法 “신속한 재판받을 권리 침해”
헌법 제107조 2항 근거로 들어
선례 없어 법조계 내 의견 분분
“헌재 고유 업무 충실해야” 지적
“이 논리면 대법도 판단” 비판도
“헌법재판소의 헌법소원 심리 지연으로 피고인이 약 4년간 불확정한 지위에 놓였고, 이 때문에 신속한 재판을 받을 권리 등 헌법상 기본권이 침해됐다고 볼 수 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50부(재판장 전보성 형사수석부장)는 17일 설명자료를 내 헌법재판소의 장기간 심리 지연으로 인한 피고인의 기본권 침해 문제를 지적하며 이같이 밝혔다.
문제가 된 사건은 통일TV 대표 진천규씨의 남북교류협력법 위반 사건이다. 진씨는 2018년 8월 인천공항을 통해 북한 서적과 영상자료, 노동신문 등을 통일부 장관 승인을 받지 않은 채 반입한 혐의로 2022년 5월 1심에서 벌금 300만원을 선고받았다. 진씨는 1심 법원에 ‘물품을 반출·반입하려면 품목 등에 대해 통일부 장관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고 한 남북교류협력법 13조 1항 등에 대해 위헌법률심판제청신청을 냈으나 기각되자 헌재에 헌법소원을 냈다. 헌재는 2022년 7월 이 사건을 심판에 회부했다.
재판부는 “항소심 법원과 피고인은 해당 사건의 결론의 전제가 되고 있는 헌법소원 결과를 보기 위해 현재 약 4년간 대기하고 있고, 기소된 지 6년 가까이 지난 상황”이라고 언급했다. 헌재가 법률상·사실상 쟁점을 검토하거나 의문이 있는 경우 당사자에게 그에 관한 의견 제출을 촉구하는 등 당사자의 절차 참여권을 보장해야 할 필요가 있는데도, 그러한 조치도 취하지 않은 채 장기간 결론을 내리지 않았다면 헌법 위반 가능성이 있다는 게 재판부 입장이다.
이러한 ‘부작위(마땅히 해야 할 의무가 있는 일을 하지 않은 것) 처분’은 ‘명령·규칙 또는 처분이 헌법이나 법률에 위반되는 여부가 재판의 전제가 된 경우에는 대법원은 이를 최종적으로 심사할 권한을 가진다’고 규정한 헌법 제107조 제2항의 심사 권한에 해당한다고 재판부는 밝혔다. 또한 “이 ‘처분’에는 재판과 같은 사법적 처분도 해당한다는 것이 대법원 판례”라고 부연했다.
이에 대해 헌재 관계자는 “전례도 없고 근거도 불분명”하다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헌바(위헌심사형 헌법소원) 사건은 (청구되더라도) 법률상 재판이 지연되지 않고 그냥 재판하면 된다”며 “1심이기는 하지만 심지어 법원에서 위헌제청 신청을 기각한 사안”이라고 설명했다.
선례가 없는 만큼 법조계 내에서도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법원 내부에선 헌재가 재판소원으로 법원 판결까지 들여다보겠다고 나선 한 상황에서 헌재 본연의 고유 업무인 헌법소원 심리부터 충실하라는 의미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올해 5월 기준으로 헌재의 미제사건은 총 1354건이다. 이 중 95%인 1291건이 헌법소원 사건이다. 일선의 한 부장판사는 “헌재도 국민의 기본권 위에 군림할 수 없다는 메시지 아니겠느냐”라고 말했다. 또다른 판사는 “재판에 전제되는 사안인 만큼 왜 지연되고 있는지 헌재에 물어보는 것은 충분히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반면 헌법연구관 출신인 노희범 변호사는 “헌법 제107조 제2항의 ‘처분’은 재판의 전제가 될 때 법원이 심사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유무죄를 판단하는 형사재판에서 근거 법률의 위헌 여부를 심사하는 헌재의 재판지연이 왜 재판의 전제가 되는지 이해가 안 된다”고 재판부 논리를 반박했다.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도 “법원이 헌재에 그럴 권한이 무엇에 근거하고 있는지 모르겠다”며 “확대해석 가능성이 아예 없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법원 판결이나 헌재 결정을 ‘처분’이라 보는 경우는 많지 않다”고 밝혔다.
일각에선 이번 조치가 법원에 부메랑으로 돌아갈 수도 있다는 지적도 있다. 헌법연구관 출신 다른 변호사는 “재판부 논리대로면 헌재도 법원의 재판 지연 행위에 대해서 똑같이 문제 삼을 수 있지 않겠느냐”고 언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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