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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자연의 지배자 아닌 구성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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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해 선임기자 pth1228@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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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스토리아 비테이/최재천/지식서재/2만4000원

 

인간은 지구의 주인인가, 아니면 수많은 생명 가운데 하나에 불과한 존재인가. 진화생물학자 최재천 교수의 신작 ‘히스토리아 비테이(Historia Vitae·생명의 역사)’는 이 질문을 꺼내며 독자를 생명의 광대한 세계로 안내한다.

생태와 진화를 탐구하는 사회생물학자의 객관적 시선과 이야기꾼의 따뜻한 감성을 결합해 지구 생명체들의 삶의 방식을 소개하며 “인간은 자연의 지배자가 아니라 구성원”이라는 메시지를 독자에게 전한다. 책 전반에서 중남미 정글의 작은 개미, 제주 바다를 헤엄치는 돌고래, 북극의 얼음 위를 떠도는 곰, 동물원 우리 속 고릴라 등 다양한 생명체들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최재천/지식서재/2만4000원
최재천/지식서재/2만4000원

중남미 열대우림의 잎꾼개미 이야기는 흥미롭다. 개미들은 나뭇잎을 잘라 지하로 옮기지만 잎 자체를 먹지는 않는다. 대신 그 잎을 이용해 곰팡이를 재배하고, 이를 먹이로 삼는다. 인간보다 훨씬 오래전부터 농업을 실천해 온 셈이다. 저자가 이름을 붙인 잎꾼개미는 초고령사회를 맞은 인류에게 지혜를 주는 대표적인 생명체다. 큰 일개미들은 톱날 같은 턱으로 나뭇잎을 썰어 집으로 가져온다. 그러면 작은 일개미들이 그 잎을 더욱 잘게 썰어 그 위에 먹이가 될 버섯을 기른다. 하지만 늙은 일개미는 평생 잎을 써느라 턱이 무뎌져 잎을 써는 데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그렇다고 늙은 개미들이 퇴물 취급을 받는 것은 아니다. 이들은 젊은 개미들이 썰어 놓은 잎을 운반하는 비교적 수월한 일을 맡는다. 저자는 이를 소개하며 초고령사회를 맞아 부양의 대상으로만 여겨졌던 고령층에게 어떤 역할을 부여할 수 있을지 생각해 보게 한다.

저자가 초고령사회 지혜를 얻을 수 있다고 설명하는 잎꾼개미. 지식서재 제공
저자가 초고령사회 지혜를 얻을 수 있다고 설명하는 잎꾼개미. 지식서재 제공

인간의 탐욕은 돈벌이를 위해 동물을 동물원과 수족관에 가두는 사례에서도 드러난다. 서울대공원에서 돌고래쇼를 하다 제주 바다로 돌아간 남방큰돌고래 ‘제돌이’가 대표적이다. 하루 100㎞ 이상을 헤엄치던 제돌이는 불법 포획돼 수족관 공연에 동원되면서 사냥 능력을 잃고 근육도 크게 퇴화했다. 그러나 시민사회의 노력 끝에 바다로 돌아갈 수 있었다. 제돌이의 방류는 단순한 동물 보호를 넘어 인간이 다른 생명에게 어떤 책임을 져야 하는지를 묻는 사회적 사건이었다.

저자는 제돌이가 다시 무리에 적응해 자유롭게 살아가는 과정을 소개하며 야생의 의미와 생명 존중의 가치를 강조한다. 그러면서 생태학자 폴 에얼릭의 “인류는 자신이 앉아 있는 나뭇가지를 톱질해 자신의 생명 유지 시스템을 망가뜨리려 하고 있다”는 말을 인용해 인간의 행동이 결국 자신의 생존마저 위협하고 있다고 경고한다.

인간의 탐욕을 그대로 보여주는 남방큰돌고래 제돌이. 지식서재 제공
인간의 탐욕을 그대로 보여주는 남방큰돌고래 제돌이. 지식서재 제공

2016년 미국에서 발생한 고릴라 하람베 사건도 소개된다. 동물원 우리에 떨어진 어린아이를 보호하려던 하람베는 결국 사살됐고, 이 사건은 전 세계적인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인간의 안전을 위해 고릴라를 죽이는 것이 불가피했는지, 인간의 생명과 동물의 생명은 어떤 기준으로 비교할 수 있는지에 대한 논의가 이어졌다. 저자는 하람베 사례를 통해 인간 중심주의의 한계를 지적하며 다른 종의 생명 역시 존중받아야 할 존재임을 강조한다.

기후위기의 상징처럼 등장하는 북극곰의 사례는 더욱 뼈아프다. 지구온난화로 해빙이 급속히 줄어들면서 북극곰들은 사냥터를 잃고 있다. 굶주린 채 쓰레기장을 뒤지거나 인간 거주지로 내려오는 모습은 이제 낯설지 않은 뉴스 화면이 됐다. 과거 자연 다큐멘터리 속 위엄 있는 포식자로 등장했던 북극곰은 오늘날 인간이 초래한 환경 파괴의 대표적 피해자가 되어가고 있다. 저자는 북극곰의 위기를 통해 생태계의 균형이 무너지면 결국 인간 역시 안전할 수 없음을 경고한다.

인간에게 사살당한 고릴라 하람베. 지식서재 제공
인간에게 사살당한 고릴라 하람베. 지식서재 제공

저자는 자연 파괴로 위기를 자초한 인류의 어리석음을 책 전반에 걸쳐 지적한다. 현재 지구에서는 하루에도 수많은 생물 종이 사라지고 있다. 과거 공룡을 멸종시킨 소행성 충돌이나 대규모 화산 활동 같은 자연적 재난이 아니라 인간의 개발과 환경 파괴가 주요 원인이다. 과학자들이 지금을 ‘제6차 대멸종 시대’라고 부르는 이유다. 이전의 대멸종은 자연이 일으켰지만 이번에는 인간이 원인이라는 점에서 더욱 충격적이다.

아이러니한 것은 인간 역시 생태계의 일부라는 사실이다. 인간은 자연을 파괴하면서도 자신만은 안전할 것이라고 믿어왔다. 그러나 코로나19 팬데믹은 그런 착각을 무너뜨렸다. 야생동물 서식지 파괴와 무분별한 개발은 인간과 동물의 접촉을 늘렸고, 이는 새로운 감염병 출현 가능성을 높였다. 자연 파괴가 결국 인간 사회의 재난으로 되돌아온 것이다.

저자는 개미와 돌고래, 고릴라와 북극곰의 이야기를 통해 인간이 누구이며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돌아보게 한다. 그러면서 자연을 지배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태도를 버리고 다른 생명체와 더불어 살아가는 존재로 거듭나야 한다고 강조한다. 사진은 기후위기의 현실을 보여주는 굶주린 북극곰. 지식서재 제공
저자는 개미와 돌고래, 고릴라와 북극곰의 이야기를 통해 인간이 누구이며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돌아보게 한다. 그러면서 자연을 지배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태도를 버리고 다른 생명체와 더불어 살아가는 존재로 거듭나야 한다고 강조한다. 사진은 기후위기의 현실을 보여주는 굶주린 북극곰. 지식서재 제공

저자는 인간이 자연과 분리된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을 과학적으로 설명한다. 잎꾼개미의 협력, 돌고래의 사회성, 북극곰의 생존 투쟁은 모두 인간의 삶과 연결돼 있다. 다른 생명체의 위기는 곧 인간의 위기이며, 생태계의 붕괴는 결국 인간 문명의 붕괴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거듭 경고한다.

책은 지구의 탄생부터 호모 사피엔스의 출현에 이르기까지 생명체들의 발자취를 진화론적 관점에서 조망한다. 그리고 그 긴 생명의 역사 속에서 인류가 배워야 할 가장 중요한 생존의 지혜로 ‘공존’을 제시한다. 저자는 오늘날 인류가 기후변화와 생물다양성 감소, 초고령사회, AI의 등장 등 복합적인 위기에 직면해 있다고 진단한다. 그러면서 이러한 시대를 살아남기 위해서는 자연을 지배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태도를 버리고 다른 생명체와 더불어 살아가는 존재로 거듭나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는 미래 인간상은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현명한 인간)’를 넘어 ‘호모 심비우스(Homo symbius·공생하는 인간)’가 돼야 한다고 역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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