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행 도취돼 다음 역할 방해 안되게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돌아가려해”
“상황·서사가 강한 작품에 마음 끌려
그 안에서 살아 갈 확신서야 움직여”
“작은 배우 있어도 작은 배역은 없어
연기로 먹고 살 수 있으면 좋겠어요”
“우연히 인스타그램에서 드라마 ‘도깨비’, 영화 ‘완벽한 타인’ 등 제가 출연했던 작품들을 모아놓은 릴스(짧은 영상)를 본 적이 있어요. 그때 갑자기 예전 모습이 떠오르면서 울컥하더라고요. 지금 저는 계속 진행형인데도 잠깐 저를 돌아보게 만들어줘서 고맙더라고요. 생각해보면 저에겐 그 모든 순간이 전환점이었어요.”
지난 27일 서울의 한 카페에서 만난 배우 윤경호는 과거 출연작들을 떠올리다 울먹였다. 배우로 걸어온 시간에 대한 감사와 그 시간을 지나온 자신을 다시 마주한 순간이 겹치며 목소리가 떨렸다.
이날 자리는 최근 종영한 SBS ‘김부장’ 관련 인터뷰를 위해 마련됐다. 평범한 가장인 중년 남성이 딸을 되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내용을 담은 이 작품에서 윤경호는 주인공 김부장(소지섭)의 친구이자 직장 동료인 박진철을 연기했다. 드라마는 간결한 이야기와 화려한 액션, 배우들의 호연과 감각적인 연출로 단 2회 만에 15.7%의 시청률을 돌파하는 등 큰 사랑을 받았다.
특히 소지섭을 비롯해 최대훈, 주상욱 등 출연 배우들은 이번 작품을 통해 대중에게 더욱 강한 인상을 남겼다. 27년간 조연과 단역을 가리지 않고 다방면으로 활동해온 윤경호 역시 이번 작품으로 확실한 눈도장을 찍었다. 그럼에도 그는 들뜨기보다 자신을 다잡는 태도를 강조했다.
이날 그가 가장 자주 꺼낸 단어는 ‘제로베이스’였다. 윤경호는 “어제까지의 즐거움과 감사함이 나 혼자만의 것이 아니라 배우, 감독, 스태프 등이 다 같이 만든 것이었다”며 “그것에 도취돼 다음 역할을 준비하는 데 방해가 되지 않도록, 다시 처음부터 시작하자는 마음으로 돌아가려고 했다”고 말했다. 이어 “이 작품이 잘됐다고 다음 작품도 잘될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매번 새 출발선에 선다는 태도를 분명히 했다.
윤경호가 말하는 연기의 핵심은 ‘잘 보이는 연기’보다 ‘필요한 연기’에 가까웠다. 그는 “내가 캐릭터를 디자인하는 게 아니라, 감독님이 이런 인물이 필요하다고 나에게 말해줄 때 가장 힘이 난다”며 “나는 이타적인 사람이고 수동적인 사람이다. 누군가 나를 필요로 할 때 제일 신이 난다”고 했다. 캐릭터를 스스로 과시하기보다 작품 안에서 어떤 기능을 해야 하는지 먼저 생각하는 배우의 시선이 드러났다.
대본을 고르는 기준도 분명했다. 그는 “대사를 먼저 보지만, 결국 끌리는 건 그 상황이 만들어내는 감정”이라며 “등장만 해도 설레거나, 걷기만 해도 슬프거나, 보기만 해도 웃음이 나는 장면처럼 상황과 서사가 강한 작품에 끌린다”고 말했다. 또 “상사병처럼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 대본이 있다”며 “그 안에 내가 살아갈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 때 마음이 움직인다”고 설명했다.
이번 ‘김부장’은 윤경호에게 이미지 전환의 계기이기도 했다. 그동안 수다스럽고 친근한 인물로 자주 기억됐던 그는 박진철을 통해 강한 액션과 절제된 감정선, 팀워크가 중요한 캐릭터를 소화했다. 윤경호는 “콤플렉스라고 생각했던 말 많은 모습이 오히려 장점이 될 수 있다는 걸 느꼈다”며 “배우 조정석이 내 특징을 재미있게 봐줬고, 사람들이 그걸 호감으로 받아주는 순간 콤플렉스가 호감이 되는 경험을 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를 “빗장이 풀린 순간”이라고 표현했다.
액션에 임한 태도 역시 윤경호다운 방식이었다. 그는 박진철을 맡으며 “믿음을 주는 것이 먼저”라고 생각했다고 했다. “시청자가 내가 연기하는 박진철을 접할 때 디폴트(기본) 값은 마이너스라고 생각했다. 그 마이너스를 어떻게 채울지 고민했고, 그래서 액션에 집중했다”는 것이다. 그는 무술감독에게 자신이 소화할 수 있는 가장 난도 높은 액션을 요구했고, 특히 컨테이너 신처럼 강한 타격감을 보여주는 장면에 공을 들였다고 했다.
촬영 현장에서의 팀워크도 그의 연기 철학을 뒷받침했다. 소지섭에 대해서는 “말이 많지 않지만 늘 솔선수범하고, 보이지 않는 곳의 사람들까지 배려하는 멋있는 형”이라고 했고, 최대훈에 대해서는 “오랫동안 알아온 친구라 시작부터 들떴다”며 “두 사람이 너무 잘 맞아 현장에서 즉흥극과 상황극이 자연스럽게 살아났다”고 회상했다. 윤경호는 “그 호흡은 너무 그리울 것 같다”고 말할 만큼 현장 합을 소중하게 여겼다.
배우로서의 미래도 넓게 열어두고 있었다. 특별출연이든 조연이든, 비중이 크지 않아도 자신이 필요하다면 선뜻 나서겠다는 태도다. “작은 배우는 있어도 작은 배역은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한 윤경호는 끝내 “연기로 먹고살 수 있다면 좋겠다”고 했다. 역할의 크기보다 작품 안에서의 존재 이유를 더 중요하게 여기는 시선, 그리고 큰 욕심보다는 오래가는 배우, 누군가에게 필요한 배우가 되고 싶다는 윤경호의 바람이 묵직하게 담겨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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