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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논 활용한 여름철 풀사료 자급의 길을 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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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변화와 국제 곡물가격의 급격한 변동은 우리 농업과 축산업이 피할 수 없는 과제가 됐다. 세계 곳곳에서 이상기상과 공급망 불안이 반복되면서 안정적인 식량과 사료 확보의 중요성이 어느 때보다 커지고 있다. 특히 사료비가 생산비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축산업에서 안정적인 풀사료 생산 기반은 산업의 지속 가능성을 좌우하는 핵심 조건이다.

국내 농업도 전환점에 서 있다. 쌀 소비 감소와 공급 과잉이 이어지면서 논을 벼 생산에만 활용하던 방식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요구가 커지고 있다. 정부가 전략작물직불제를 통해 벼 이외 작물의 논 재배를 지원하는 것도 이러한 변화와 맞닿아 있다. 여름철 논에서 풀사료를 생산한다면 쌀 수급을 조절하는 동시에 축산농가에 필요한 풀사료를 국내에서 공급할 수 있다.

조용민 농촌진흥청 국립축산과학원장
조용민 농촌진흥청 국립축산과학원장

다만 여름철 논에서 풀사료를 재배하는 일은 쉽지 않다. 우리나라 여름은 장마와 집중호우가 잦고, 논은 밭보다 배수가 원활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생산성이 높은 사료용 옥수수나 수수류도 침수와 습해에 취약해 농가에서는 벼를 대신할 여름철 사료작물을 선택하는 데 어려움이 있었다.

이러한 조건에서 주목받는 작물이 ‘사료피’다. 사료피는 내습성이 우수한 여름철 풀사료 작물로, 고온다습한 여름철에도 비교적 안정적으로 자란다. 배수 여건이 좋지 않은 논에서도 재배할 수 있어 우리나라의 기후와 논 환경에 적합하다.

농촌진흥청은 이러한 현장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2016년부터 국내외 유전자원을 수집·평가하며 품종 개발 연구를 지속해 왔다. 그 결과 조생종 ‘조온’, 중생종 ‘다온’에 이어 올해 만생종 ‘만온’을 개발함으로써 국내 최초로 사료피 조·중·만생 품종 체계를 완성했다. 새 품종 ‘만온’은 기존 제주 재래종보다 건물수량이 약 13% 높다.

수확 이후의 저장·이용도 비교적 수월하다. 사료피는 줄기가 가늘고 건조가 빨라 수확 후 3∼6일이면 건초나 저수분 담근먹이로 만들 수 있다. 개선된 비닐 감기 기술을 적용하면 비닐 사용량을 기존보다 최대 40% 줄일 수 있으며, 동계 풀사료 생산에 사용하던 예취기와 원형 베일러 등 기존 농기계도 그대로 활용할 수 있다. 농가가 새로운 장비를 마련하지 않고도 재배할 수 있다는 점은 현장 보급을 확대하는 데 큰 장점이다.

겨울철 대표 풀사료인 이탈리안 라이그라스와 이모작할 수 있다는 점도 눈여겨볼 만하다. 전략작물직불금을 포함한 경제성 분석에서도, 이 이모작 체계의 총 순수익은 ‘식용벼와 이탈리안 라이그라스’ 체계보다 약 23% 높았다. 사료피 건초 역시 건물 기준으로 수입 건초용 짚류보다 약 31% 저렴하게 공급할 수 있어 축산농가의 사료비 부담을 줄이는 데 도움이 된다.

오늘날 식량안보는 사람이 먹는 곡물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가축이 먹는 사료를 얼마나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는지도 국가의 식량 생산 기반과 직결된다. 국제 곡물가격과 운송 여건에 따라 축산농가의 생산비가 크게 흔들리는 구조를 완화하려면 우리 환경에 맞는 품종을 개발하고, 국내 농경지에서 풀사료를 생산하는 기반을 꾸준히 넓혀야 한다.

사료피는 쌀 수급 문제와 풀사료 부족 문제를 함께 풀어갈 수 있는 현실적인 대안이다. 논의 활용도를 높이면서 경종농가에는 새로운 소득 기회를, 축산농가에는 안정적인 국산 풀사료를 제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우수 품종의 종자를 안정적으로 공급하고 재배·수확 기술을 현장에 확산해 사료피가 여름철 논을 대표하는 풀사료 작물로 정착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하겠다.

 

조용민 농촌진흥청 국립축산과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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