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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합도 파멸도… 시작은 ‘말 한마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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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해 선임기자 pth1228@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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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역사 뒤흔든 연설 82편 소개
“내가 바칠 것은 피와 수고, 눈물…”
처칠, 제2차 세계대전 흐름 바꿔
히틀러는 대중의 공포·혐오 자극
정보 홍수 속 언어의 힘 집중조명

세상을 바꾼 목소리/ 사이먼 시백 몬티피오리/ 이로운 옮김/ 시공사/ 2만2000원 

 

오늘날 우리는 정보의 홍수 속에 살고 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의 짧은 문장과 자극적인 쇼트폼 영상이 쉼 없이 쏟아지는 시대다. 말은 넘쳐나지만, 정작 시대를 움직이는 진정한 ‘목소리’를 만나기는 어려워졌다. 이런 시점에 국내 번역 출간된 ‘세상을 바꾼 목소리’는 언어가 가진 본연의 힘을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책이다.

말은 단순한 표현을 넘어 사람을 움직이고 시대를 흔들며, 때로는 역사의 방향까지 바꾸는 힘이 되어 왔다. 책은 인류의 역사를 뒤흔든 결정적 연설 82편을 통해 한 사람의 목소리가 어떻게 대중을 열광시키고, 선동하며, 시대를 움직였는지를 보여준다. 영국인들의 영혼에 불을 지핀 윈스턴 처칠,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의 명연설의 주인공 마틴 루서 킹, 홀로코스트를 천명한 광기의 아돌프 히틀러, 전장 연설을 통해 여왕의 카리스마를 증명한 엘리자베스 1세. 세계일보 자료사진
말은 단순한 표현을 넘어 사람을 움직이고 시대를 흔들며, 때로는 역사의 방향까지 바꾸는 힘이 되어 왔다. 책은 인류의 역사를 뒤흔든 결정적 연설 82편을 통해 한 사람의 목소리가 어떻게 대중을 열광시키고, 선동하며, 시대를 움직였는지를 보여준다. 영국인들의 영혼에 불을 지핀 윈스턴 처칠,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의 명연설의 주인공 마틴 루서 킹, 홀로코스트를 천명한 광기의 아돌프 히틀러, 전장 연설을 통해 여왕의 카리스마를 증명한 엘리자베스 1세. 세계일보 자료사진

‘예루살렘 전기’, ‘젊은 스탈린’, ‘우편함 속 세계사’ 등으로 잘 알려진 영국 역사학자 사이먼 시백 몬티피오리는 고대부터 현대까지 인류의 역사를 뒤흔든 결정적 연설 82편을 소개한다. 군중을 열광시키고 국가의 운명을 바꾸며 시대의 방향을 전환한 목소리들이다.

“내가 바칠 것은 피와 수고, 눈물 그리고 땀방울뿐입니다.” 1940년 5월13일 영국 하원에 울려 퍼진 윈스턴 처칠의 연설은 제2차 세계대전의 흐름을 바꾼 대표적 순간으로 꼽힌다. 당시 유럽 대륙은 나치 독일에 잠식되고 있었고, 영국 내부에서도 히틀러와의 타협론이 고개를 들던 시기였다. 막 총리에 취임한 처칠은 대중에게 헛된 희망을 약속하지 않았다. 오히려 전쟁의 참혹함을 정면으로 직시하게 만들었다. 저자는 처칠의 언어가 화려한 수사가 아니라 죽음을 각오한 인간의 결의에서 비롯된 것이었다고 평가한다. 승리를 장담하지 않으면서도 끝까지 싸워야 한다는 도덕적 당위를 설득해낸 그의 연설은 연합군 승리의 정신적 토대가 됐다.

사이먼 시백 몬티피오리/ 이로운 옮김/ 시공사/ 2만2000원
사이먼 시백 몬티피오리/ 이로운 옮김/ 시공사/ 2만2000원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1963년 8월28일 워싱턴 링컨기념관 앞에서 울려 퍼진 마틴 루서 킹 목사의 연설 역시 책의 백미다. 저자는 킹 목사가 준비된 원고를 넘어 현장의 열기 속에서 즉흥적으로 진심을 토해냈다고 설명한다. 킹의 연설이 위대한 이유는 단순한 분노의 표출이 아니라 포용의 언어였다는 점이다. 그는 백인을 적으로 규정하지 않았고, 미국이 본래 약속했던 자유와 평등의 정신으로 돌아가자고 호소했다. 성경적 수사와 민주주의 가치가 결합한 그의 목소리는 오늘날까지도 인권운동의 상징으로 남아 있다.

이 책의 특별한 지점은 위대한 연설만을 찬양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저자는 인류를 파멸로 몰아넣은 광기의 언어 또한 정면으로 다룬다. “국제 유대 금융 세력이 다시 전쟁을 일으킨다면, 그 결과는 유럽 유대 인종의 절멸이 될 것이다.” 1939년 독일 제국의회에서 행한 아돌프 히틀러의 연설은 홀로코스트를 예고한 악명 높은 발언으로 기록된다. 히틀러는 독일 사회의 모든 불행을 유대인 탓으로 돌리며 대중의 공포와 혐오를 조직적으로 자극했다. 저자는 이를 단순한 광인의 외침이 아니라 철저히 계산된 대중 심리 조작이라고 분석한다. 경제적 불안과 패전의 상실감 속에서 사람들은 희생양을 원했고, 히틀러는 언어를 통해 그 욕망을 폭력으로 전환했다. 책은 혐오와 결탁한 언어가 어떻게 문명을 파괴하는지 섬뜩하게 보여준다.

“나는 비록 연약하고 가냘픈 여인의 몸을 지녔으나, 왕의, 그것도 영국 왕의 심장과 용기를 가졌습니다.” 1588년 스페인 무적함대의 침공을 앞두고 군대 앞에 선 엘리자베스 1세의 틸버리 연설도 인상적이다. 당시 여성 군주에 대한 불신과 군사적 열세 속에서 병사들의 동요가 커지던 상황이었다. 그러나 갑옷을 입고 직접 나타난 여왕은 단 몇 마디로 군의 사기를 끌어올렸다. 저자는 이 연설이 단순한 격려를 넘어 영국이라는 국가 정체성을 형성한 상징적 순간이었다고 설명한다.

이 밖에도 “나는 결코 정복당하지 않았다”는 클레오파트라, “자유가 지배하는 무지개 국가”를 말한 넬슨 만델라, “모든 것이 가능한 나라”를 외친 버락 오바마 등 시대를 바꾼 인물들의 목소리가 이어진다. 저자는 단순히 연설문만 소개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각각의 연설이 등장한 역사적 배경과 권력의 흐름, 연설자의 욕망과 두려움까지 함께 짚어 주며, 독자들을 피와 혁명, 열광과 공포가 뒤섞인 역사의 한복판으로 끌어들인다.

책이 다른 역사서들과 차별화되는 지점은 위인전식의 영웅주의에만 기대지 않는 점이다. 위대한 말과 인간적 모순이 공존한다는 점도 숨기지 않는다. 예컨대 “모든 인간은 평등하게 창조되었다”고 선언한 토머스 제퍼슨이 실제로는 다수의 노예를 거느렸던 인물이었다는 사실 역시 냉정하게 짚는다.

포퓰리즘과 혐오의 언어가 범람하는 시대다. 정치인의 말은 점점 가벼워지고, 자극적인 선동은 미디어를 뒤덮는다. 이런 시대일수록 우리는 어떤 목소리를 따라야 하는지, 어떤 언어를 경계해야 하는지 분별할 필요가 있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바로 우리 시대 지도자의 목소리를 제대로 분별할 능력을 길러준다. 말 한마디가 인간을 구원하기도 하고, 파멸시키기도 한다는 사실을 주요한 역사적 인물의 목소리를 통해 생생하게 들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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