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명물 자글자글 졸여 먹는 아구찜
억지로 꾸미지 않는 고추장 양념인데
매콤하면서도 은은한 단맛 진한 여운
노릇노릇 볶음밥 먹어야 풀코스 완성
동네 사랑방처럼 손님 모두 아는 사이
그리들 솥에 요리해 나눠 먹으니 꿀맛
◆순창의 여름
여름의 순창은 즐거운 공기를 품고 있다. 산과 강, 장류의 깊은 향, 그리고 천천히 흘러가는 시간이 도시 전체를 감싼다. 7월, 더위가 무르익은 계절에 컨설팅을 위해 오랜만에 순창을 찾았다. 순창에 가까워지자 익숙한 풍경이 반겨준다. 논밭 사이를 가르는 길과 낮게 이어진 산세, 그리고 골목마다 느긋하게 흘러가는 일상의 리듬이 마음을 한결 편안하게 만든다. 계절은 분명 뜨겁지만 사람들의 걸음은 서두르지 않는다. 오랜 시간 같은 자리를 지켜온 가게들과 그 앞을 오가는 주민들의 모습은 여행지라기보다 누군가의 삶 속으로 잠시 들어온 듯한 기분을 전해준다. 순창은 고추장의 도시로 많이 알려져 있지만, 나는 순창 하면 사람들과 함께했던 따뜻한 밥상이 먼저 생각난다. 화려함보다는 깊이감, 트렌드보다는 손맛에 가까운 음식들. 실제로 지역의 오래된 식당들을 돌아보면 조리법 자체는 단순한데 이상하리만큼 여운이 긴 곳들이 있다. 좋은 재료와 오랜 시간 동안 쌓인 감각, 그리고 그 지역이 품고 있는 기후가 음식에 자연스럽게 스며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순창의 음식은 특별한 비법보다도, 계절을 견디며 살아온 사람들의 시간이 만들어낸 맛인지도 모른다.
◆순창 해뜬집
하루 일과를 끝내고 방문한 순창의 ‘해뜬집’ 역시 그런 공간이었다. 일행들과 자리를 잡고 주문을 하니 저녁을 먹으러 오는 손님들이 삼삼오오 들어왔다. 그런데 참 재미있는 것이 모두가 다 한 집 건너 아는 사람들이라는 점이다. 마치 동네 사랑방처럼 서로가 서로에게 인사를 하고 각자의 자리에서 만찬을 즐기는 모습이 재미있었다. 대표 메뉴인 아구찜을 주문했다. 큰 그리들 솥에 아구찜이 가득 담겨 나오는데 여느 집들과는 다르게 양념을 천천히 졸여가며 마지막까지 먹을 수 있는 점이 참 인상 깊었다. 아구찜을 먹다가 마무리로 밥을 볶아먹게 되는데 접시에 옮기지 않고 그 자리에서 바로 밥을 볶아먹게 하려고 한 아이디어에서 시작했다는 해뜬집의 아구찜은 어느덧 이 지역의 명물이 돼버렸다.
자글자글 끓고 있는 아구찜을 맛보며 느낀 것은 ‘억지로 꾸미지 않은 맛’이었다. 요즘 많은 식당들은 보여주기 위한 플레이팅과 자극적인 콘셉트에 집중하지만 이곳은 기본적인 맛의 깊이와 반찬의 균형, 재료 본연의 향이 중심에 서 있었다. 순창의 장은 강하지만 잘 다루면 놀랍도록 섬세해지는데 이 아구찜에 버무려진 양념은 매콤하면서도 은은하게 또 달달하며 마지막엔 진한 여운이 남아 순창의 맛을 잘 살린 요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매콤한 아구찜을 먹고 있자면 국물이 생각이 난다. 해뜬집의 어묵이 들어간 칼칼한 된장찌개도 맛이 참 준수한데 아구찜과 칼칼한 어묵 된장찌개를 안주 삼아 술잔을 기울이다 보면 해뜬집에 해가 지는 줄도 모르게 시간이 흘러간다.
아구찜을 먹다가 보니 다들 식욕이 돌아 삼겹살을 주문했다. 삼겹살은 고추장 양념에 버무려진 주꾸미볶음이 같이 준비되는데 이 주꾸미볶음도 맛이 일품이다. 삼겹살을 구우며 기다리는 시간조차도 소중하다. 고기가 익어가는 자글거리는 소리, 동네 사람들끼리 서로 인사하는 소리, 달그락거리며 새로운 손님을 받기 위해 테이블을 정리하는 소리, 어느 것 하나 부족함이 없는 시간이다. 지금 이 순간은 나도 모르게 어느새 순창이 고향인 청년이 된다.
해뜬집 주방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손님을 맞이하는 가게 사람들이다. 마치 오랜만에 본 친구처럼 친근하게 다가온다. 해뜬집은 어머니가 하던 식당을 아들이 이어받아 함께 하는 가족 식당이다. 오래된 식당일수록 변화에 대한 거부감이 생기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곳은 아들 사장이 합류한 뒤 ‘더 좋아지고 싶다’는 의욕이 넘쳐나는 것 같다. 결국 좋은 식당은 기교보다는 마음가짐과 태도가 만든다는 생각을 다시 하게 된다. 레시피는 따라 할 수 있지만 분위기와 진심은 쉽게 흉내 낼 수 없기 때문이다. 천천히 익어가는 장처럼 이 지역의 식당들도 시간을 통해 깊어진다. 그리고 해뜬집 역시 그 시간을 품고 앞으로 더 많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남게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구찜
한때 아귀는 시장에서도 외면받던 생선이었다. 지나치게 큰 입과 거친 피부, 기괴한 생김새 탓에 사람들은 아귀를 못생긴 생선이라 불렀고, 어부들조차 그물에 걸리면 다시 바다로 던져버리기 일쑤였다. 지금처럼 사랑받는 식재료로 대접받는 모습은 당시에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아구찜의 시작은 경남 마산 항구에서 비롯됐다. 1960~70년대 항구 주변 사람들은 값싸고 흔했던 아귀를 어떻게든 먹기 위해 다양한 조리법을 고민했고 여기에 콩나물과 미나리, 미더덕, 고춧가루 양념을 더해 강한 불에 익혀낸 음식이 지금의 아구찜으로 자리 잡게 됐다. 재미있는 점은 이름은 ‘찜’이지만 실제 조리 방식은 볶음과 찜의 중간 형태에 가깝다는 것이다. 센 불에서 빠르게 수분을 날리며 양념을 입히는 과정은 항구 노동자들이 선호하던 강렬한 맛과도 맞닿아 있다. 맵고 뜨거운 음식 한 접시는 바닷바람 속 노동의 피로를 달래는 음식이었을 것이다.지금은 전국 어디에서나 만날 수 있는 음식이 되었지만, 아구찜에는 여전히 항구 도시의 거친 숨결이 남아 있다. 투박하지만 강렬하고, 화려하지 않지만 깊은 맛을 지닌 음식. 그래서인지 아구찜 한 접시에는 단순한 매운맛 이상의 시간이 담겨 있다.
■아구 콩피와 구운 무, 컬리플라워 퓨레 만들기
<재료>아구 살 100g, 올리브오일 500㎖, 타임 10g, 생강 10g, 마늘 2톨, 무 1토막, 버터 100g, 컬리플라워 100g, 우유 500㎖, 소금 약간.
<만드는 법>① 아구는 소금간을 한 후 50도 올리브오일에 담가 허브와 생강, 마늘을 넣고 1시간 천천히 콩피해준다.② 무는 소금간을 하고 버터에 천천히 구워 아삭하게 준비해준다.③ 컬리플라워는 버터와 함께 볶아준 후 소금간을 하고 우유를 넣고 끓여 곱게 갈아준다.④ 아구는 버터에 살짝 구워준 후 구운 무와 퓨레를 곁들여 낸다.
김동기 청담 일판 총괄 셰프 payche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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