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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수진의시네마포커스] 영화가 시대에 말을 거는 방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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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이라 일컫는 작품은 작가의 의도를 구현한 단일하고 고유한 의미를 갖는 대문자 텍스트가 아니다. 작품을 감상하는 관객의 나이, 심리적 상태, 그가 처한 상황에 따라 전혀 다른 의미로 말을 거는 무수한 소문자 텍스트들의 집합이다. 사실 이는 예술 작품에 국한된 이야기는 아니다. 같은 풍경을 보아도 풍경이 주는 느낌이 제각각이듯이 좋은 작품은 수용자에 따라 무한한 해석의 망을 확장해 가는 열린 텍스트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나는 차이밍량의 대표작 ‘애정만세’(1994)를 30년 전에 보았다. 베니스 영화제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이후 이 영화는 세계적으로 가장 중요한 예술영화 가운데 하나로 평가되었고 지금도 여전히 영화사의 중요한 작품으로 손꼽힌다. 그러나 당시 말레이시아 출신의 이방인 대만 감독이 내놓은 이 작품을 처음 접한 나는 이 영화 앞에서 이성적 이해를 뛰어넘는 정서적 접점을 찾지 못했다. 영화의 엔딩부에 공원에 홀로 앉아 하염없이 눈물 흘리는 여주인공의 모습은 내게 감정적으로 전이되지 않았고 나는 심리적 거리를 둔 채 그녀가 서럽게 우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영화는 시간을 살아남아 2K로 복원되었고 다시 4K로 복원되었으며 이제 한국에서 30여년 만에 재개봉을 앞두고 있다. 정말 오랜만에 이 영화를 다시 보았다. 그동안 나는 30년이라는 연식을 더한 중년의 여자가 되었다. 이러저러한 삶의 신산을 겪었고 삶의 어려움과 외로움, 두려움과 공허함도 그리 불편하지 않은 친구처럼 곁에 두게 되었다.

부동산 중개업자 여성 메이, 납골당 영업사원 샤오캉, 불법 노점상 아룽. 영화 속 세 주인공은 그럴듯하게 옷을 갖춰 입고 있지만 모두 영업용일 뿐이다. 부동산 매매 리스트에 오른 빈 주택에 우연히 모여든 세 사람을 공통으로 묶어줄 요소는 없다. 적당한 거짓말과 자잘한 불법 행위, 사악하다고까지 말하기 어려운 비루한 행위를 하며 각자 자신의 삶과 고군분투하다 우연히 스쳤을 뿐이다. 아룽을 빈집에 들인 메이는 허겁지겁 관계를 맺는다. 그녀의 처지를 눈치챈 아룽은 별 효과 없는 거짓말과 협박을 한다. 침대 밑에서 그들의 관계를 훔쳐보던 샤오캉. 인스턴트식품으로 요기를 때우는 메이의 관계에는 허기가 가득하고 샤오캉은 페트병으로 연신 물을 들이켜며 갈증을 해소한다. 우연히 서로의 존재를 알아챈 이들 사이에 대화는 없다. 그저 이 임시 공간에 대한 일시적 공유를 서로 조용히 묵인할 뿐이다. 어차피 그들은 떠날 사람들이다.

아룽과의 급한 관계 뒤에 집을 나온 메이는 파헤쳐진 공원을 걷는다. 카메라 멀리서 그녀는 울고 있다. 이제 벤치에 앉아 처연하게 운다. 긴 울음이다. 이내 머리를 매만지고 눈물을 닦고 다시 오늘 살아갈 힘을 쥐어짜내듯 마음을 가다듬는다. 닦은 눈물은 다시 흐르려 하지만 입을 앙다물고 눈물을 집어삼킨다. 그녀는 오늘도 그렇게 하루를 살 것이다.

근 40년에 달하는 오랜 계엄령에서 벗어난 대만 대도시의 한 귀퉁이에서 가진 것이라곤 자기 몸 하나뿐인 사람들. 그들의 쓸쓸한 내면 풍경은 30년 전보다 지금 더 착잡하게 나의 마음속에 스며든다.

맹수진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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