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잊지 못한 부모의 선택
‘죽은 사람은 누구의 것’ 질문
인간·비인간 대립 구도 탈피
AI기술 위화감 담은 SF영화
칸서 ‘지나치게 낙천적’ 혹평
고레에다 “동서양 시각차 느껴
인간다움 계속 자문하며 제작”
2년 전 7살 아들을 사고로 잃은 부부는 그 빈자리를 견디다 못해 아이의 외형과 기억을 재현한 휴머노이드를 집으로 들인다. ‘상자 속의 양’(10일 개봉)에서 고레에다 히로카즈(64·사진) 감독은 이러한 설정을 통해 기술이 죽은 이를 복원할 수 있는 시대, 애도의 행위가 어디로 향하는지를 묻는다. 연출·각본·편집을 맡은 이 작품으로 고레에다 감독은 지난달 폐막한 칸 영화제 경쟁 부문에 통산 8번째로 초청된 바 있다.
◆“죽은 사람은 누구의 것인가”
5일 서울 강남구 영화 제작·배급사 NEW 사옥에서 만난 고레에다 감독은 죽은 이를 되살리는 기술이 실제 비즈니스에 활용되는 현실에 대한 충격과 놀라움이 작품의 시작점이었다고 밝혔다. 약 2년 전 중국에서 생성형 AI로 고인을 ‘복원’하는 사업이 확산하고 있다는 보도를 접한 후 관련 업계를 취재하기 시작했으며, 사망한 가수가 홀로그램으로 재현돼 방송 무대에 오른 실제 사례 역시 이번 작품의 단초가 됐다.
그는 이러한 기술에 위화감을 느끼면서도 “나 역시 돌아가신 아버지에게 한마디 건네고 싶다는 마음이 있다”며, 그 양가감정이 시나리오의 바탕이 됐다고 말했다. “죽은 사람은 과연 누구의 것인가”라는 영화 속 대사는 이러한 문제의식을 응축한다.
감독은 ‘걸어도 걸어도’(2009) 등 여러 전작에서 보이지 않지만 분명 존재하는 죽은 이의 존재를 다뤄왔다. 이번에는 죽은 이의 존재를 물리적 형상으로 호출한다. 그러나 휴머노이드를 통해 ‘되살아난’ 아들을 마주한 부모는 깊은 이질감을 경험한다. 아울러 휴머노이드 아이는 부모의 세계에 안온하게 머무르는 대신 자신만의 가치 체계를 형성하며 독자적 세계를 지어나간다.
영화 속 결말은 인적 드문 숲으로 향한다. 불가피한 이별이 닥치고, 모두는 각자의 자리로 되돌아간다. 부모에게는 진정한 애도의 과제가 남고, 휴머노이드는 독립된 존재로 살아가게 될 터다. 그렇기에 이 작품은 상실의 이야기이면서, 자녀의 독립을 경험하는 부모의 이야기로도 읽힌다.
◆칸 혹평… “AI 둘러싼 동서양 시선차”
영화에는 생텍쥐페리의 ‘어린왕자’가 주요한 모티프로 등장한다. 부모는 돌아온 아이에게 ‘어린왕자’를 읽어주지만, 휴머노이드는 이를 이해하지 못한다. “인간다움이란 무엇인가를 계속 생각하면서 영화를 만들었다”는 고레에다 감독은 ‘상상력’이라는 인간만의 특질을 드러내기 위해 어린왕자를 호출했으며, 작품의 제목 또한 그로부터 가져왔다. 상자 안에 있는 보이지 않는 양을 상상할 수 있는 어린왕자의 능력은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핵심을 상징한다.
이 작품은 지난달 칸 공개 당시 고레에다 감독의 필모그래피 중 이례적으로 낮은 평가를 받았다. 서구 평단은 AI 디스토피아를 그리는 영화의 태도가 지나치게 낙관적이라는 점을 주요한 문제로 지적했다. 스산한 근미래를 그리는 SF이면서도 가족 드라마 특유의 정서를 붙들려다 보니, 영화 전반의 톤이 불균형하고 종종 의아해지는 것도 사실이다.
다만 인간과 비인간의 대립 구도를 반복해온 기존 서구권 AI 서사와 달리, 승패나 단절이 아닌 양자의 공존 가능성을 모색했다는 점에서 이 작품은 인상적이다. 특히 인간과 휴머노이드가 어떤 식으로 관계 맺어야 지속 가능한 공존이 가능할지 탐색하는 영화 결말부에서 엿보이는 일본적 시선은 곱씹을 가치가 있다.
고레에다 감독은 영화에 대한 비판적 반응에 대해 “지나치게 낙천적이라는 평가가 많았고, 일부 관객은 당황해했다”며 “생성형 AI가 인간을 지배할 수 있다는 두려움이 널리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서구에서는 AI를 인간 사회를 위협하는 존재로 바라보는 경향이 강하고, 이는 인간 중심주의가 오랜 기간 형성된 문명사적 배경과도 관련이 있는 것 같다. 반면 일본은 인간만을 역사의 중심에 두지 않는 문화적 토대가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영화가 단순히 ‘영원히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로 끝나지 않는다”며 “결말은 관객에 따라 다르게 해석될 수 있고, 감독으로서 다양한 반응을 재미있게 지켜본다”고 덧붙였다.
한편 20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휴머노이드 역할로 발탁된 구와키 리무(10)는 고레에다 감독이 또 한번 발굴해낸 인상적 신예다. 고레에다 감독은 그에 대해 “테이크마다 대사의 뉘앙스를 바꾸며 놀이처럼 연기하는 감각이 있었다”고 상찬했다. 리무는 인터뷰에서 “친절하고 다정한 고레에다 감독님과 함께 영화를 찍어 좋았다. 내 꿈도 감독이 되는 것”이라고 말해 현장에 웃음을 자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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