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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친 세상에 맞선 여인들의 비망록… 박서영 장편소설 ‘여깡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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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해 선임기자 pth1228@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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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깡시대/박서영/예서/2만2000원

 

1980~1990년대 강원도 강릉을 배경으로 소외된 여성들의 처절한 생존과 뜨거운 연대를 그린 박서영 작가의 장편소설이다. 작품은 가난과 폭력, 차별 속에서 스스로를 지켜야 했던 여성 청춘들의 핏빛 우정과 누아르적 서사를 담아내며 독자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박서영 작가.
박서영 작가.

25년 전 인터넷 문학 플랫폼 ‘야후 글동네’에 익명 연재되며 화제를 모았던 작품을 개작한 작품이다. 당시 온라인 독자들 사이에서 강한 흡인력과 파격적인 여성 서사로 큰 반향을 일으켰던 작품이 세월을 넘어 새롭게 복원된 셈이다.

 

소설은 폭력적인 가정과 가난을 피해 거리로 내몰린 선영, 정희, 해숙, 태연, 선희, 예진 등 여섯 소녀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이들은 야만적인 세상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스스로를 ‘여깡(여자 깡패)’이라 부르며 서로의 등을 지켜주는 연대를 만든다. 상처 입고 버려진 존재들이지만, 서로에게는 마지막 가족이 되어주는 관계다.

 

우여곡절 끝에 강릉의 특급 호텔 그릴에 취업한 이들은 낮에는 단정한 유니폼을 입은 호텔리어로 살아가지만, 밤이면 불량배와 싸우고 폭력적인 현실과 맞서야 하는 이중의 삶을 견딘다. 특히 영리하고 악바리 근성을 지닌 주인공 선영은 어린 나이에 실장 자리에 오르며 능력을 인정받는다.

 

하지만 의리로 품어준 미혼모 지민의 배신은 이들의 삶을 뒤흔든다. 지민은 호텔 간부 오달수 상무와 손잡고 선영의 자리를 빼앗고, 그 과정에서 여성들을 도구처럼 이용하는 권력 구조의 민낯도 드러난다. 이후 작품은 배신과 복수, 몰락과 파멸로 이어지는 누아르적 전개 속에서 인간 욕망의 어두운 밑바닥을 집요하게 파고든다.

 

특히 폭우가 쏟아지는 밤 벌어지는 결투 장면은 작품의 백미로 꼽힌다. 선영을 지키기 위해 행동대장 정희가 지민의 목울대에 칼을 꽂는 장면은 잔혹하면서도 비극적인 감정을 극대화한다. 친구를 지키기 위해 살인자가 된 정희는 결국 죄수 번호 9000번을 달고 교도소에 수감되고, 출소 이후에도 비극적인 삶을 이어간다.

 

박서영/예서/2만2000원
박서영/예서/2만2000원

소설은 단순한 폭력 서사에 머물지 않는다. 산업화와 성장의 화려함 뒤에 가려졌던 여성 청춘들의 상처와 계급적 소외, 가부장제의 폭력성을 사실적으로 드러낸다. 동시에 세상이 버린 존재들이 서로의 상처를 보듬으며 살아가던 뜨거운 의리와 연대의 감정 역시 강렬하게 묘사한다.

 

박서영은 “이 소설은 철저히 지어낸 픽션이지만, 등장인물들이 느껴야 했던 두려움과 억압, 살아남기 위한 처절함만큼은 그 시대를 관통한 진짜 감정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허약했던 어린 시절의 자신과 반대로 어떤 상황에서도 무너지지 않는 강한 여성들을 상상하며 이야기를 써 내려 갔다”고 밝혔다. 

 

세월이 흘러 중년이 된 선영이 병원에서 옛 친구 해숙과 재회하며 과거를 회상하는 마지막 장면은 독자에게 묵직한 여운을 남긴다. ‘여깡시대’는 결국 잔혹한 시대를 통과해야 했던 여성들의 비망록이자, 세상이 외면했던 청춘들에 바치는 슬프고도 뜨거운 헌사라고 할 수 있다. 

 

박서영은 2004년 ‘문학세계’를 통해 등단했고, 같은 해 동서문학상을 받았다. 한국근로자문학상, 미래에셋생명 문학상을 받으며 소설가의 길을  걸어왔다. 대표작으로 단편소설 ‘달빛고요’  ‘욕망의 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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