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 시민 3병 뽑기도…시민, "재고 있어서 뽑은 것"
“평소 자판기에 생수가 없을 때도 있어요. 오늘은 있길래 여러 병 뽑았어요. 미안합니다.”
29일 서울 용산구 이촌동 인근에 위치한 무료 생수자판기 ‘용산구샘터’ 앞에서 세계일보 취재진과 만난 시민 A씨는 머쓱한 표정으로 이같이 말했다. 그의 손엔 생수 3병이 들려 있었다.
용산구는 지난달 24일부터 폭염 속 시민 편의와 온열질환 예방을 위해 무료 생수 자판기·냉장고인 ‘용산구샘터’를 용산역 등 19곳에서 운영하고 있다. 오는 8월24일까지 무료 생수가 제공된다.
한국의 무료 생수 자판기는 최근 외국인 관광객의 호평을 받으며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최근 이태원을 방문한 한 일본 관광객이 소셜미디어 엑스(X)에 “(길거리에) 평범하게 무료 물 자판기가 놓여 있어서 깜짝 놀랐다”며 “거의 탈수 상태였는데 그 자리에서 한 병을 거의 한 번에 들이켜고 살아났다”고 한국의 폭염 대책을 칭찬했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이러한 취지를 무색하게 하는 시민의식의 민낯을 볼 수 있었다. 자판기에는 ‘한 사람당 한 병씩만’이라고 쓰여있었지만 한 사람이 여러 병을 가져가는 사례가 빈번하게 목격됐다. 이 때문에 자판기는 순식간에 텅 비기 일쑤였다.
효창공원 내 자판기 앞으로 다가간 시민 B씨는 버튼을 눌러 뽑은 생수 한 병을 현장에서 순식간에 비운 뒤, 망설임 없이 다시 버튼을 눌러 한 병을 더 뽑아 들었다.
취재진이 1인 1병 제공인 것을 알고 있는지 질문하자, B씨는 “한 병을 다 마시면 다시 뽑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지나갈 때 한 번씩 생수가 있으면 뽑아 마시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당황한 기색으로 “바쁘다”며 서둘러 자리를 떴다.
자판기는 최대한 많은 시민이 이용할 수 있도록 연속 출고를 막기 위해 7~10초의 대기 시간이 설정돼 있다. 유동 인구가 많아 줄을 길게 서는 역 주변은 여러 병을 뽑는 경우가 없었지만, 유동 인구가 적은 공원 내부나 거주 구역 인근 자판기에서는 연속으로 뽑아가는 ‘얌체 출고’를 흔하게 볼 수 있었다.
구가 제시한 ‘1인 1병’ 원칙을 준수하던 대다수의 시민은 일부 시민이 여러 병을 가져가는 것에 아쉬움을 내비쳤다.
생업을 위해 리어카를 끌고 나왔다가 자판기를 찾은 윤모(76)씨는 한 병을 뽑은 뒤 “어제도 가방에 여러 병씩 담아가는 사람들을 봤다”며 “일부 시민들의 의식이 참 아쉽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효창공원앞역 3번 출구에서 만난 40대 최모씨도 “모두가 서로 조금씩 배려하는 시민의식이 발휘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촌동에서 만난 하모(51)씨는 “현실적으로 제지할 방법이 없는 만큼, 주민등록증 등을 활용한 최소한의 인증 절차 도입이 필요해 보인다”고 대안을 제시했다.
일부 시민의 이기적인 행동은 시민 편의를 위해 폭염 속에서 생수를 보충하며 고군분투하는 관리원들의 사기마저 떨어뜨리고 있었다. 관리원들은 하루 세 번 재고를 보충한다.
보광동의 한 아파트 단지 앞 자판기에서 생수를 채워넣던 관리자 김모(50)씨는 “여러 병씩 가져가는 사람이 많지만 현실적으로 제재하기 어렵다. 기분 나빠하시는 분들이 많기 때문”이라며 “그런 분들이 너무 많아 매번 말씀드리기에도 제한적인 실정”이라고 고충을 토로했다. 연신 땀을 흘리며 생수를 보충하는 그의 표정에는 아쉬움이 역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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