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태우정부 시절인 1989년 10월 당시 이회창 중앙선거관리위원회(선관위) 위원장이 사의를 밝혔다. 1988년 7월 현직 대법관 신분으로 선관위원장에 취임했으니 불과 1년 3개월 만의 사퇴였다. 그 직전에 강원 동해와 서울 영등포을 지역구에서 국회의원 재선거가 치러졌다. 이 위원장은 사직서에서 “선관위가 국회의원 재선거에서 불법 선거운동을 규제하고자 최선을 다했으나 소기의 성과를 거두지 못해 책임지고 물러나겠다”고 밝혔다. 당시 그는 여당인 민정당 총재 노태우 대통령에게까지 ‘공명 선거’를 촉구하는 서한을 보내는 등 나름 최선을 다했다. 그 시절만 해도 정당과 정치인이 선관위보다 위에 있으며 선관위를 우습게 보는 ‘갑’(甲) 같은 존재였다.
선관위가 막강한 기관으로 거듭난 것은 김영삼(YS)정부 시절의 일이다. 1994년 3월 여야는 합의로 공직선거법을 고쳤다. 그때 선거운동 기간 각 정당이 사용한 자금 내역에 대한 조사권을 선관위에 부여하는 내용이 개정 법률에 포함됐다. 이로써 선관위가 ‘부정 후보자’로 규정하면 정치판에서 퇴출되는 구조가 확립됐다. 자연히 ‘선관위가 실세 기구가 됐다’는 언론 보도가 잇따랐다. 당시 김봉규 선관위 사무총장(장관급)은 “주어진 권한만큼 공정한 선거 관리를 통해 한국의 선거 문화 개선에 일익을 담당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이후 정당 및 정치인은 선관위 앞에서 ‘을’(乙)이 되었다. 최근 모 정치인은 언론 인터뷰에서 “정치인에겐 수사 기관이나 법원보다 더 두려운 게 선관위”라고 말했다.
1993년 문민정부 출범 후 한국에서 ‘부정 선거’라는 용어는 자취를 감췄다. 간혹 패배한 후보자들이 부정 선거 구호를 외치긴 했으나, 귀를 기울이고 경청한 국민은 거의 없었다. 그랬다가 2022년 대선 때 코로나19 확진자의 사전투표 용지를 소쿠리에 담아 옮긴 일명 ‘소쿠리 투표’ 사건이 터지며 선관위의 신뢰도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이후 선관위는 거의 해마다 사고를 쳤다. 2023년에는 선관위 직원들의 친인척을 특혜 채용한 사실이, 2024년에는 재외 국민의 선거 참여율을 부풀려 해외 출장 예산을 과대 확보한 사실이 각각 드러나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2025년에도 투표 용지 수령 후 투표소 외부 반출을 허용한 일로 비판의 도마 위에 올랐다.
급기야 올해 6·3 지방선거에서 선관위는 ‘병살타’도 아니고 아예 ‘삼중살타’를 쳤다. 투표 용지를 임의로 적게 인쇄한 것도 잘못이지만 그마저 투표소별 배분에 실패해 사상 초유의 투표 용지 부족 사태를 초래했다. 여기에 후보자별 득표수를 엉터리로 집계하는 개표 오류도 속출했다. 선관위 직원 특혜 채용 사건 당시 선관위 사무총장의 아들이 조직 내부에서 ‘세자’(世子)로 불렸다는 얘기를 듣고 큰 충격을 받은 기억이 생생하다. 선관위는 헌법상 독립 기구라는 이유로 감사원 감사를 받지 않는 등 견제 장치가 없다. 불법 선거운동 조사권을 무기로 삼아 정당 및 정치인들에게도 ‘갑질’을 일삼는다. 어쩌면 세자란 선관위 구성원들의 지나친 특권 의식이 응축된 표현인지도 모르겠다. 요즘 해체 얘기까지 나오는 선관위가 살 길은 ‘폐(廢)세자’뿐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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