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월(駐越) 한국군 사령관을 지낸 채명신 장군(육군 중장)의 회고록 ‘베트남 전쟁과 나’는 2006년 출간됐다. 육군사관학교 5기생인 채 장군은 육사 2기 출신 박정희 대통령과의 인연을 소개해 눈길을 끌었다. 6·25 전쟁 기간 북한 점령지에서 북한군처럼 위장한 채 게릴라 전투를 벌인 채 장군이 1951년 강원 강릉 시내에서 우연히 박 대통령과 마주쳤다. 당시 계급으로 채 장군은 중령, 박 대통령은 대령이었다. 채 장군을 음식점에 데려간 박 대통령은 불고기를 실컷 사 먹였다. “인민군 소굴을 헤집고 다녔으니 장하고 기적이야”라며 육사 후배인 채 장군을 한껏 치켜세웠다.
1961년 5·16 군사 정변으로 집권한 박정희정부는 정통성이 약했고, 이는 미국과의 관계에서 부담으로 작용했다. 당시 미국은 베트남 공산화를 막기 위해 군대까지 보내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계속되는 미국의 압박 속에서 한국군의 베트남 파병이 불가피하다고 여긴 박 대통령은 채 장군을 청와대로 불렀다. 주월 한국군 사령관을 맡으라고 부탁하기 위해서였다. 회고록에 따르면 채 장군은 그보다 2살 많은 육사 선배이자 6·25 전쟁 당시 숱한 전공을 세운 이병형(2003년 별세) 장군을 추천했다고 한다. 하지만 박 대통령이 보기엔 게릴라 전투에 능한 채 장군이 적임자였던 듯하다. 이 장군은 훗날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 운영 주체인 전쟁기념사업회 초대 회장을 지냈다.
베트남 파병 당시만 해도 소장이었던 채 장군은 1966년 중장으로 진급했다. 국군이 공산주의자들과의 싸움에서 용맹을 떨치고 있다며 미군이 입이 마르도록 칭찬하던 때였다. 당시 박 대통령은 잠깐 한국에 돌아온 채 장군에게 별 셋 중장 계급장을 달아줬다. 1965년부터 4년간 주월 한국군 사령관을 역임한 채 장군은 1969년 귀국해 육군 제2군사령부(현 제2작전사령부) 사령관에 임명됐다. 그 시절 한국은 박 대통령 3연임을 위한 3선 개헌이 단행되고 또 10월 유신(1972)에 앞선 준비 작업이 진행되는 등 정치적 격변기였다. 평소 박 대통령에게 입바른 소리를 곧잘 했던 채 장군은 1972년 2군사령관을 끝으로 군복을 벗어야 했다.
지난 2일 전쟁기념관에서 ‘이달(6월)의 호국 인물’로 선정된 채 장군을 기리는 현양 행사가 열렸다. 6월이 호국보훈의 달이란 점을 감안하면 참으로 뜻깊은 일이다. 1926년 황해도에서 태어난 채 장군은 2013년 87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생전에 “나를 월남 파병 장병들이 묻혀 있는 묘역에 묻어 달라”고 당부한 고인은 유언에 따라 대전현충원 장군 묘역(26.4㎡·8평)이 아닌 서울현충원 사병 묘역(3.3㎡·1평)에 안장됐다. 당시 국방부 관계자는 “장군이 자기 신분을 낮춰 사병 묘역에 안장되길 희망한 것은 현충원 설립 사상 최초”라고 말했다. 오는 11월27일은 채 장군의 100회 생일에 해당한다. 국방부와 육군의 각별한 관심을 당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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