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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 가두는 대신 감각 건네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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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복진 기자 bo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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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웹툰 ‘저궤도인간’ 조은영
심리 형상화 ‘보는 맛’으로 입소문
“사건 자체만으로는 쉽게 감흥을 느끼지 못하는 분들, 심리적 개연성을 중요하게 여기는 분들을 위한 만화를 그리고 싶었어요. 인물 피부 안에서 일어나는 감각을 여러 갈래로 나누고 더 깊이 파고들어 내면을 직접 체험할 수 있는 만화요. 그런 이유로 ‘저궤도인간’은 서서히 주인공과 결속시키는 방식을 택했습니다.”

 

네이버 토요 웹툰 ‘저궤도인간’은 대학교 시간강사이자 무명 작가인 주재열이 아끼던 후배 이동재의 유작 ‘그만두어야 할 때’ 원고를 훔쳐 자신의 이름으로 출간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유작을 훔친다’는 익숙한 설정을 가져왔지만, 주인공의 대사와 행동을 따라가다 보면 전혀 다른 결을 가진 작품이라는 점이 드러난다.

주인공의 심리를 특유의 방식으로 시각화해 입소문을 타고 있는 네이버 토요 웹툰 ‘저궤도인간’의 조은영 작가는 “인물 피부 안에서 일어나는 감각을 여러 갈래로 나누고 더 깊이 파고들어 내면을 직접 체험할 수 있는 만화를 그리고 싶었다”고 전했다. 사진은 작가가 본인 사진 대신 전달한 ‘저궤도인간’ 대표 그림. 네이버웹툰 제공
주인공의 심리를 특유의 방식으로 시각화해 입소문을 타고 있는 네이버 토요 웹툰 ‘저궤도인간’의 조은영 작가는 “인물 피부 안에서 일어나는 감각을 여러 갈래로 나누고 더 깊이 파고들어 내면을 직접 체험할 수 있는 만화를 그리고 싶었다”고 전했다. 사진은 작가가 본인 사진 대신 전달한 ‘저궤도인간’ 대표 그림. 네이버웹툰 제공

‘저궤도인간’을 쓰고 그린 조은영 작가는 세계일보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사건의 중대성은 사건 자체가 아니라 그 사건이 인물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지에 따라 결정된다”며 “‘유작을 훔친다’는 소재가 큰 사건이 된 것은 주인공이 주재열이기 때문이고, 그런 주재열의 내면을 마치 내가 겪는 듯 따라가는 경험이 ‘저궤도인간’의 진짜 감상 포인트”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야기에서의 새로움은 플롯이 아니라 인물 안으로 더 깊이 들어가며 찾고 싶다”고 덧붙였다. 

 

그의 말처럼 ‘저궤도인간’은 주재열이 현재 느끼는 감정을 작가 특유의 방식으로 시각화하며 ‘보는 맛이 있는 작품’이라는 입소문을 타고 있다. 특히 9화 도입부가 압권이다. 바다 한가운데에서 홀로 헤엄치는 주재열의 모습으로 시작하는데, 이는 십수 년 동안 같은 자리(시간강사)에 머물러 있던 그의 심리를 형상화한 장면이다.

조 작가는 “주재열의 심리를 글로 풀어 쓰자면 ‘내가 어디에 있는지도 가늠하기 힘든 망망대해 속에 고립된 풍경’ 정도로 설명할 수 있다”며 “글은 감상자가 가장 풍부하게 상상할 수 있는 매체지만, 시각매체는 상상력을 크게 좁히는 매체”라고 짚었다. 이어 “그래서 장면을 만들 때 하나의 구체적인 이미지를 제시하는 행위가 감상을 제한하는 장벽으로만 남지 않게 하자는 생각을 한다”며 “감상을 가두는 대신 감각적 자극을 건네는 장면을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주인공 심리의 맛깔나는 시각화도 매력이지만, 대사 역시 이 작품의 중요한 힘이다.

조 작가는 “인물의 감정은 한두 개의 단어로 명명하는 순간 납작해질 뿐 아니라, 독자에게 설명하는 꼴이 되기 쉽다”며 “독자가 인물의 감정을 ‘체험’하게 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기 때문에, 감정 자체를 직접 묘사하기보다는 내가 전달하려는 복합적인 감정으로 독자를 안내해 줄 문장을 찾으려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비록 시각매체를 다루고 있지만 텍스트의 여백을 최대한 활용하려 한다”며 “장면과 글의 배합, 호흡과 타이밍으로 독자를 친절하게 이끌되, 감도가 높은 독자들이 각자의 머릿속에서 더 풍성한 감상을 만들어낼 수 있도록 가장 중요한 자리는 독자의 몫으로 비워둔다”고 덧붙였다.

 

작품에서 주재열은 이동재의 글을 훔친 뒤 들키지 않을까 불안과 죄책감에 시달린다. 하지만 그 역시 피해자다. 그의 문체를 흡수한 동기 백상엽이 이를 따라 쓴 원고를 먼저 출간해 스타 작가가 됐기 때문이다. 백상엽 또한 주재열처럼 양심의 가책과 두려움에 휩싸이다 결국 진실을 털어놓는다. 조 작가는 “예술계에서는 모방이 심심찮게 벌어진다”며 “누가 알든 모르든, 정작 본인이 알고 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고 내부의 시선을 끝내 외면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백상엽은 주재열과 닮았다”고 말했다.

십수 년 동안 같은 자리(시간강사)에 머물러 있던 주인공 주재열의 심리를 바다 한가운데에서 홀로 헤엄치는 모습으로 표현한 ‘저궤도인간’ 9화의 도입부. ‘저궤도인간’ 캡처
십수 년 동안 같은 자리(시간강사)에 머물러 있던 주인공 주재열의 심리를 바다 한가운데에서 홀로 헤엄치는 모습으로 표현한 ‘저궤도인간’ 9화의 도입부. ‘저궤도인간’ 캡처

웹툰은 현재 42화로 1부를 마무리하고 휴재에 들어간 상태다. “90화 이내로 완결할 생각”이라는 그는 오는 9월 말쯤 연재를 재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조 작가는 “중반부까지의 흐름을 보고 후반부에 닥칠 유혹과 타락의 국면을 두려워하는 독자분들도 있다”며 “하지만 ‘파우스트식 거래의 끝은 결국 파멸’이라는 도식적인 결론이나, ‘누가 재열에게 돌을 던질 수 있는가’ 같은 도덕적 질문을 위해 이 이야기를 쓴 것이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저궤도인간’이 하나의 감각적 체험으로 읽히기를 바란다”며 “그 체험을 끝낸 뒤 삶을 바라보는 시선에 조금이라도 새로운 각도가 더해진다면 더없이 기쁠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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