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관·대사 건강 부담으로 이어져
영양제보다 생활습관 점검이 먼저
“검진표에 큰 이상 소견은 없었습니다.”
직장인 최모(46) 씨는 올해 건강검진에서 특별한 이상 소견을 받지 않았다. 혈압과 혈당도 정상 범위였다. 아침에 일어나도 개운하지 않았고, 손가락이나 무릎이 뻐근한 날이 잦았다. 검진 결과는 정상이었지만 몸 상태는 예전 같지 않았다.
건강검진에서는 특별한 이상이 없는데도, 피로감이나 몸의 불편함이 계속되는 경우가 있다. 만성 염증은 감기처럼 뚜렷한 증상이 나타나지 않는 경우가 많다. 피부 상처처럼 눈에 보이는 것도 아니고, 통증이 심하지 않은 상태로 오랜 기간 이어지기도 한다.
11일 질병관리청의 ‘2025 만성질환 현황과 이슈’에 따르면 2023년 19세 이상 성인 비만 유병률은 37.2%였다. 고콜레스테롤혈증 유병률은 20.9%로 집계됐다. 비만과 이상지질혈증이 흔해진 만큼, 몸속 염증 부담도 일부 환자만의 문제로 보기 어려워졌다.
◆소리 없이 이어지는 염증, 왜 문제인가
염증은 원래 몸을 지키는 반응이다. 세균이나 바이러스가 들어오거나 조직이 손상되면 면역세포가 움직인다. 열이 나고 붓고 붉어지고 아픈 이유도 여기에 있다.
급성 염증은 원인이 사라지면 대체로 가라앉는다. 문제는 염증 반응이 짧게 끝나지 않을 때다. 만성 염증은 낮은 강도로 오래 이어지며 혈관과 장기에 부담을 남길 수 있다.
피로감, 체중 증가, 잦은 근육통, 관절 불편감처럼 흔한 증상으로 지나가는 경우도 있다. 이 때문에 “나이 들어서 그렇겠지” 하고 넘기기 쉽다.
만성 염증은 류마티스관절염 같은 자가면역질환뿐 아니라 심혈관질환, 당뇨병 등 대사질환, 일부 암과도 관련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만 피로감이 계속되거나 관절이 뻐근하다고 해서 이를 모두 만성 염증 탓으로 볼 수는 없다.
비슷한 증상은 수면 부족이나 스트레스, 다른 질환에서도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원인을 판단할 때는 건강검진 결과와 생활습관, 기존 질환 여부 등을 함께 살펴봐야 한다.
◆내장지방은 단순한 ‘살’이 아니다
몸속 염증을 키우는 요인은 생활 속에 있다. 흡연, 잦은 음주, 수면 부족, 과도한 스트레스, 가공식품 위주의 식사, 운동 부족이 대표적이다. 대기오염 노출도 염증 반응에 영향을 주는 요인으로 꼽힌다.
특히 내장지방은 그냥 남는 에너지가 쌓인 덩어리가 아니다. 배 안쪽에 쌓인 지방은 염증성 물질을 분비하고, 인슐린 저항성·혈압·혈중 지질 수치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겉으로 마른 체형이라도 안심하기는 어렵다. 늦은 저녁 식사, 잦은 야식, 수면 부족, 운동 부족이 반복되면 복부 안쪽에 지방이 쌓일 수 있다. 검진표에는 아직 ‘정상’이라고 찍혀 있어도 몸속 부담은 천천히 커질 수 있다.
40대 이후에는 혈압이나 혈당, 콜레스테롤 수치가 예전보다 높아지는 사람이 늘어난다. 아직 질환으로 진단받지 않았더라도 안심할 단계는 아닐 수 있다. 수치가 경계선에 가까워진 상태가 오래 이어지면, 몇 년 뒤 건강검진 결과가 달라지는 경우도 적지 않다.
◆고감도 CRP, 단독 진단 아닌 ‘위험 신호’
몸속 염증 반응을 살피는 검사 중 하나가 고감도 CRP 검사다. CRP는 염증 반응이 있을 때 간에서 만들어져 혈액 속으로 나오는 단백질이다. 고감도 CRP는 일반 CRP보다 낮은 수준의 염증 반응까지 살필 수 있다.
고감도 CRP는 병을 진단하는 검사라기보다 심혈관질환 위험을 살펴볼 때 참고하는 지표에 가깝다. 수치가 높게 나왔다고 해서 특정 질환이 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감기에 걸렸거나 잇몸에 염증이 있는 경우에도 수치가 올라갈 수 있다.
비만과 흡연, 격한 운동, 기존 만성질환 역시 영향을 줄 수 있다. 이 때문에 고감도 CRP 수치만 따로 보기보다 혈압·혈당·콜레스테롤 수치와 체중, 복부비만 여부, 가족력 등을 함께 살펴볼 필요가 있다.
40세 이상이거나 고혈압·당뇨병·이상지질혈증·동맥경화증 병력이 있다면 검사가 필요한지 의료진과 상담해볼 필요가 있다. 관련 수치가 여러 차례 높게 나왔다면 건강식품에 의존하기보다 생활습관이나 기저질환 등 원인부터 점검하는 것이 우선이다.
◆영양제보다 먼저 바꿔야 할 것들
몸속 염증에 좋다는 식품이나 영양제를 찾는 사람은 많다. 강황, 오메가3처럼 연구가 이어져 온 성분도 있다. 그러나 식사, 수면, 운동이 무너진 상태에서 특정 성분만 챙긴다고 몸이 쉽게 달라지지는 않는다.
기본은 생활 습관이다. 체중을 줄이고, 가공식품과 당분 섭취를 낮추며, 채소·통곡물·생선·견과류처럼 덜 가공된 식품을 늘리는 방식이 먼저다.
걷기나 근력운동을 꾸준히 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반대로 잠을 줄여가며 운동하거나, 밥을 지나치게 줄이는 방식은 오래 이어가기 쉽지 않다. 몸 상태를 바꾸는 데 필요한 것은 무리한 실천보다 매일 지속할 수 있는 습관이다.
흡연 중이라면 금연이 우선이다. 술도 줄이는 것이 좋다. 이유 없이 피곤한 날이 이어지거나 혈압·혈당·콜레스테롤 수치가 예전보다 높아졌다면 건강검진 결과지만 확인할 것이 아니라 생활습관도 함께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한 대학병원 가정의학과 교수는 “만성 염증은 특별한 증상 없이 서서히 진행되는 경우가 많다”며 “건강검진 수치가 정상 범위라고 해서 생활습관 관리까지 미룰 수 있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이어 “내장지방이 늘고 수면 부족이나 스트레스가 반복되면 몸에 부담이 쌓일 수 있다”며 “영양제나 특정 식품에 의존하기보다 체중 관리와 규칙적인 운동, 충분한 수면 같은 기본적인 생활습관을 꾸준히 실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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