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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문화] 이다음에는 너의 ‘반려’가 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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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여름 출간 ‘반려’ 사화집 속
시인들의 반려는 과연 누구일까
예술과 함께할 수 있으니 감사
연민을 지닌 자가 되리라 다짐

지방선거 투표장에 갔다. 대기하지 않으려고 아침 일찍 빠른 걸음으로 주민센터로 갔다. 그런데 나보다 일찍 온 사람이 많아 줄을 섰다. 내 뒤로 부부가 손잡고 걸어왔다. 아이는 방금 깬 듯 졸린 눈을 비비며 아빠 손을 잡고 따라왔다. 그 가족이 일부러 맞춰 입은 건지 모르지만, 세 사람의 약간씩 농도가 다른 초콜릿색 티셔츠와 서로 챙겨주는 태도에서 달콤하고 다정한 기운을 느꼈다.

방으로 돌아온 나는 창문부터 열었다. 더운 바람이 들어왔다. 팔이 아프도록 원두를 갈아 종이필터에 부었다. 물을 끓이며 전동 커피 그라인더를 사야겠다고 생각한 지 몇 달 되었다는 사실이 떠올라 어색하게 웃었다. 커피 한 모금 머금고 오르골 태엽을 감는다. 음악 소리와 함께 고양이 인형이 빙글빙글 돈다. 외로울 때 고양이 인형을 쳐다보거나 커피에 설탕을 왕창 넣거나 화분에 물 주는 습관은 좋지 않은 것 같다. 화분에 물을 너무 자주 줘서 뿌리가 썩은 나무도 있다. 이젠 나무를 사지 말아야지. 책상 앞에 앉았다. 오늘은 써야 할 글이 많다.

김이듬 시인·서울대 강사
김이듬 시인·서울대 강사

우물쭈물하다가 ‘반려’ 사화집 원고는 끝내 보내지 못했다. 마감일을 넘겨버린 그 사화집은 한국시인협회에서 올해 8월 출간 예정인데, 예상외로 시인 수백 명이 작품을 보내왔다고 한다. 나는 ‘반려’라는 단어가 주는 무게감에 눌려 상상력마저 사라졌는지, 한 달 넘게 곰곰이 한 문장 적다 지우고 새로이 적다 지울길 반복했다. 그러다가 일디코 엔예디의 ‘침묵의 친구’를 보고 온 날, 나무와 사랑을 키워 왔던 나 자신과 직면했다. 내게 가지를 뻗어온 나무는 소나무였다. 그 소나무는 바닷가 절벽 마을 부서진 초소와 방공호로 보이는 구덩이 사이에 있었다. 내가 해파랑길 산책하려고 집에서 내려올 때마다 마주치는 나무였다. 특별히 장엄하거나 잘생긴 나무는 아니었다. 오히려 평범했는데 내가 말을 하면 잘 들어주었다. 나를 기억하고 기다려주는 나무였다. 나는 정표로 나뭇가지에 반짝거리는 노란 리본을 매어 주었다. 작년 봄날 산불 났을 때 그 나무도 탔다. 소나무 자신이 지닌 송진이 화력을 키웠을 것이다.

내가 어렸을 때 마당에서 키웠던 개가 있었다. 크고 하얗고 순한 애였다. 이름은 해피, 아버지가 붙여준 이름이었다. 나는 그 개를 나 자신만큼 아꼈지만, 어느 여름날 귀가하니 개가 죽어 있었다. 해피엔드인 사랑은 불가능한 걸까? 이후로 나는 개와 함께 살지 않는다. 이따금 나는 친구네 마당에서 뛰어노는 세 마리 개를 만나 같이 산책하려고 충청도 미원면까지 가곤 한다.

 

 

이다음에는

너의 개가 될게

 

다음 생이 있다면,

죽지 않는 나라에서

계속 살아야 할 운명이라면

 

이다음에는

너의 개가 될게

 

더 벌어지지 않는다면,

지구를 한 바퀴 돌아서

네가 나를 따라잡는다면

 

우리는 서로의 거리를 잊고

각자 어울리는 이름을 새로 지어주자

 

- 민구 ‘이어달리기’ 부분

 


시인들의 반려는 누구일까? ‘반려’라는 사화집이 기대된다. 그 책이 출간되면 동식물을 반려로, 문학을 반려로 삼는 이의 작품도 볼 수 있을 것 같다. 머잖아 반려로서의 휴머노이드 로봇이 등장할 거라는 이 시대에, 10가구 중 4가구가 1인 가구인 시대에 반려를 가진 사람은 드물 것 같다. 예술가라서 좋은 점은 별로 없지만 예술 자체가 반려라서 얼마나 다행인지! 문학은 시를 쓰는 사람에게 연민을 지닌 신뢰할 만한 존재가 되라고 조언해 준다.

 

김이듬 시인·서울대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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