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수병에서 시작된 ‘무라벨’ 바람이 차와 이온음료, 커피까지 번지고 있다.
초기 무라벨 제품이 플라스틱 라벨을 없애 분리배출 편의성을 높이는 데 초점을 맞췄다면 최근에는 제로 칼로리와 무당, 디카페인 등 음용 부담을 낮춘 제품에 무라벨 패키지를 함께 적용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음료 자체는 가볍게, 버릴 때 과정은 간단하게 만들겠다는 전략이다.
17일 업계에 따르면 식음료 기업 일화는 프리미엄 블렌딩 티 ‘일화차시 호박팥차’에 1.5L 제품을 추가하고 기존 500ml 제품과 함께 무라벨 패키지를 적용했다.
국산 볶은 팥과 늙은 호박을 배합한 RTD(Ready-To-Drink) 차 음료로 카페인과 당류가 들어 있지 않은 0kcal 제품이다.
500ml는 휴대용으로, 1.5L는 가정이나 사무실 등에서 여러 차례 나눠 마실 수 있도록 용량을 이원화했다. 라벨을 따로 떼지 않고 분리배출할 수 있다는 점도 내세웠다.
웅진식품은 ‘이온더핏 제로’의 무라벨 제품인 ‘이온더핏 제로 에코’를 선보였다.
기존 500ml에 이어 340ml 용량까지 추가했다. 제로 칼로리·제로 슈가라는 제품 특성에 무라벨 패키지를 결합하고, 러닝이나 야외활동 때 들고 다니기 쉬운 소용량 제품까지 마련한 것이다.
쟈뎅도 ‘까페리얼 아메리카노 디카페인’ 350ml를 라벨 제품과 무라벨 제품으로 나눠 내놨다.
브라질과 콜롬비아 원두를 블렌딩한 디카페인 커피로, 카페인 섭취를 줄이려는 소비자를 겨냥했다. 같은 내용물이라도 소비자가 패키지 형태까지 선택할 수 있도록 한 셈이다.
무라벨 영역은 이미 생수를 넘어 상당히 넓어졌다.
빙그레는 대표적인 사례다. ‘아카페라 심플리’를 무라벨 커피로 운영하고 있으며 지난해 6월에는 ‘아카페라 심플리 디카페인 로어슈거 라떼’까지 출시했다.
이 제품은 식품의약품안전처가 고시한 액상커피 유형 당류 평균값보다 당류를 15% 낮추고 콜롬비아산 디카페인 커피 추출액을 사용했다. 여기에 필름 라벨을 쓰지 않는 무라벨 패키지를 적용했다. 빙그레에 따르면 아카페라 심플리 패키지는 재활용 최우수 등급도 받았다.
빙그레의 무라벨 커피 시도는 최근 시작된 것은 아니다. 2020년 출시한 아카페라 심플리는 국내 커피 제품 가운데 이른 시기에 무라벨 콘셉트를 적용했고 출시 6개월 만에 판매량 100만개를 넘기기도 했다. 당시 아메리카노와 디카페인 아메리카노를 함께 선보였다.
과거 무라벨 자체가 차별화 요소였다면 최근에는 디카페인과 저당을 함께 내세우는 식으로 제품 콘셉트가 한 단계 더 세분화된 모습이다.
차 음료에서는 광동제약이 무라벨 제품군을 넓혀왔다.
광동제약은 2023년 ‘광동 옥수수수염차’, ‘광동 헛개차’, ‘광동 밀싹보리차’ 등 차 음료의 무라벨 제품을 선보였다. 라벨을 없애 플라스틱 사용을 줄이고 투명 페트병을 분리배출할 때 라벨을 제거해야 하는 과정을 없애는 데 초점을 맞췄다.
현재 광동제약 공식 온라인몰에서도 옥수수수염차 그린 무라벨 330ml를 비롯해 헛개차, 밀싹보리차 등의 무라벨 제품이 판매되고 있다.
무라벨 패키지가 한때 한정적으로 출시되는 ‘친환경 버전’에서 벗어나 일반 제품의 선택지 중 하나로 자리 잡은 사례다.
무라벨이 생수 바깥으로 확산된 출발점은 더 거슬러 올라간다.
코카-콜라사는 2021년 국내 최초 무라벨 탄산음료인 ‘씨그램 라벨프리’를 시작으로 ‘토레타!’, ‘강원 평창수’, ‘휘오 순수’ 등에 라벨프리 패키지를 적용했다. 이후 코카-콜라와 스프라이트까지 무라벨 제품으로 범위를 넓혔다.
특히 코카-콜라는 기존 라벨을 단순히 제거하는 데 그치지 않고 병 자체에 브랜드 로고를 음각으로 넣거나 고유한 병 모양을 활용하는 방식을 택했다. 라벨이 없어도 제품을 구분할 수 있도록 패키지 자체를 브랜드 자산으로 활용한 것이다.
결국 최근 무라벨 제품 확대는 갑자기 등장한 새로운 흐름이라기보다, 생수와 탄산에서 시작된 패키지 변화가 차·이온음료·커피로 넓어지면서 ‘제로·저당·디카페인’이라는 소비 트렌드와 다시 결합하는 흐름에 가깝다.
올해는 생수 시장에서 무라벨 전환이 한층 빨라졌다.
정부는 2026년부터 온라인과 묶음 단위로 판매되는 국내 제조 먹는샘물을 중심으로 무라벨 방식을 시행하고 있다. 오프라인 낱병 판매 제품은 유통 현장의 QR코드 인식과 결제 문제 등을 고려해 단계적으로 전환한다. 정부는 먹는샘물 무라벨 제도로 연간 약 2270t의 플라스틱 사용을 줄일 수 있을 것으로 추산했다.
생수 시장에서 무라벨이 사실상 새로운 표준으로 자리 잡으면 다른 음료에서도 라벨을 반드시 붙여야 한다는 기존 패키지 관행이 더 빠르게 약해질 가능성이 있다.
다만 ‘무라벨=친환경 제품’으로 단순화할 필요는 없다. 라벨을 없애면 라벨을 떼는 과정이 사라져 분리배출은 편리해지지만, 페트병과 병뚜껑 등 용기 자체의 플라스틱 사용량까지 없어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업계의 경쟁 포인트도 달라지고 있다. 이제는 라벨을 없앴다는 사실만으로 차별화하기보다 제로·저당·디카페인 등 제품 속성과 소용량·대용량 구성, 분리배출 편의를 한꺼번에 묶는 방향으로 이동하는 모습이다.
생수에서 시작된 ‘라벨 없는 페트병’이 음료업계 전반의 기본 선택지로 자리 잡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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