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 변화의 실험
야외 광장에 파라솔·테이블 놓으니
지나가는 곳서 머무는 곳으로 변해
생활속 풀뿌리 문화 생태계 만들어
공연의 차별화 모색
2026년 3월부터 오전 11시 맥모닝 콘서트
60∼70인조 대편성 악단 연주회 눈길
매회 지휘자 바꿔 청년에게 기회 제공
새로운 도전의 시작
6월 여성 중심 ‘영희 페스티벌’ 개최
11월 홍대 뮤지션과 손잡고 ‘인디축제’
연극에선 마방진과 ‘투신’ 공동제작도
조직 개편 승부수
예술본부 신설 2027년 공연기획 매진
동기부여·일할 환경 만들기에 최선
외국인의 문화 경험 공간 역할할 것
마을버스로, 때로는 걸어서 갈 수 있는 문화 공간은 지역 공동체의 소중한 자산이다. 시민에게는 큰 부담 없이 예술을 향유할 수 있는 생활 속 문화 중심이며 예술가에게는 기량을 선보일 수 있는 소중한 무대다. 이렇게 형성된 풀뿌리 문화 생태계는 K컬처 강국의 기초 인프라다.
이렇게 만들어진 지자체 문화재단은 서울에만 23곳에 달한다. 2007년 설립된 마포문화재단은 축적한 기획 역량이나 무대의 다양성에서 그중에서도 선두권이다. 올해 한층 더 진화한 공간으로 거듭나고 있는데 지난해 6월 취임한 고영근 대표의 비전 ‘글로벌 문화예술도시’가 그 중심에 놓여 있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때 공간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사람들이 공을 차고 자전거를 타는 모습이 자연스럽기는 한데 아트센터로서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어서 많이 바꿔왔고 앞으로 계속 바꿔나갈 생각입니다.”
세계일보와 지난달 21일 마포문화재단에서 만난 고 대표는 취임 후 1년 중 절반은 탐색에 집중했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계속 기존 문제점을 찾는 데 집중을 했던 것 같아요. 사업에 대해 구체적으로 별로 얘기를 안 했습니다. 계속 ‘정말 마포에서 필요한 게 뭔지를 찾겠다’였죠.”
그 결과물이 직원과 함께 만든 ‘누구나 머물고 싶은 글로벌 문화예술도시 마포’를 구호로 내건 ‘비전 2030’이다. 시민은 물론 마포에 모여드는 외국인 유학생·관광객 등을 겨냥한 선택이다. 시작으로 공간부터 바꿨다. 야외광장에 파라솔과 테이블을 놓고 식목일엔 직원들과 함께 꽃과 나무를 심었다. “파라솔을 설치한 이후 아침부터 저녁까지 찾는 주민이 크게 늘었습니다. 그저 공연을 보거나 체육센터를 가기 위해 지나가는 공간이었는데 사람들이 와서 머무를 수 있는 공간으로 바뀐 거죠.”
고 대표 이력은 문화계에서 이채롭다. 첫 직장이 호텔신라였고 두 번째가 삼성에버랜드 식음료 사업부. 서비스업 최전선을 12년간 누빈 뒤 2003년 예술의전당에 들어갔다. 예술의전당에서 그가 처음 맡은 일은 야외축제와 외식사업이었다. 직영 매장 하나로 시작해서 2015년 60억원 매출, 전당 예산의 약 13%를 차지하는 수익원으로 키웠다. 이후 사업개발부장·경영지원부장·감사실장 등을 거치며 쌓은 경험과 지식을 마포문화재단에서 활용하게 됐다.
마포문화재단이 운영하는 마포아트센터(MAC)는 마포 프레스티지자이 등 대규모 아파트 단지에 둘러싸여 있다. 고 대표는 그 입지에서 기회를 봤다. 그래서 올해 3월 시작한 ‘맥모닝 콘서트’는 매월 넷째 주 수요일 오전 11시 아트홀맥에서 열린다. 전석 2만원인데 최근 3회차까지 거의 매진이다. “주부들한테 가장 좋은 시간이 오전 11시부터 1시까지예요. 자녀들에게서 잠시 떨어져 있을 수 있는 시간. 이 시간이 가장 좋다고 판단했죠. 예술의전당 ‘11시 콘서트’가 워낙 성공적이었지만 저희처럼 처음 시작하는 입장에서는 굉장히 위험성이 커요. 그래서 김용배 해설가를 초빙했고 흔쾌히 하시겠다고 해서 지금 반응이 굉장히 좋습니다.”
에버랜드와 예술의전당에서 체득한 노하우도 녹아들었다. 공연 전 커피와 호두과자를 제공하는 서비스를 기획했다. “아침을 드시고 나와서 점심 전이니까 간식이 필요한 타이밍이거든요. 백화점도 커피 이벤트로 회원 수를 굉장히 많이 늘렸는데 저희도 그 사례가 효과적이겠다 싶었습니다.”
맥모닝은 공연 본질에서도 뛰어나다. 자치단체 공연장에서 보기 힘든 60∼70인조 대편성 악단 연주회다. 지휘자 섭외에도 철학을 담았다. “지휘자들이 가장 어려운 상황이에요. 악기 연주자들은 그래도 기회가 많은 편인데 지휘자는 어딘가를 지휘해야 하는 거잖아요. 그래서 매회 지휘자가 바뀌어요. 젊은 지휘자들한테 기회를 주자는 의도죠.”
올 하반기에는 마포아트센터에 지금껏 없던 대담한 무대도 펼쳐진다. 주목받는 여가수 선우정아·이상은·김윤아·요조가 한 무대에 선다. 6월 12∼14일 3일간 열리는 ‘영희 페스티벌’인데 국내 최초 여성 중심 복합 문화예술 페스티벌이다. 가수들뿐 아니라 여성 감독·작가 등 다양한 분야의 아티스트들이 3일간 모인다. 축제명 ‘영희’는 한국 교과서에 첫 번째로 등장했던 여성 이름이자 한자 ‘榮喜’가 뜻하는 영광과 기쁨의 의미를 함께 담았다. 반응이 좋아서 얼리버드 티켓이 예매 개시 1분 만에 매진됐다.
고 대표는 이 무대에 대해 외부 제안을 받은 뒤 10초 만에 수락했다고 했다. “마포아트센터의 프로그램 차별화에 대한 고민이 있었어요. 다른 대형 극장과 다른 프로그램을, ‘우리만이 할 수 있는 기획과 브랜드를 만들자’는 얘기를 해 왔는데 우연히 제안을 받자마자 딱 ‘이거다’라고 생각했어요. 페스티벌 이름부터 굉장히 독특했고 기획 의도 자체가 우리 무대에 어울려서 한번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바로 들었습니다.”
마포문화재단은 연극 쪽에서는 창단 20주년을 맞는 극공작소 마방진 신작 ‘투신’을 공동제작한다. 지난해 말부터 30∼40곳의 기획사를 직접 만난 끝에 내린 선택이다. “마방진이 가장 좋았습니다. 지금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대세인 극단이기에 믿고 볼 수 있습니다. 또 다른 단체 중에 요즘 잘하는 곳들이 굉장히 많았는데 그분들하고는 내년에 같이하자고 약속도 했습니다.”
고 대표는 이미 내년 공연 기획에 큰 공을 들이고 있다. 먼저 조직부터 바꿨다. 1본부 1센터 체제를 3본부로 개편하면서 예술본부를 신설했다. “공연 기획을 전담하는 본부와 본부장이 생겼잖아요. 그게 발탁이고 승진이고 동기부여라고 생각해요. 기획자들에게 일할 의욕을 주고 새로운 걸 만들어낼 기회를 주는 거죠. 제가 올해 했던 일 중에 가장 중요한 일은 조직 개편이에요.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거죠.”
30여년 직장 생활이 가르쳐 준 리더십이다. 그는 “가장 좋은 리더·사장은 직원들한테 동기부여를 잘해 주는 리더”라며 “저 역시 직원들이 개인적으로 성장할 기회를 주는 대표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마포아트센터가 지닌 개성은 뚜렷하다. 현재 1000석 규모의 무대로는 대형 오페라·뮤지컬이나 전막 발레를 올리기는 어렵다. 대신 인디뮤지션들이 모인 홍대 거리가 인근이다. “마포아트센터는 대형 오페라·뮤지컬 등은 어려우니 기본적으로 클래식하고 연극 쪽으로 차별화할 수밖에 없었고, 또 다른 한 축은 인디음악입니다. 영희 페스티벌처럼 11월에 홍대에 있는 인디음악 공간 롤링홀과 함께 인디음악 축제를 엽니다. 클래식과 인디음악, 좋은 연극을 주로 올리는 극장으로 만들어 갈 생각입니다.”
외국인 관객 유치도 고 대표에겐 중요한 과제다. 바로 옆 서강대 외국인 학생 2000여명과 에어비앤비로 몰리는 연남동·망원동의 외국인들 그리고 K컬처를 경험하고 싶은 모든 외국인이 대상이다. “대형 극장에는 외국인 관객이 거의 없는 상황입니다. 우리는 작지만 외국인들이 공연 보러 와서 K컬처를 만나는 극장으로 만들고 싶습니다.”
새롭게 정비된 마포아트센터 앞 광장에선 마포다운 축제도 열린다. 마포는 전국에서 독립책방이 가장 많은 지역이다. 여기서 착안한 ‘무대 위의 책방’이 하반기에 열린다. 마포구 40∼50곳의 독립서점이 참여하는 야외 도서 축제다. 금속·도예·목공·유리공예 등 마포 곳곳의 공방을 모은 ‘공방전’도 신설한다.
고 대표는 장면 하나를 꺼냈다. “최근 공연에 홍대 외국인 학생 30명이 관객으로 왔어요. 한 번 다녀간 것으로 끝날지 몰라도 그들에겐 오랜 기억으로 남을 겁니다. ‘내가 마포에 있을 때 마포아트센터 공연도 봤다.’ 이런 얘기를 나중에 할 겁니다. 연남동이나 망원동 거리에는 여행가방을 끌고 다니는 외국인이 엄청 많아요. 그런 분에게 K컬처를 경험할 수 있는 공간으로서 우리가 역할을 해야 합니다. 우리만 할 수 있는 공연과 영역으로 마포아트센터의 브랜드를 만들어나가겠습니다.”
고영근 마포문화재단 대표이사는…
●1964년 울산 출생 ●호텔신라·삼성에버랜드 FS사업부 ●예술의전당 경영지원부장·사업개발부장·감사실장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표창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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