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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한민족 풍류는 심정문화의 원형 [신화에서 선민까지 한민족 정체성의 문화사적 발견-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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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류’, 이천 년을 흐른 풍류의 현대적 현현

 

오늘날 전 세계를 흔드는 K-팝의 비트와 K-푸드의 미각, K-드라마의 서사는 문화적 유행을 넘어선다. 이 폭발적인 인기를 과연 한국의 고도화된 정보통신 기술이나 거대 자본, 혹은 치밀한 마케팅의 승리로만 돌릴 수 있을까? 결코 그렇지 않다. 물질의 풍요 속에서도 영혼의 갈급함을 느껴온 현대인들에게 한국 문화는 그들의 심층적 결핍을 채워주는 ‘정서적 복음’이었고, K-콘텐츠는 이들의 마음속을 정확히 파고들었다.

 

POP의 세계적 성지 영국 웸블리, 2019년 BTS 공연을 관람하기 위해 유럽 전역에서 결집한 팬들로 북적이는 런던 시내 모습. 세계일보 자료사진
POP의 세계적 성지 영국 웸블리, 2019년 BTS 공연을 관람하기 위해 유럽 전역에서 결집한 팬들로 북적이는 런던 시내 모습. 세계일보 자료사진

과거 해외 시장에서 선풍적인 열풍을 일으켰던 어느 제과회사의 초코과자를 떠올려 보자. 당시 합리주의적 사고에 익숙했던 서구인들에게 과자 상자에 선명히 새겨진 ‘정(情)’이라는 한 글자는 선뜻 이해하기 어려운 문화적 암호와 같았다. 하지만 이 글자에 담긴 한국인 특유의 따뜻한 인정은 국경을 넘어 세계인들의 굳게 닫힌 마음을 녹여내는 마법을 발휘했다. 이처럼 말로 다 설명하기 힘든 가슴 깊은 곳의 ‘심정적 에너지’는 단순한 상품의 흥행을 넘어선다.

 

이러한 현상의 실체는 어느 날 갑자기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우리 민족의 정신적 기저에 면면히 흘러온 ‘풍류(風流)’라는 영적 에너지의 현대적 분출이다. 세계적인 종교학자 미르체아 엘리아데(Mircea Eliade)는 샤머니즘을 원시적인 미개 종교로 치부하지 않았다. 그는 샤머니즘이야말로 장구한 역사를 지닌 인류 영성의 원초적 모태이며, 현대의 고등종교들 역시 이 근원적 영성을 계승하여 인간의 구원 문제를 다루고 있음을 입증했다. 엘리아데는 인간의 종교적 열망이란 인류의 의식 구조 속에서 내재된 보편적 일치성을 지니고 있다는 데 주목한다.

 

이와 같은 문명사적 통찰은 국내 도상학(圖像學)의 권위자인 동덕여대 박용숙 교수의 연구를 통해 한국학적 확신으로 도약한다. 박 교수는 기독교와 불교 문명이 태동하기 전, 인류의 사상과 역사를 일구었던 최초의 정신적 기틀로서 ‘시원(始原) 샤먼문명’을 제시했다. 박 교수는 미국 버클리 대학 객원교수 시절, 현지 도서관에서 우연히 발견한 유럽과 미국의 방대한 고서적 분석을 시도했다. 그는 전 세계의 방대한 기록 연구를 통해 한국의 풍류가 결코 변방의 아류 문화가 아닌 인류 시원 사상의 핵심 맥락과 맞닿아 있음을 주장하였다.

 

(좌)미르체아 엘리아데 모습. 그는 샤머니즘을 인류 영성의 근원적 모태이자 인류 구원의 시원으로 접근하였다. (우)박용숙 교수의 저작인 &amp;lt;샤먼문명&amp;gt;
(좌)미르체아 엘리아데 모습. 그는 샤머니즘을 인류 영성의 근원적 모태이자 인류 구원의 시원으로 접근하였다. (우)박용숙 교수의 저작인 <샤먼문명>

육당 최남선이 갈파했듯, 고대 단군의 권능은 곧 이러한 ‘무도(巫道)’로부터 연원했다. 하늘과 땅, 이승과 저승을 관통하며 길흉화복을 다스리고 신의 기운을 조화롭게 하던 무(巫)의 지혜는 한민족 문화의 ‘일체 씨알’이자 풍류의 본질이었다. 이는 마치 J.R.R. 톨킨의 서사시 『반지의 제왕』에 등장하는 ‘절대반지’와 같다. 톨킨이 묘사한 절대반지는 모든 제후를 모으고 흩어진 세상을 하나로 묶는 강력한 힘의 상징과도 같다. 그는 “순금이라고 해서 다 반짝이는 것은 아니며, 방황한다고 해서 반드시 길을 잃을 잃은 것은 아니다”라는 깊은 울림을 남겼다. 비록 오랜 세월 역사의 먼지에 가려져 그 광채가 흐려졌을지라도, 풍류라는 우리 민족의 뿌리 깊은 영성은 결코 시들지 않는 절대 진리의 순금과 같다.

 

본래 풍류란 먼 옛날 하늘이 우리 민족의 가슴 속에 심어놓은 ‘영성의 유전자’이자, 모든 만물을 하나로 어우러지게 만드는 ‘태초의 리듬’이다. 즉, 풍류는 한민족이라는 나무가 뿌리를 내릴 때부터 이미 흐르고 있었던 ‘생명의 수액’과 같다. 엘리아데가 주목한 인류의 시원 영성이나 박용숙 교수가 주목한 샤먼문명의 도상들은 결국 이 풍류라는 거대한 설계도를 설명하기 위한 조각들이다. 풍류는 이론이기 이전에 우리 민족의 몸속에 각인된 본능적 신명이며, 서구의 논리가 ‘나와 너’를 구분할 때, 풍류는 ‘우리’라는 이름으로 서로의 아픔을 녹여내고 기쁨을 증폭시키는 ‘힘의 파동’인 셈이다.

 

한민족의 정신 지층 아래 도도히 흐르던 풍류는 불교와 유교, 그리고 기독교를 차례로 수용하면서도 이들을 충돌시키는 대신 거대한 용광로 안에서 하나로 융합해 냈다. 이 겹겹의 지층은 풍류라는 유연한 영성을 통해 융합되었고, 이것이 바로 한국인 특유의 다원적이고 포용적인 정신세계를 형성한 토양이 되었다. 신라 최치원이 『난랑비서(鸞郎碑序)』에서 갈파한 ‘포함삼교(包含三敎)’는 바로 이러한 융합의 결정체다. 풍류는 외래 사상을 수용하되 우리만의 신명으로 이를 재창조해내는 독특한 구조적 힘을 지니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힘은 수천 년간 우리들의 무의식 속에 잠자다 마침내 때를 만나 K-컬처라는 역동성으로 분출된 것은 아닐까?

 

풍류를 한류의 원형으로 바라보는 시각은 지극히 중요하다. 이러한 관점이 정립될 때 비로소 고대로부터 이어져 온 ‘여신문화’나 시원 영성은 단순한 전설을 넘어, 인류를 구원할 실체적 정당성을 확보하기 때문이다. 인류사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오랫동안 부계 중심의 수직적 질서가 지배해왔다. 그러나 한민족의 정신사 이면에는 가부장적 권위에 가려져 있었을 뿐, 만물을 품고 살려내는 ‘모성적 영성’이 태초부터 흐르고 있었다. 풍류를 통해 뭇 생명을 교화하는 ‘접화군생(接化群生)’의 가치가 전 세계인을 하나로 묶는 거대한 심정적 위력으로 화(化)하고 있다. 이는 그동안 가리워졌던 모성적 시원 영성이 역사의 전면에 드러나 완성되는 필연적 사건이다.

 

◆ 효정(孝情), 풍류를 넘어 인류로 확장되는 심정의 질서

 

풍류의 도도한 흐름을 추적해 들어가면, 그 기저에는 한국인의 영성 구조를 빚어온 ‘무(巫)’의 유구한 전통이 자리함을 발견하게 된다. 이능화의 『조선무속고』를 비롯한 선구적 연구들이 증언하듯, 우리 민족에게 각인된 ‘무’의 원형은 단순한 기복이나 점술의 차원을 가뿐히 넘어선다. 그것은 하늘과 땅, 신과 인간을 하나로 잇는 거룩한 ‘중보(仲保)’의 도(道)였다. ‘무(巫)’라는 글자의 형상처럼, 하늘의 뜻을 지상에 투영하고 인간의 애끓는 심정을 하늘에 상달(上達)시키는 이 수직적 연결 구조야말로 우리 민족이 태초부터 견지해온 고유한 영성의 문법이었다. 비록 역사의 굴절 속에서 이 원형적 기능이 파편화되고 왜곡되며 본래의 위엄을 잃은 적도 있었으나, 하늘과 신령하게 소통하고자 하는 한국인의 내면적 열망은 사그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그 생명력은 제의의 틀을 깨고 나와 노래와 춤, 어울림과 신명이라는 ‘풍류’의 문화로 승화되었다. 바로 이 지점에서 ‘무’의 수직적 응집은 ‘풍류’라는 수평적 확산으로 전환되며, 비로소 공동체의 삶 속에 구체화 된 것이다.

 

한민족의 심층에 흐르던 풍류의 영성은, 이 시대에 이르러 ‘효정(孝情)’이라는 숭고한 이름 아래 하나의 완성된 질서로 정립되었다. 효정은 단순히 가문의 울타리에 갇힌 윤리나 사장화 된 덕목이 아니다. 하늘부모님을 향한 지극한 ‘종적 사랑’과 인류 전체를 보듬는 광대한 ‘횡적 사랑’이 하나의 축으로 맞물려 고동치는 생명력의 구조다. 하늘을 공경하는 경천(敬天)의 마음이 그 단단한 뿌리라면, 널리 세상을 이롭게 하는 홍익(弘益)의 실천은 그 사랑이 대지 위로 찬란하게 꽃피는 발현의 방식인 셈이다.

 

이 종과 횡의 두 축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위하여 사는 삶’은 인간 존재의 근본 원리가 된다. 그 거룩한 교차점에서 인간의 사랑은 개별적 자아를 넘어 인류라는 거대한 바다로 확장되며, 모든 관계는 ‘심정(心情)’이라는 영적 끈으로 단단히 결속된다. 여기서 발현되는 에너지는 단순히 가정을 돌보는 차원의 모성을 초월한다. 그것은 분열과 갈등으로 점철된 세계를 다시 태초의 일체감으로 묶어내는 ‘창조적 사랑’의 현현(顯現)이자, 인류 공동체를 치유하는 유일한 해법이다.

결국 풍류의 신명은 효정 안에서 방향을 얻고, 효정은 인류를 향해 그 지평을 확장한다. 이것이 바로 ‘하늘부모님 아래 인류 한 가족’이라는 비전이 단순한 이상이 아니라 현실적 질서로 작동할 수 있는 이유다. 그리고 지금 우리가 서 있는 이 지점은, 단순한 문화적 진화의 결과가 아니다. 수천 년 동안 축적되어 온 영성과 역사, 그리고 인간의 정성이 하나의 흐름으로 수렴되며, 마침내 실체적 질서로 드러나는 전환의 순간이다. 더 이상 풍류는 과거의 유산이 아니며, 효정 또한 관념이 아니다. 그것은 이 땅 위에서 작동하고 있는 살아있는 원리이자 문명의 방향을 규정하는 새로운 기준이다.

 

이제 우리에게 남은 것은 결단이다. 눈앞의 파편화된 현상에 매몰될 것인가, 아니면 그 거친 수면 아래 도도히 흐르고 있는 ‘심정(心情)의 질서’를 겸허히 수용할 것인가. 인류의 역사는 언제나 눈에 보이는 권력의 부침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거룩한 원리 위에서 약동해 왔다. 그리고 그 보이지 않는 진리의 맥락을 온몸으로 껴안은 소수의 선각자가 시대를 열어젖히는 주역이 되어왔음을 우리는 기억한다. 그렇기에 작금의 시기는 인류가 상극의 구질서를 뒤로하고 ‘하늘부모님 중심의 대가족’이라는 새로운 문명으로 진입하는 전환점이다. 이 거대한 영적 파고 속에서 효정(孝情)의 등불을 드는 일은 미래 인류의 생존을 담보하는 가장 존엄한 응답이 될 것이다.

 

◆ 경천과 홍익, 그리고 효정(孝情)의 문명

 

오늘날 전 세계를 휩쓸고 있는 한류(韓流)의 지속 가능한 생명력은, 문화적 콘텐츠의 확산을 넘어선 지점에서 비로소 완성된다. 그것은 특정 문화의 일방적 전파가 아니라, 서로 다른 문명들이 하나의 ‘심정’ 안에서 어우러지고 공명하는 거대한 ‘문화적 공유지’의 형성이다. 이러한 현상은 결코 우연한 유행이 아니다. 한민족의 시원에 깊이 각인된 영적 유전자와 문명적 구조에서 비롯된 필연적 흐름이다.

 

환웅(桓雄)이 하늘의 뜻을 품고 지상으로 내려오고, 웅녀(熊女)가 인내와 정성으로 인간이 되기를 간절히 기원했던 단군신화는 단순한 건국 설화가 아니다. 그것은 하늘과 인간, 그리고 대지가 하나로 조화를 이루는 ‘천지인합일(天地人合一)’의 원형적 선언이었다. 이 숭고한 기원으로부터 우리 민족은 하늘을 공경하고 뭇 생명을 귀히 여기는 경천애민(敬天愛民)의 질서를 숙명처럼 이어받았다. 이제 그 오래된 미래의 가치가 ‘효정’이라는 이름으로 부활하여, 갈등과 반목으로 점철된 지구촌을 하나의 가족으로 묶어내는 문명적 해답을 제시하고 있다.

 

서울 광화문광장 일대에서 진행된 그룹 BTS 컴백 라이브 ‘아리랑’ 공연 모습. 해당 공연은 넷플릭스를 통해 190개국에 생중계됐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서울 광화문광장 일대에서 진행된 그룹 BTS 컴백 라이브 ‘아리랑’ 공연 모습. 해당 공연은 넷플릭스를 통해 190개국에 생중계됐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이러한 종(縱)과 횡(橫)의 성스러운 질서는 신라 황룡사 9층 목탑의 형상을 통해 더욱 구체적이고 웅장하게 투영된다. 하늘을 향해 거침없이 솟아오른 수직적 층차는 경천(敬天)의 질서를 상징하며, 아홉 층에 깃든 화합의 염원은 이웃 나라와 세계를 품어 안는 홍익(弘益)의 지평을 드러낸다. 그것은 타자를 억압하는 정복의 논리가 아니었다. 하늘의 거룩한 질서 안에서 만인이 공존을 이루고자 했던, 고대 한반도가 그려낸 가장 원대한 ‘문명의 설계도’였다. 이제 이 수직과 수평의 질서는 박물관에 박제된 과거의 상징에 머물지 않는다. 경천과 홍익이라는 이 이중 나선형의 구조는 오늘날 ‘효정’이라는 이름 아래 하나의 생동하는 실체적 문명으로 현현(顯現)하고 있다. 하늘을 향한 지극한 경배와 인류를 향한 무조건적 사랑이 톱니바퀴처럼 맞물리는 이 효정의 질서는, 파편화된 세계를 다시 영적 일체감으로 결속하는 새로운 시대의 표준(Standard)으로 작동하기 시작했다.

 

풍류의 물줄기를 타고 형성된 우리 민족의 신명 어린 에너지는, 이제 ‘효정’이라는 거대한 유전(油田) 안에서 명확한 시대적 방향성을 얻었다. 그리고 그 효정의 빛은 이제 한반도를 넘어 전 인류를 향해 그 지평을 광활하게 확장하고 있다. 가장 한국적인 정서로 여겨졌던 ‘심정의 질서’가 마침내 온 인류가 공유해야 할 ‘보편적 문명’으로 전환되고 있는 것이다. 바로 그 장엄한 전환의 지점에서, 우리는 새로운 시대의 문턱을 비장하게 마주하고 있다. 이러한 문명적 전환은 이제는 관념이 아니라, 실체적 주체를 통해 이 땅 위에서 온전히 구현되고 있다는 점에서 비로소 위대한 종착지에 도달하게 된다.

 

고기훈 박사(한국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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