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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정우칼럼] ‘공정한 임금’이라는 착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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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 만든 이들과 집행한 이들
동일 보상 받는 구조 공정한가
노동자 연대·미래 가치 외면한
삼전 노사 협약은 불행한 선례

2021년의 일이다. SK하이닉스 입사 4년 차 직원이 CEO에게 항의성 이메일을 보냈다. “삼성만큼 성과급 챙겨준다고 하지 않았나.” “성과급 산출 기준을 공개하라.” 알다시피 5년이 지난 지금 상황은 정반대다. 이제는 삼성전자 직원들이 하이닉스만큼 챙겨 달라고 성화다. 공정한 임금 논쟁은 이렇게 시작됐다. MZ 노조의 핵심 정체성이다. 노동자 간 연대 같은 게 안중에 있을 리 없다. 회사의 미래 가치도 마찬가지다. 회사의 실적은 내 노력과 실력의 결과이므로, 실적에 비례해 보상받는 건 당연하다고 여긴다.

삼성전자의 임금 협약이 타결됐다. 노조는 1인당 수억원의 성과급을 지급하지 않으면 공장을 멈추겠다고 했다. 100조원 손실이 예상됐다. 사측은 해고권도 없는 데다 노란봉투법 이후 손해배상 청구도 어려워진 상황에서 벼랑 끝으로 몰렸다. 다행히 파업은 피했고, 갈등은 봉합됐다. 하지만 후폭풍이 거세다. 사측을 넘어 상식을 가진 주주와 국민이 성토하고 있다. 각기 말은 다르지만, 질문은 같다. 반도체라는 ‘부문’에 몸담고 있다는 이유로 받아 가는 수억원의 성과급, 이것이 과연 공정한 임금인가.

구정우 성균관대 교수·사회학
구정우 성균관대 교수·사회학

영업이익의 10.5%를 재원으로 삼아 지급되는 성과급. 세간의 오해와 달리 ‘현금잔치’는 아니다. 대부분 주식으로 제공되고, 처분 제한도 붙는다. 얼핏 보면 인력 이탈을 막고 장기 보상을 유도하는 엔비디아 등 글로벌 초기업의 보상체계와 흡사하다. 그러나 중요한 차이가 있다. 엔비디아는 제조 공장을 직접 운영하지 않는 팹리스 기업이다. 인력의 대부분은 연구개발, 설계, 소프트웨어 생태계 구축에 투입된다. 이들이 혁신적인 AI 칩 아키텍처를 설계한다. 당연히 그에 상응하는 주식 보상을 받는다.

반면 삼성전자는 연구개발직과 생산직이 함께 공존하는 거대 제조기업이다. 오히려 생산직 비율이 더 높다. 물론 반도체 산업이 개발과 생산의 총화라는 점은 분명하다. 아무리 뛰어난 기술도 공정 안정화, 수율 개선 등 현장의 집행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성과로 이어질 수 없다. 그럼에도 혁신의 진원지가 연구개발이라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 메모리 기술의 축적과 고대역폭메모리(HBM) 개발 없이 오늘의 폭발적 수요 창출은 불가능했다.

그렇다면 혁신을 만든 사람과 이를 집행한 사람이 동일한 보상을 받는 구조가 과연 공정한지 물어야 한다. 삼성전자 성과급은 노력과 실력에 대한 정교한 보상이라기보다, 특정 사업부에 속했다는 우연과 시장 호황이 결합한 우발적 보상에 가깝다. 때마침 개발자들은 혁신을 거듭했고, AI 생태계는 폭발했다. 그 파도 위에 올라탄 사람들이 막대한 보상을 받게 된 것이다. 평범한 시민들이 박탈감과 상실감을 느끼는 건 당연하다.

공정성이 무너진 또 다른 축도 있다. 왜 적자를 낸 부서가 반도체라는 부문에 소속됐다는 이유만으로 억대의 성과급을 받아야 하는가. 반대로 반도체가 어려울 때 실적을 떠받쳤던 가전부문은 왜 성과급에서 소외되어야 하는가. 이 또한 공정치 않다. 고루고루 귀히 대접해 공정을 기한다는 ‘평등주의적 공정성’에도 어긋난다. 상생과 연대의 원칙에도 위배된다. 이러니 찬반투표가 부문 간 극명하게 갈린 것이다.

공정한 임금이라는 허울뿐인 결실의 배후에는 기울어진 운동장이 있다. 주 52시간 노동시간은 지켜야 하고, 해고는 어렵고, 손해배상 청구도 사실상 쉽지 않은 상황에서 기업은 고액 성과급을 요구하는 집단행동 앞에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다. 이재명 대통령이 말했듯, “노동권만큼 기업 경영권도 존중”되어야 하지 않나.

삼성전자의 이번 임금 협약 타결은 불행한 선례로 남을 것이다. 앞으로 수많은 산업에서 더 많은 노동자가 ‘공정한 임금’이라는 이름으로 공정 이상의 몫을 요구할 것이다. 그리고 기업은 점점 더 기울어진 운동장 한쪽으로 밀려날 것이다. 바로 공정한 임금이라는 착각 때문이다. 시장이 해결하지 못하면 국가가 나선다. 팔을 비틀어 결국 ‘협상 타결’을 선언할 것이다. 그 결과는 무엇일까. 개발의 위축, 설비투자의 축소, 경쟁력의 약화, 그리고 마침내 성과급 잔치의 종말일 것이다.

 

구정우 성균관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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