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일상화 가속” AI 무기 경고
“정당한 전쟁론 재검토 필요”… 트럼프 우회 비판
소수 권력 AI 독점 등 규제 촉구
디지털 경제 노동착취 비판하며
“과거 교회 노예제 용인 용서 구해”
인공지능(AI)의 인간 존엄성 훼손과 노동 대체, 군사 악용 가능성 등을 지속적으로 경고해 온 레오 14세 교황이 AI 시대의 윤리와 규제 원칙을 담은 회칙을 발표했다. 교황은 특히 “치명적 결정을 기술에 맡기는 것은 허용될 수 없다”며 AI를 활용한 전쟁을 강하게 비판했다.
25일(현지시간) AP·AFP통신 등에 따르면 레오 14세 교황은 이날 ‘마그니피카 후마니타스’라는 제목의 회칙을 직접 발표했다. 회칙은 교황이 전 세계 가톨릭 신자와 주교들에게 전하는 최고 권위의 사목 교서로 다른 교황 문헌인 교서, 권고, 담화, 연설 등과 비교해 구속력이 가장 강하다.
교황은 회칙에서 AI가 ‘전쟁의 일상화’를 가속화하고 사람들이 전쟁의 비용에 둔감해지게 만들었다고 지적하면서, AI 기반 무기체계의 확산에 경고음을 냈다. 이어 “너무 자주 모든 종류의 전쟁을 정당화하는 데 사용돼 온 ‘정당한 전쟁론’을 이제는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특정 분쟁을 직접 거론하지는 않았지만, 최근 미국과 이란 간 군사적 긴장이 고조된 상황에서 나온 발언이라는 점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우회적으로 비판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교황은 이번 회칙의 핵심 개념으로 ‘AI 무장해제’를 제시했다. 이는 AI 기술 자체를 거부하자는 뜻이 아니라, 이를 가진 소수의 권력자가 AI를 통해 인간과 사회를 지배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는 의미다.
다시 말해 AI는 인간의 통제 아래 있어야 하며, 인간 위에 군림해서는 안 된다는 게 교황의 메시지다.
교황은 권력과 데이터가 소수의 민간 기업에 집중되는 현상을 위험 요인으로 지목하며 “이런 권력이 극소수에 집중될 때 불투명해지고 의존, 배제, 불평등으로 왜곡될 위험이 커진다. 누구나 AI에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신기술에서 파생된 알고리즘, 플랫폼, 인프라, 데이터 등을 ‘보편적 재화’에 포함해야 한다고 했다. 아울러 AI가 어린이와 사회적 약자에게 큰 위협이 될 수 있다며 외부 규제와 감독 필요성도 거듭 촉구했다.
이번 회칙은 AI 규제 완화를 추진해 온 트럼프 행정부와 또 다른 충돌 지점을 만들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날 발표 행사에는 AI 기업 앤트로픽의 공동창업자 크리스토퍼 올라가 참석했다. 앤트로픽은 자사 기술이 치명적 자율무기나 대규모 감시에 사용되는 데 반대해 왔으며, 이 문제를 둘러싸고 트럼프 행정부와 법적 분쟁을 벌이고 있다.
교황은 디지털 경제가 낳은 노동 착취를 ‘노예제’에 빗대 비판하면서, 과거 가톨릭교회가 노예제를 방치하며 사실상 용인한 점을 인정하고 공개 사과하기도 했다. 그는 “수많은 이들이 겪어야 했던 엄청난 고통과 굴욕을 떠올릴 때 깊은 슬픔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며 “우리는 그로부터 무관하지 않다. 교회를 대표해 진심으로 용서를 구한다”고 말했다. 과거 교황들도 기독교인들의 노예무역에 대해 사과했지만, 교회가 군주들에게 해당 권한을 부여했던 것을 인정하고 사과한 교황은 레오 14세가 처음이라고 외신들은 전했다.
4만 단어가 넘는 이번 회칙은 총 82쪽, 245개 항으로 구성됐다. 통상 회칙은 교황 명의로 공표되더라도 발표는 교황청 부서 책임자나 신학자들이 맡는 경우가 많다. 이날 레오 교황의 직접 발표는 내용뿐만 아니라 형식 면에서도 이례적이라는 평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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