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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F 첫 노동절…최루탄 연기 뒤덮은 종로 거리 [사진기자 이제원의 30년 된 외장하드]

관련이슈 디지털기획 , 사진기자 이제원의 30년 된 외장하드 , 세계뉴스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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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원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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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dak 필름 한 롤 서른여섯 번의 셔터를 누르며 사진기자 생활을 시작했다. 카메라에 표시된 필름 카운터가 25 정도가 되면 고민이 시작됐다. 필름을 새걸로 갈아야 하나 남은 거로 찍어도 될까? 제한된 서른여섯 번의 셔터를 누르는 순간의 신중함과 긴장감, 설렘은 지금의 디지털카메라 시대에는 느낄 수가 없는 감정이다.

 

사진기자는 본인이 취재했던 사진을 나름의 방식으로 보관한다. 개인의 차이는 있지만 나는 사진의 중요도를 떠나 보관을 많이 하는 사진기자이다. 역사의 중요했던 순간도 있었고, 상황이 기억도 없는 시답지 않은 사진도 있다. 아이들이 커가는 모습을 담은 기념사진도 있고 취재와 출장 중에 보이는 나의 모습도 있다.

 

아주 먼 옛날의 모습은 아니지만 타임머신을 타고 열어본 나의 외장하드를 독자들과 같이 꺼내보고 추억하는 시간을 가져보려 한다.

1998년 5월 1일 노동절을 맞아 서울 종묘에서 집회를 마친 참가자들과 경찰이 종로 일대에서 대치하고 있다. 경찰이 발사한 최루탄 연기가 도로를 뒤덮고 있다. 이제원 기자
 1998년 5월 1일 노동절을 맞아 서울 종묘에서 집회를 마친 참가자들과 경찰이 종로 일대에서 대치하고 있다. 경찰이 발사한 최루탄 연기가 도로를 뒤덮고 있다. 이제원 기자
1998년 5월 1일 노동절을 맞아 서울 종묘에서 집회를 마친 참가자들과 경찰이 종로 일대에서 대치하고 있다. 경찰이 발사한 최루탄 연기가 도로를 뒤덮고 있다. 이제원 기자
1998년 5월 1일 노동절을 맞아 서울 종묘에서 집회를 마친 참가자들과 경찰이 종로 일대에서 대치하고 있다. 경찰이 발사한 최루탄 연기가 도로를 뒤덮고 있다. 이제원 기자
1998년 5월 1일 노동절을 맞아 서울 종묘에서 집회를 마친 참가자들과 경찰이 종로 일대에서 대치하고 있다. 경찰이 발사한 최루탄 연기가 도로를 뒤덮고 있다. 이제원 기자
 1998년 5월 1일 노동절을 맞아 서울 종묘에서 집회를 마친 참가자들과 경찰이 종로 일대에서 대치하고 있다. 경찰이 발사한 최루탄 연기가 도로를 뒤덮고 있다. 이제원 기자
1998년 5월 1일 노동절을 맞아 서울 종묘에서 집회를 마친 참가자들과 경찰이 종로 일대에서 대치하고 있다. 경찰이 발사한 최루탄 연기가 도로를 뒤덮고 있다. 이제원 기자
1998년 5월 1일 노동절을 맞아 서울 종묘에서 집회를 마친 참가자들과 경찰이 종로 일대에서 대치하고 있다. 경찰이 발사한 최루탄 연기가 도로를 뒤덮고 있다. 이제원 기자
1998년 5월 1일 노동절을 맞아 서울 종묘에서 집회를 마친 참가자들과 경찰이 종로 일대에서 대치하고 있다. 경찰이 발사한 최루탄 연기가 도로를 뒤덮고 있다. 이제원 기자
1998년 5월 1일 노동절을 맞아 서울 종묘에서 집회를 마친 참가자들과 경찰이 종로 일대에서 대치하고 있다. 경찰이 발사한 최루탄 연기가 도로를 뒤덮고 있다. 이제원 기자

매캐하고 희뿌연 최루탄 연기가 서울 종로 한복판을 삼켰다. 연기 너머로 수많은 깃발이 나부끼고, 도로 앞쪽에는 헬멧을 쓴 검은 진압복의 경찰들이 줄지어 서 있다. 깨진 보도블록과 돌멩이가 나뒹구는 도로 위로 사람들이 뛰기 시작한다. 1998년 5월 1일 노동절, 종묘에서 시작된 집회가 종로 일대로 이어지며 경찰과 시위대가 충돌하던 순간이다.

 

당시는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을 받은 지 불과 몇 달 뒤였다. 기업마다 구조조정이 이어졌고 ‘정리해고’와 ‘실업’은 직장인들의 삶을 뒤흔드는 현실이 됐다. 그해 2월 정리해고제와 근로자 파견제가 법제화되면서 노동계의 반발도 거셌다.

 

노동절을 맞아 종묘공원에 모인 노동자와 학생들은 정리해고 철폐와 고용안정 등을 요구하며 거리로 나섰다. 집회를 마친 참가자들이 종로를 따라 이동하는 과정에서 경찰과 충돌했다. 경찰은 최루탄을 발사했고, 시위대 쪽에서는 돌멩이가 날아들었다. 도심은 순식간에 매캐한 연기와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최루탄은 눈물샘을 자극하여 눈물을 흘리게 하는 약이나 물질을 넣은 탄환을 의미한다. 주로 시위 진압용으로 사용된다.

 

사진을 들여다보면 당시 시위 문화가 고스란히 보인다. 서울의 중심 종로 8차선 도로를 가득 매운 각종 깃발과 머리띠를 두른 참가자들, 방패와 진압봉으로 무장한 시위 진압 경찰들과 거대한 경찰 장갑차까지. 최루탄 연기 사이로 경찰과 시위대가 서로를 마주 보고 있다. 1980~90년대 거리에서 반복됐던 익숙한 풍경이었다.

 

1996년 세계일보 사진부에 입사를 하니 사진 장비를 담당하던 선배로부터 필름 카메라 바디 2대, 16-35mm, 24-80mm, 80-200mm 렌즈를 지급받았다. 그리고 방독면과 헬멧도 나눠주며 물었다. “너 방독면 쓸 줄 알아?" 질문에 “저 의경 나왔는데요.” 32개월 동안 시위를 진압하는 의경으로 군 생활을 한 저는 방독면 빨리 쓰는 거야말로 선수였다. 시위 현장에서 최루탄 연기로부터 나를 보호하려면 방독면 쓰는 속도가 생명이다.

하지만 이 장면은 그 시대의 끝자락이기도 했다. 경찰은 1998년 집회·시위 현장에서 최루탄 사용을 크게 줄였고, 이듬해인 1999년을 ‘무최루탄 원년’으로 선언했다. 1998년 노동절 종로를 뒤덮었던 최루탄 연기는 그렇게 한국 집회·시위 문화가 바뀌어가던 경계에 놓여 있었다.

 

따라서 이 사진의 역사적 의미가 꽤 크다. 1998년 5월 1일 노동절 시위는 한국의 대규모 집회에서 최루탄이 일상적으로 등장하던 시대가 끝나가던 시점의 기록이다. 그해 9월 만도기계 사태에서 한차례 더 사용된 뒤 사실상 최루탄은 집회 현장에서 사라졌다. 경찰대학 자료에서도 1998년 최루탄 사용량이 전년보다 급감했고, 1999년 이후에는 사용하지 않은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28년이 흐른 2026년 지금, 검은 진압복의 전경 대열과 최루탄, 시위대의 돌멩이가 맞서는 모습은 오래된 필름 사진 속 한 장면이 됐다. 그러나 사진 속 사람들의 표정에는 생전 처음 겪은 IMF 외환위기라는 거대한 충격을 온몸으로 견뎌야 했던 시대의 긴장이 남아 있다.

 

오래된 필름 한 장이 기억하는 것은 충돌의 순간만이 아니다. 일자리를 잃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이 거리를 채웠던 암울했던 1998년, 그리고 최루탄으로 상징되던 시위 진압 방식이 서서히 막을 내리던 시간이다. 서울 한복판 종로를 뒤덮은 희뿌연 연기 속에 한 시대의 마지막 풍경이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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