35.0%, 50.1% 증가한 수치다.
특히 피의자의 상당수가 인공지능(AI) 등 첨단 기술 활용에 능한 10대 및 20대였다. 조 팀장은 “피의자의 47.6%가 10대였으며, 20대가 33.2%를 차지하고, 딥페이크 범죄의 경우 10~20대가 90% 이상을 차지한다”며 “AI 활용에 능한 젊은 세대가 주로 범행을 한다”고 말했다. 조 팀장은 또 “가장 큰 문제는 이들이 디지털성범죄를 범죄라고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처럼 디지털성범죄는 AI를 통해 발전하고 피의자와 피해자의 연령대는 낮아졌지만 이를 규율할 법과 제도는 제자리걸음 중이다.
허민숙 국회입법조사처 조사관에 따르면 지난 30년간 디지털 성폭력 대응은 1998년 ‘촬영의 시대’에서 2019년 ‘유통의 시대’, 2024년 ‘합성의 시대’로 진화했고, 현재는 이 세 가지가 중첩돼 복합적 생태계를 형성하고 있다.
허 조사관은 “불법사이트의 접속차단은 여전히 국내에서만 유효하고 가해자의 상당수인 청소년에 대한 처벌 강화는 예방적 대안이 될 수 없다. 관련 법안은 다양하지만 부처 간 칸막이로 피해 구제가 끊기는 문제들도 있다”며 “이러한 한계들로 법이 여전히 디지털 성범죄 피해의 현재에 도달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허 조사관은 “해외 플랫폼에도 국내 대리인 및 긴급차단 책임을 의무화해 선제적으로 안전 설계를 할 수 있도록 하고 소년사법-학교 보호체계-디지털 시민성 교육의 끊김 없는 연계가 필요하다”며 “이외에도 정책의 성공 여부를 피해 영상물을 몇십만건 삭제했는지에 맞추는 게 아니라, 최초 신고부터 차단까지 얼마나 걸렸는지, 피해자가 일상 회복까지 얼마나 걸렸는지 등을 측정할 수 있어야 한다”고 밝혔다.
디지털성범죄 관리의 패러다임 전환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처벌과 사후적 수사 협조에만 매달리는 과거 방식으로는 참혹한 피해의 확산을 막을 수 없고, 위험을 예측하고 발생 즉시 차단하는 ‘선제적 디지털 정의’로의 전면적인 정책 전환이 시급하다는 것이다.
피해 영상 등의 삭제·차단 단계에서는 해외 공조를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조순애 디지털성범죄피해자지원센터 역량강화팀장은 “센터 전체 업무의 90%를 삭제 지원이 차지한다”며 “2만6658개 사이트 가운데 95.5%가 국외 서버를 운영하는 사이트여서 국제협력이 매우 중요한 시점”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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