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킨을 주문하러 간 매장에서 인공지능(AI)이 만든 영화를 보고, 사람과 로봇의 움직임을 연구한 작품을 만난다. 다음 전시장에는 미래의 치킨 배달을 상상한 모빌리티가 등장한다.
유통업계의 기술 경쟁이 주방을 넘어 소비자가 머무는 공간으로 번지고 있다. 조리로봇으로 생산성을 높이는 단계를 지나 AI 콘텐츠와 대학 산학협력, 미래 모빌리티까지 브랜드 경험에 끌어들이는 기업들이 잇따르고 있다.
16일 업계에 따르면 오븐요리 프랜차이즈 굽네를 운영하는 지앤푸드는 홍익대학교와 서울 마포구 굽네 플레이타운에서 ‘AI·로봇·모빌리티 시리즈 전시’를 진행하고 있다.
지난달 AI 영상제를 시작으로 로봇·피지컬 사용자경험(UX), 미래 모빌리티까지 서로 다른 분야를 하나의 릴레이 전시로 묶었다. 단순히 치킨 신제품을 알리는 팝업스토어와는 성격이 다르다.
굽네가 홍익대와 마련한 이번 프로젝트는 지난 7월 7일 시작해 이달 30일까지 이어지는 3부작 전시다.
첫 전시인 ‘제3회 순수 100% AI 영상제’는 지난달 26일 막을 내렸다. 홍익대 시각디자인과 학생 28명이 생성형 AI를 이용해 제작한 29편의 영상을 선보였다. 굽네를 직접 소재로 삼은 브랜드 필름도 4편 포함됐다.
학생들은 굽네 브랜드와 제품을 분석한 뒤 이를 AI 영상으로 다시 해석했다. 영상 제작에 그치지 않고 전시 공간 구성과 작품 배치, 현장 설치에도 직접 참여했다.
두 번째 전시인 ‘형태를 만드는 시간: 생각·몸·감각의 유형화’도 지난 13일까지 굽네 플레이타운 4층 굽네 갤러리에서 진행됐다.
홍익대 HIDE LAB의 연구 결과물을 소개한 전시로, 시각디자인과 기계·시스템디자인공학을 결합해 제품과 로봇, 모빌리티 같은 물리적 인터페이스가 사람과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를 보여줬다.
마지막 전시는 미래 이동수단으로 무대를 옮겼다.
‘동적 평형: 욕망과 책임의 균형’은 이달 15일부터 30일까지 같은 장소에서 열린다. 홍익대 산업디자인 모빌리티디자인 분야 작품을 통해 더 빠르고 편리한 이동을 원하는 인간의 욕망과 사회·환경·미래 세대에 대한 책임 사이의 균형을 조명한다.
특히 굽네 브랜드를 모티브로 한 딜리버리 모빌리티도 선보인다. 치킨 배달이라는 익숙한 일상을 미래 이동기술과 연결한 셈이다.
굽네는 홍익대를 비롯해 이화여대, 국민대, 강원대 등 4개 대학과 산학협력 관계를 구축했다. 지난해에는 전국 17개 대학 약 240명의 예술·도예 전공 학생이 참여한 도자 전시 ‘다다닭 2025’를 열기도 했다.
매장을 단순히 제품을 판매하는 공간이 아니라 젊은 창작자와 소비자가 만나는 문화 플랫폼으로 활용하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다른 치킨 브랜드의 기술 접근법은 보다 직접적이다. 사람 대신 로봇을 실제 주방에 투입하는 방식이다.
bhc는 LG전자와 치킨 조리로봇 ‘튀봇’ 관련 업무협약을 맺고 조리 자동화를 추진해왔다.
뜨거운 기름 앞에서 반복되는 튀김 작업은 치킨 매장에서 노동 강도가 높은 업무 가운데 하나다. 로봇을 투입하면 일정한 조리 품질을 유지하면서 직원들의 반복 작업 부담을 줄일 수 있다는 점에서 외식업계의 관심이 높다.
바른치킨도 일부 매장에서 치킨을 튀기는 로봇 ‘바른봇’을 도입했다. 로봇이 반복적인 튀김 업무를 맡으면서 직원들이 뜨거운 기름과 유증기에 노출되는 시간을 줄이고, 주문이 몰리는 시간대에도 일정한 품질을 유지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굽네가 AI와 로봇을 소비자가 체험하는 ‘콘텐츠’로 풀었다면 bhc와 바른치킨은 로봇을 실제 매장 운영을 돕는 ‘생산설비’로 끌어들인 셈이다.
대형 식품기업은 한발 더 나아가 관련 기술을 가진 기업을 직접 발굴해 사업에 연결하고 있다.
CJ제일제당은 올해 푸드테크 스타트업 육성 프로그램 ‘프론티어랩스’ 모집 분야에 식품과 연계한 AI·로봇 기술을 포함했다.
선발 기업에는 CJ제일제당 현업 부서와 기술검증 및 사업 협력 기회를 제공하고, 우수 기업에 대해서는 전략적 투자까지 검토하는 방식이다.
AI와 로봇이 식품기업의 일회성 홍보 소재를 넘어 실제 사업 효율과 신성장 동력을 위한 투자 대상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의미다.
푸드테크 분야에서 AI와 로봇의 활용 범위도 넓어지고 있다. 생산시설 자동화부터 품질관리, 물류, 조리, 소비자 맞춤형 서비스까지 식품이 만들어져 소비자에게 전달되는 전 과정에서 적용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기업과 대학이 손잡고 젊은 소비자의 아이디어를 실제 제품에 반영하려는 움직임도 이어지고 있다.
농심은 서울디자인재단이 운영한 대학 협업 프로그램에 참여해 대학생들과 제품 디자인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LG전자와 에몬스 등 다른 기업도 함께 참여했다.
학생들이 기업이 제시한 과제를 분석하고 기존 제품과 브랜드의 문제점을 찾아 실제 적용 가능한 디자인을 제안하는 방식이다. 기업 입장에서는 젊은 세대의 시각을 제품과 브랜드 전략에 반영할 수 있고, 학생들은 기업과 실제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경험을 얻는다.
굽네가 홍익대 학생들의 AI 영상과 로봇·모빌리티 연구 결과를 자사 공간에 전시하는 것도 같은 흐름에 놓여 있다.
공통점은 분명하다. 식품·외식기업의 경쟁 무대가 더 이상 ‘무엇을 먹을 것인가’에만 머물지 않는다는 점이다. AI가 광고와 영상을 만들고 로봇이 치킨을 조리하며, 대학생이 기업의 미래 제품과 배달수단을 설계하는 단계까지 영역이 넓어지고 있다.
치킨을 먹기 위해 찾던 공간이 AI 콘텐츠를 보고 로봇과 미래 모빌리티를 경험하는 브랜드 실험실로 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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