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꼭 1년 전인 2025년 5월2일 한덕수 전 국무총리가 광주 5·18민주묘지를 찾았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국회 탄핵소추에 이어 헌법재판소의 파면 결정으로 쫓겨난 직후였다. 대통령 궐위 국면에서 그 권한대행 직무를 충실하게 수행해야 할 한 전 총리마저 사임하고 대선 출마를 선언한 것은 참으로 충격적인 일이었다. 그래서일까, 5·18묘지 입구까지 간 한 전 총리는 광주시민들의 저지에 막혀 입장하지 못하고 결국 되돌아갔다. 그는 “저도 호남 사람”이라며 “서로 사랑해야 한다”고 외쳤으나 공허하게 들렸다.
서울대 경제학과 재학 시절인 1970년 행정고시에 합격해 공무원 생활을 시작한 한 전 총리에 관해선 이런저런 미담이 아주 많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평범한 병사로 군 복무를 한 점이다. 병역 의무 이행 전에 행시에 붙어 정부에서 일하는 남자 사무관들은 군대에 가더라도 장교로 복무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런데 한 전 총리는 현직 사무관 신분이던 1971년 5월 육군 신병훈련소에 들어가 34개월 뒤인 1974년 3월 병장으로 만기 제대했다. 고시 합격 후 장교 대신 병사를 선택한 이가 한 전 총리 말고 또 있을지 의문이다.
한 전 총리는 50년 가까운 긴 공직 생활 동안 특허청(현 지식재산처) 청장, 통상교섭본부장,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주재 대사, 청와대 경제수석, 국무조정실장,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 국무총리, 주미 대사 등 요직들을 차례로 역임했다. 보통 사람 같으면 이들 직위 가운데 딱 하나만 지내도 평생 ‘가문의 영광’으로 여길 것이다. 과거 전두환정부 시절 교통부·농수산부·내무부 3개 부처 장관을 지낸 고건 전 국무총리가 ‘직업이 장관’이란 얘기를 들었는데, 한 전 총리의 ‘스펙’은 이를 능가하고도 남음이 있다고 하겠다.
2024년 12월3일 밤은 한 전 총리에겐 운명의 시간이었다. 당시 윤 대통령은 비상계엄 선포를 위한 국무회의를 소집했다. 한 전 총리가 목숨을 걸고 반대했다면 12·3 사태는 없었을까. 계엄이 실패로 끝난 뒤 ‘선배’ 국무총리인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는 언론 인터뷰에서 한 전 총리를 겨냥해 “윤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할 때 국무회의 자리에서 드러누워서라도 막았어야 했다”고 일갈했다. 내란 중요 임무 종사 등 혐의로 항소심에서 징역 15년이 선고된 뒤 상고해 대법원 판단만을 기다리는 한 전 총리의 속내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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