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산업의 슈퍼사이클로 고소득 근로자 비중이 역대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하지만 특정 업종에 집중된 임금 상승이 전반적인 물가를 자극해 오히려 저소득층의 생계 부담을 가중시킨다는 진단이 나왔다. 호황의 그늘에서 소외 계층의 한숨이 깊어지는 모양새다.
22일 국가데이터처가 발표한 자료를 보면 지난해 10월 기준 전체 임금근로자 2248만8000명 가운데 최근 3개월 월평균 임금이 500만 원 이상인 근로자는 371만3000명으로 집계됐다. 이는 전체의 16.5%를 차지하는 수치다. 관련 통계가 작성된 2013년 이후 규모와 비중 모두 가장 높은 수준이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반도체 사업체들이 지급한 대규모 성과급이 고소득 근로자 증가의 주된 배경으로 꼽힌다. 문제는 이러한 특정 업종의 임금 쏠림 현상이 시차를 두고 전반적인 소비자물가 상승을 유발하고 있다는 점이다.
◆ 상위 10% 성과급 늘면 5개월 뒤 물가 요동
한국은행이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업계 상위 10% 수준의 성과급을 주는 사업체 비중이 확대될 경우 5개월 뒤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0.05%포인트 오르는 것으로 추산됐다. 임금 인상이 소비 확대로 이어지며 제품과 서비스 가격을 밀어 올리는 구조로 풀이된다.
한국은행은 보고서에서 “전산업 특별급여가 똑같이 10% 상승하더라도 평균적인 수준에서 늘어나면 물가에 미치는 영향이 제한적이지만, 일부 업종에 집중돼 상승하면 시차를 두고 소비자물가에 유의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라고 지적했다. 대기업의 특별급여가 시장 전반의 물가 압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신현송 한국은행 총재 역시 “임금·수요 측면의 물가 상승 압력도 강해졌다”라며 “소비자물가는 앞으로 상당 기간 높은 수준의 오름세를 지속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당분간 고물가 흐름이 꺾이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 양극화된 임금 상승... 고통받는 자영업자와 취약계층
임금 인상발 물가 상승이 장기화하면서 저소득층은 소득 소외와 고물가, 고금리에 이르는 삼중고에 직면하고 있다. 실제로 임금 상승 혜택은 업종별로 극명하게 갈렸다. 월 500만 원 이상 근로자 비중은 제조업에서 24.0%에 달했지만 보건·사회복지업과 숙박·음식점업은 각각 5.4%와 1.4%에 머물렀다.
필수재 지출 비중이 큰 저소득층일수록 체감하는 물가 부담은 더 클 수밖에 없다. 중동 전쟁 이후 국제 유가가 급등하면서 석유류 가격이 20% 넘게 상승했고 근원 물가도 2%대 중반으로 높아졌다. 생활물가가 소비자물가보다 더 가파르게 오르면서 서민들의 생계비 부담은 더욱 커진 상황이다.
정부 안팎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김용범 청와대 정책실장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거시지표는 뜨겁지만, 자영업자의 체감경기는 여전히 차갑다”라고 밝혔다. 이어서 “금리가 오르면 반도체 성과급을 받은 사람이 아니라 호황을 체감하지 못한 자영업자와 취약차주, 변동금리 대출자들이 먼저 흔들릴 가능성이 크다”라며 “호황의 과실은 위로 향하고 긴축의 고통은 아래로 향한다”라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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