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적인 폭염으로 인해 닷새 간 쉬어갔던 KBO리그가 재개된 11일 서울 잠실구장. 한화와 두산의 맞대결이 펼쳐진 이날 마운드에는 왕옌청과 곽빈이 선발로 나섰다. 왕옌청은 2026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 대만 대표팀에 선발됐고, 곽빈도 ‘와일드 카드’ 자격으로 한국 대표팀 투수진에 합류했다.
아시아 야구 최강인 일본이 아시안게임에 사회인 야구 선수들을 보내기 때문에 아시안게임 야구 결승에서는 객관적인 전력상 한국과 대만이 만날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결승 선발 매치업은 이날 선발 격돌을 펼친 곽빈과 왕옌청이 선발로 나설 게 유력하다. 올 시즌 한화의 실질적 에이스 역할을 하고 있는 왕옌청은 대만 투수진 중 한국 타자들을 가장 잘 알고 있는 ‘지한파’이고, 곽빈은 두산을 넘어 올 시즌 리그 최고의 토종 에이스로 올라섰다.
미리 성사된 아시안게임 결승 매치업에서 곽빈이 웃었다. 곽빈은 최고 157km에 이르는 대포알 포심 패스트볼에 커브, 체인지업, 슬라이더 등 변화구를 적절히 섞어 던지며 6이닝 동안 한화 타선을 단 2피안타 1볼넷 무실점으로 틀어막았다. 탈삼진은 무려 10개를 솎아내며 한화 타자들의 방망이를 연신 헛돌게 만들었다. 반면 왕옌청은 5이닝 8피안타 1볼넷 4탈삼진 3실점(3자책)에 그쳤다.
6회까지 81구를 던진 곽빈은 3-0으로 앞선 7회에도 오를 만한 투구수였지만, 김원형 감독은 일요일 등판을 고려해 7회부터는 마운드를 김정우에게 맡겼다. 그러나 김정우는 선두타자 강백호에게 솔로포를 맞았고, 노시환을 볼넷으로 내보내며 마운드를 내려왔다. 대신 올라온 투수는 김택연. 그러나 김택연도 채은성에게 벼락같은 투런포를 맞으면서 순식 간에 전광판의 점수판은 3-0에서 3-3 동점이 됐다. 곽빈의 시즌 10승이 아웃 카운트 하나 없이 김정우, 김택연 두 투수의 피홈런 2개에 날아갔다.
그러나 두산은 곧바로 이어진 7회말 공격에서 박준순이 결승 3점포를 터뜨리며 6-3 승리를 거뒀다.
비록 10승은 날아갔지만, 곽빈은 팀 승리에 만족하는 모습이었다. 경기 뒤 “10승이 무산된 데 아쉬움은 정말 전혀 없다. 내가 던진 날 팀이 이긴 걸로 만족한다”고 소감을 전했다. 이어 “(김)정우와 (김)택연이가 미안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동안 너무 좋은 모습으로 뒤를 지켜줬다. 앞으로 더 잘 막아줄 거라 기대한다”고 덧붙이며 에이스의 품격을 드러냈다.
6이닝 무실점을 통해 곽빈은 시즌 평균자책점을 2.66에서 2.53으로 낮췄다. 팀 후배인 최민석(2.64)을 제치고 이 부문 1위로 올라섰다. 이날 경기 전까지 138개로 탈삼진 1위였던 곽빈은 148개로 늘리며 이 부문 2위인 앨빈 로드리게스(롯데, 131개)와의 격차를 더욱 벌렸다.
시즌 9승으로 다승 공동 3위에 올라있는 곽빈은 다승 1위 그룹인 임찬규(LG), 왕옌청(한화), 올러(KIA)와 1승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다. 내심 다승-평균자책점-탈삼진 부문을 모두 휩쓰는 ‘트리플 크라운’도 노릴 수 있는 상황이지만, 아시안게임 출전으로 트리플 크라운 달성은 힘들 수도 있다.
그럼에도 곽빈은 올 시즌 커리어 하이가 확실 시 된다. 규정이닝을 채운 투수 중 포심이 가장 빠른 선수는 다름 아닌 곽빈이다. 평균 153.6km로 2위인 로드리게스(151.9km)보다 1마일 이상 더 빠르다. 외국인 투수의 전유물이었던 가장 빠른 공을 곽빈이 던지고 있는 셈이다. 곽빈 밑으로 2∼10위까지는 모두 외국인 투수들이고, 11위에 김진욱(롯데, 146.5km)의 이름이 올라있다. 곽빈의 존재감이 뚜렷하게 드러나는 대목이다.
예전에도 대포알 포심으로 유명했던 곽빈이지만, 기복이 심했던 이유는 딱 하나. 들쑥날쑥한 제구 때문이었다. 규정이닝을 채운 게 딱 두 번(2022, 2024)였고, 다승왕을 차지한 2024시즌에도 평균자책점이 4.24로 높았던 곽빈이지만, 올해는 커리어 첫 2점대 평균자책점 달성이 유력하다.
비결은 제구다. 커리어 내내 K/BB가 1~2를 오갈 정도로 탈삼진의 절반 가깝게 볼넷을 내주던 곽빈이지만, 올 시즌 K/BB는 무려 4.77. K/9는 커리어 처음으로 10을 넘어선 11.01개고, B/9는 2.31로 처음으로 2점대를 기록 중이다. 탈삼진은 늘어나고, 볼넷은 줄었으니 더 이상 곽빈에게 약점은 없어졌다고 보면 된다. ABS 도입으로 예전 같으면 볼 판정을 받았을 곽빈의 하이 패스트볼이 스트라이크 콜을 받는 경우가 많아졌고, 이를 알게 된 타자들은 곽빈의 하이 패스트볼에 방망이가 나갈 수밖에 없는 구조가 만들어졌다. 2018년 데뷔 후 최고의 성적을 내고 있는 곽빈이 아시안게임 출전이라는 불리함을 딛고 트리플 크라운과 투수 골든 글러브를 수상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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